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6일 막을 내린 차이나조이 2009(第七届中国国际数码互动娱乐展览会, China Joy 2009)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스는 단연 샨다(上海盛大网络发展有限公司, Shanda)였습니다.
샨다는 부스 전체 디자인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제공하는 사은품까지 모두 18기금(18基金) 로고로 도배 하다시피 하는 이색적인 이벤트 프로모션을 진행했죠. 특히 부스에 시연대가 마련된 신작들이 (아이온을 제외하고) 모두 18기금의 지원을 받아 개발/배급되는 게임들이라는 점은 놀라웠습니다.
18기금의 시작 의도와 진행 과정, 결과물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 이에 18기금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중국 특파원 신상린(복단대학 경제학원 인터넷기술산업연구소 수석 연구원)
[상하이런 에릭의 쭝꿔 이야기]는 TIG의 특파원 ‘에라이씬’이 중국 현지에서 직접 발로 뛰고, 부딪히고, 깨져 가며 얻은 게임 소식과 정보를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편집자 주
차이나조이 2009 샨다 부스는 사실상 18기금 부스였습니다.
■ 18기금? 미성년자는 안 된다는 건가요?
18기금은 지난 2007년 7월 11일 베이징에서 열린 차이나조이 포럼에서 샨다의 창업주 첸 티엔치아오(陈天桥) 회장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소규모/영세 개발사 지원 펀드입니다.
첸 회장은 당시 공식 발표에서 “1인 기업(1-man company)부터 소규모 개발 스튜디오에 이르기까지 참신한 아이디어와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력을 보유한 개발인력들이 ‘돈 걱정’ 없이 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18기금의 기획 의도는 샨다가 2005년 3분기부터 2006년 3분기까지 1년 동안 주요 게임들의 무료 서비스 단행 이후 겪은 암흑기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습니다.
샨다는 <미르의 전설 2> 파동에 따른 해외 게임 배급의 차질, 급격한 매출 하락에 따른 주가 급락, 개발자들의 지속적인 이탈, 중국 내 온라인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증가 등 잇단 악재에 대책이 필요했던 거죠.
당시 첸 회장은 자체 개발력의 보유는 물론 중국 문화가 투영된 온라인게임 개발/배급을 통해 샨다에 대한 중국 내 이미지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18기금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첸 회장은 샨다의 미래 성장동력이 자체 개발력 확보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18기금은 샨다가 사업 운영에서 겪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출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05년 7월 당시 40 달러에 달했던 샨다의 나스닥 주가는 1년 만에 세 토막이 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당시 첸 회장은 자체 개발력 보유 및 확장을 위해 18기금 이외에도 다양한 지원 사업들을 내놓았습니다. 펑유엔찌화(風雲計劃, 이하 풍운계획), 20찌화(20計劃, 이하 20계획)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아래쪽 표 참조).
여담이지만, 이 사업들이 갖는 한 가지 공통점은 모든 사업 명이 일종의 대명사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풍운 온라인만 같아라’ 라는 목적의 풍운계획, 매월 18일에 지원 게임을 심사한다는 뜻의 18기금, 사업 성공에 따른 인센티브가 20%라는 뜻의 20계획. 처음 들을 때는 어떤 사업인지 파악하기 어렵지만, 막상 설명을 듣고 나면 너무나 직관적이고 단순하기까지 하지요. :)
계획이름 | 내용 | 목적 | 자금 규모 |
풍운계획 | 풍운 온라인 수준의 게임을 보유한 개발사를 인수, 합병하는 것. | 소규모 영세 개발사 인수를 통한 사업확장 | 20억 위안 (약 4천억 원) |
18기금 | 1인 기업부터 소규모 개발사까지 개발자금 및 퍼블리싱 지원. | 기업기익 사회환원, 미래 성장동력 확보, 신작 라인업 다변화. | 30억 위안 (약 6천억 원) |
20계획 | 사내 사업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성과별 최대 20%의 인센티브 지원 | 자사 보유 개발력의 유지 및 증대. | 유동적 |
▲ 샨다가 지금까지 선보인 각종 계획과 기금들의 이름/개요/목적/자금규모.
