국산 온라인 FPS 게임의 공식이 깨졌다.
한국에서 온라인 FPS가 뜨려면 밀리터리 콘셉트를 무조건 끌여들어야 한다는 게 게임업계의 정설. 그 동안 온라인 FPS 게임 캐릭터들은 많은 인원이 서로를 죽이거나, 적진에 깃발을 꽂거나, 적진에 폭탄을 설치하느라 바빴다.
이 공식은 아직도 유효하다. 하지만 상대가 바뀌었다. 상대 캐릭터가 아니라 제 3의 인물이다. 그들은 서서히 캐릭터들을 압박해 들어온다. 그리고 캐릭터들은 살아남아야 한다. 이제 FPS 게임의 목적이 승리가 아니라 생존으로 바뀌었다.
서바이벌 모드. 국산 온라인 FPS 게임의 새로운 공식이 됐다.
■ 서바이벌에 제대로 맛들렸다 <카스 온라인>
생존 모드를 도입해 가장 짭짤하게 재미를 본 게임은 바로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이하 카스 온라인)이다.
<카스 온라인>은 첫 서비스 당시, 국내 서비스를 맡은 넥슨은 원작인 <카운터스트라이크>를 즐겼던 유저들은 물론 새로운 유저들이 많이 유입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초기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지난 해 7월 좀비 모드가 공개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실제로 PC방 이용 순위에서도 좀비 모드 공개 이후 무서운 상승세로 이용 시간이 급등, 업데이트 20여 일 만에 무려 10배의 PC방 이용시간 증가를 가져왔다.
좀비 모드의 핵심은 ‘감염’과 ‘생존(서바이벌)’.
좀비로 변한 유저는 일반 유저를 쫓고, 일반 유저는 좀비를 죽이거나, 피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좀비의 공격을 받은 유저도 좀비로 변하기 때문이다. 쫓고 쫓기는 긴장감, 좀비와 일반 유저가 벌이는 사투는 큰 재미를 주었다.
좀비 모드의 인간 시점(왼쪽)과 좀비 시점(오른쪽).
현재 <카스 온라인>의 국내 동시접속자는 약 2~3만 명. 이중 좀비 모드를 이용하는 유저는 절반이 넘는다. 덕분에 유저들은 <카스 온라인>을 ‘좀비 온라인’이라 부를 정도.
넥슨 홍보실의 이영호 씨는 “<카스 온라인>에는 다양한 전략이 있고 이를 이해하면 굉장히 재미있지만 보통 유저들은 이를 초반에 운용하기 힘든 면이 있다. 그래서 좀비 모드가 어려운 FPS에 적응하지 않으려는 유저에게 게임에 더 쉽게 다가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고 이는 적중했다. 실제로 좀비 모드 도입 전보다 오리지널 모드를 플레이하는 유저 수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한편, <카스 온라인>은 이번에 좀비연합모드를 업데이트해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름만 보면 추가된 좀비 모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과 좀비가 한 팀이 되어 벌이는 모드다. 쉽게 말해 팀 데스매치에 접근전 전문인 좀비 캐릭터가 추가된 셈이다.
넥슨의 한 관계자는 “이번 좀비연합모드는 좀비 모드와는 엄연히 다르다. 일반적인 팀데스매치가 아니라 적의 눈을 멀게 하거나, 마우스를 반전시키는 등의 다양한 아이템을 도입해 대중적으로 다가가기 위함이다. 생존 개념이 아닌 놀거리를 제공한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형태의 팀데스매치를 선보인 좀비연합모드의 스크린샷.
■ 서바이벌 도입한 <크로스 파이어> 중국서 대박
중국에 진출한 <크로스 파이어> 역시 서바이벌 모드를 도입해 큰 성공을 거뒀다. 지난 4월 10일 중국에서 선보인 생화학전 모드는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었다.
생화학전 모드는 방사능에 노출된 변종 인간이 숙주가 되어 인간을 공격해 변종 인간으로 만든다는 콘셉트를 갖고 있다. 유저는 정해진 시간 내에 이들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한다.
네오위즈게임즈의 한 관계자는 “생화학전 모드 도입 이후 중국 동시접속자수 100만 명을 뛰어 넘었으며, 지속적인 유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최고 동접 120만 명을 돌파했다. 생화학전의 도입이 견인차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크로스 파이어> 생화학전 모드는 오직 중국에서만 제공된다. 네오위즈게임즈는 중국 유저들의 성향을 파악한 현지화 전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카스 온라인>의 좀비 모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게임업계 관계자와 유저들의 평가다.
