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파> 시리즈의 효과는 대단했다!”
공식 스포츠리그 게임을 사실상 거의 독식하고 있는 EA가 또 하나의 스포츠 게임 프랜차이즈를 내놓을 예정이다. 이번에는 구기종목이 아닌 레이싱이다.
2일(현지시간) 실적 발표회에서 EA는 ‘레이싱 명가’ 코드마스터즈를 인수한 이유와 향후 게임 출시 계획을 드러냈다. <피파> 덕분에 몇 년째 이어온 고공행진을 또 다른 스포츠 라이선스 게임으로 확장하겠다는 포부가 엿보였다. 살짝 불안해졌다.
1986년 설립된 코드마스터즈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게임 개발사다.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만들어왔지만, 레이싱게임 시리즈로 대중적 명성을 얻었다.
현재까지 <DIRT>, <그리드>, <포뮬러 1> 등 다양한 레이싱 프랜차이즈를 개발했다. 각자 콘셉트나 종목을 달리하며, 독자적인 팬층을 형성해 인기를 누려왔다.
EA는 2020년 12월 12억 달러(약 1조 3,416억 원)에 코드마스터즈를 인수했다. 테이크투와 코드마스터즈 간 9억 7,000만 달러에 인수 논의가 오가던 시점에 기습적으로 일어난 일이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인수 발표에서 앤드류 윌슨 EA CEO는 다음과 같이 포부를 밝혔다.
“코드마스터즈와 EA가 힘을 합치면 팬들을 위한 새로운 혁신적 레이싱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산업은 성장하고 있고, 레이싱게임 분야도 마찬가지다. 양사가 레이싱 엔터테인먼트의 미래를 이끌 것이다.”
윌슨은 이번 실적 발표회에서 기존 코드마스터즈 게임 시리즈에도 더 많은 신규 유저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 나아가 자사 스튜디오들의 전문인력과 기술을 공유해, 코드마스터즈의 개발 가속을 돕겠다고 밝혔다.
코드마스터즈 인수의 배경을 직접적으로 묻는 투자자들에게 EA는 기대하는 바를 드러냈다.
EA에 따르면 자사 스포츠 게임 포트폴리오는 코드마스터즈의 레이싱게임 개발 포트폴리오와 ‘자연스러운 궁합’(natural fit)을 자랑하며, 앞으로 분명한 기회(clear opportunities)를 제공할 것이다.
EA가 말하는 ‘스포츠 게임 포트폴리오’란, 그간 정식 스포츠 라이선스 게임들을 만들어온 이력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라이선스를 선점해 ‘공식 게임 시리즈’를 제작하는 방식은 EA가 오래 전부터 고수해온 사업전략이다.
스포츠 라이선스 독식에 따르는 이익은 분명하다. 실제 선수들의 인명과 팀명을 독점하기 때문에 ‘정통성’을 확보하고, 기타 스포츠 게임들에 비교 우위를 가질 수 있다. 자연스럽게 해당 스포츠 리그의 팬들을 게임 팬으로 포섭할 수 있다. 홍보와 브랜딩에 압도적인 이익이다.
그러나 EA의 이러한 행보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많다. EA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는 <피파> 시리즈의 선례 때문이다.
이날 실적발표에서 EA는 지난분기 수익을 주도한 최고 ‘효도’ 타이틀로 단연 <피파>를 꼽았다. 벌써 수 년째, <피파>는 EA의 전체 수익에서 압도적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피파>의 수익구조와 개발 관행이다. <피파>는 서양 게임으로서 보기 드물게, 확률형 아이템 비중이 높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본편을 풀프라이스에 가까운 가격으로 구매해야만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이 쏟아진다.
더 큰 문제는 매해 나오는 신작에 개선점이 별로 안 보인다는 점이다. 해마다 <피파>의 정식 넘버링 타이틀이 나오고, 팬들은 이를 구매해야만 게임 내 콘텐츠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선수 스탯만 업데이트될 뿐 정작 게임 내용은 이전과 달라지는 바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럼에도 ‘공식 라이선스’라는 절대적 장점 때문에 팬들은 차마 게임에서 이탈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EA가 독점적 지위를 남용, 이용자에 부당한 이중과금을 유도한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앞으로 나올 레이싱 게임에 대해서도 EA는 연례적(annual) 게임 출시 프로세스를 선언했다. EA가 또 편안한 트랙을 선택할 것 같아 불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