<크로스 파이어> 생화학전은 유저들에게 대피 시간을 준 다음, 유저 중 일부가 숙주가 되고 이들이 나머지 유저들을 쫓아 다니면서 변종 인간으로 바꾸는 형태로 진행된다. 변종 인간은 총을 쓰지 않고 접근무기 클로만 사용할 수 있는 등 많은 부분에서 <카스 온라인>의 좀비 모드와 닮은꼴이다.
중국에서 서비스 중인 <크로스파이어>의 생화학전 모드의 모습.
가슴의 푸른 부분을 쏘면 체력 100 포인트가 깎인다.
■ <아바>, 프리즌 브레이크로 서바이벌 대열 동참
레드덕이 개발하고, 네오위즈게임즈가 서비스하는 <아바>도 서바이벌 대열에 동참했다.
<아바>의 서바이벌은 위에서 언급된 개념과 조금 다르다. 위의 두 게임이 PvP로 제한 시간 내에 생존하는 방식이라면 <아바>는 가장 오래 살아남는 것을 경쟁하는 PvE 방식이기 때문이다.
프리즌 브레이크 모드는 개발진에서 <아바>의 AI(인공지능) 진압미션을 이용해 오래 버티기 내기를 했던 것을 정식 모드로 만든 것이다. NRF 군의 포로수용소에 있는 생화학 실험실에서 누출된 생화학 물질에 오염된 포로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EU 군은 이 상황에서 생존하는 것이 목적이다.
프리즌 브레이크 모드에서는 최대 4명이 한 팀이 되어 폭도들을 제압해야 한다. 협동 서바이벌 모드인 셈이다.
네오위즈게임즈 측은 “초보자들의 경우, 다른 FPS 게임에 비해 어렵다는 지적을 많이 한다. 그래서 슈팅하면서 적을 물리치는 AI(인공지능) 모드를 제작, 초보 유저들이 게임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고수 유저들은 난사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도록 유도했다”고 밝혔다.
프리즌 브레이크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다. 지난 25일 프리즌 브레이크 모드가 업데이트된 뒤 유저가 급증, <아바> 접속 유저의 90% 가량이 프리즌 브레이크 모드를 즐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전체 동시접속자수도 40%나 증가했고, 매출도 큰 폭으로 늘었다.
난사의 재미와 생존의 긴박감, <아바>의 프리즌 브레이크 모드.
■ 서바이벌의 핵심은 ‘난이도’와 ‘색다른 재미’
서바이벌 모드가 국내외에서 인기를 끄는 첫 번째 요인은 FPS의 난이도를 낮췄다는 데 있다.
<카운터스트라이크>와 <스페셜포스> 이후 FPS 시장이 확대되면서 <서든어택>같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캐주얼 스타일의 FPS들이 등장했고, 이로 인해 일반 유저들이 유입되면서 온라인 FPS 게임은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기존의 FPS 게임에서도 계속 마니악함을 고집해서는 신규 유저의 유입이 늘어나지 않는 상황. 때문에 빠른 움직임과 정교한 조준 등의 능력이 고수에 비해 떨어지는 초보 유저들이 PvP 플레이에서 겪는 부담감과 피로도를 덜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해졌다. 또한, 대중성 확보라는 숙제로 풀어야 했다.
그래서 등장한 서바이벌 모드는 게임 방식이 직관적이고, 유저가 적으로 변해도 죽지 않고 계속 플레이가 가능하며, 지속적으로 탄약이 보급돼 유저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도 인간 진영에서는 작전을 잘 짜서 뭉치면 묻어가서 승리할 수 있고, 적으로 변해도 높은 HP 덕분에 플레이에 부담이 없다.
두 번째 요인은 자극적으로 다가오는 색다른 재미다. 기존 밀리터리 FPS에 있었던 섬멸전, 폭탄제거 등의 모드는 뛰어난 실력과 작전 수행 능력을 요구하지만 서바이벌 모드는 실력을 앞세워 적을 죽여야 하는 긴장감보다 어떻게든 내가 살아남아야 하고 만약 적이 된다면 어떻게든 인간을 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더 큰 긴장감과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특히 생존 모드는 어린 시절 즐겼던 술래잡기나 다방구 놀이를 연상하게 만들어 어린 유저들에게는 새로운 재미를, 올드 유저에게는 추억의 재미를 주고 있다.
업체 관계자들도 서바이벌 모드는 유저 간의 실력차가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져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해 초보 유저들에게 각광 받고 있다는 점, 기존 게임의 특징을 벗어난 새로운 방식으로 유저들을 자극하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다른 FPS 게임에도 서바이벌 개념의 게임 모드가 추가되어 신규 유저나 초보 유저를 끌어들이는 계기로 활용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