(중국 1 위안을 한화 200 원으로 계산한 결과입니다)
■ ‘18기금 퀘스트’의 수행 방식은?
그 동안 샨다의 C-레벨(최고경영자들)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알린 것과는 다르게 18기금을 받는 과정이 쉽거나 단순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18기금의 프로세스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나름의 심사 과정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죠.
먼저, 샨다는 18기금의 지원 사항을 크게 세 가지(Enable, Motivate, Support)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기업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Enable), 둘째는 온라인게임 등의 개발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지원함으로써 개발 완료된 게임의 성공률을 높인다는 것(support). 마지막으로는 효과적인 지원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개발자들의 개발 의욕과 창업에 대한 동기 부여를 고취시킨다(Motivate)는 겁니다.
이 세 가지 지원 사항을 기반으로 독립적인 개발 과정에 대한 개발자 스스로의 자기 관리와 운영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Self-controlled Direction)이 바로 18기금의 큰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되네요.
이제 어떤 프로그램인지를 알았다면 어떤 절차를 통해 개발비를 지원 받을 수 있는지를 알아야겠죠? 게임 기획안 심사 및 개발비 신청 절차는 지원자가 개인이냐 팀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먼저 개인의 경우, 자신의 게임 기획안과 함께 18기금 개발자 신청을 하면, 샨다가 보유한 인재 관리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후 비슷한 게임을 기획 중에 있거나, 해당 게임에 관심을 갖고 있는 다른 개발자들과의 미팅/인터뷰 등을 주선해 하나의 개발팀을 꾸리게 됩니다.
일종의 공개 구혼(?) 과정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렇게 팀이 꾸려졌거나, 혹은 이미 팀이 구성되어 있다면 본격적으로 18기금을 얻기 위한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전화나 온라인으로 18기금을 신청하면 먼저 펀드 매니저들과 개발에 필요한 자금의 규모와 사용 계획 등을 논의합니다. 이후 해당 게임 개발 계획에 대한 심사를 통과하면 매달 18일 열리는 18기금 회의에서 자금 지원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18일 회의에서 최종 승인을 받는다면 개발 완료 이후에 대한 계약을 맺게 되고, 이제 본격적인 게임 개발이 시작됩니다.
개발 지원 신청에서부터 최종 계약 체결에 이르는 전 과정의 흐름도.
※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개발이 완료된 게임은 샨다를 통한 배급이 최우선 고려대상이지만, 계약상으로는 다른 배급사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물론, 아직까지 이런 경우로 배급된 게임은 없죠;;). 샨다를 통한 배급일 경우 마케팅부터 홍보 비용까지 모두 샨다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 18기금의 결과물들은?
18기금의 첫 번째 수혜 업체는 마이시씬시(上海麦石信息技术有限公司, 상해맥석정보과기유한공사)입니다.
2007년 800만 위안(당시 환율 기준 약 10억 원)을 지원 받아 80여 명의 개발자로 개발팀이 구축됐죠. 샨다는 개발자금 뿐만 아니라 게임엔진 등의 개발 자원은 물론, 소설 <꾸이취덩(귀취등, 鬼吹灯)>을 게임의 스토리로 활용할 수 있게 판권까지 구매해서 제공했죠.
결과는 성공이었고, 온라인 횡스크롤 액션 게임으로 탄생한 <귀취등(꾸이취덩) 온라인>(鬼吹灯, Gui Chui Deng Online)은 이제 해외 진출을 목전에 둘 만큼 성장했습니다. <귀취등 온라인>은 한국의 <던전앤파이터>와 너무나 닮아서 표절 논란을 겪은 게임이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18기금을 통해 개발 및 서비스되고 있는 게임은 다음과 같습니다.
게임이름 | 개발사 | 장르 |
Crossing Online | 7 Times | RPG |
8M Online | Wincominc | RPG |
The Warring States | Shanghai SongGuo | MMORPG |
Legend of Deification | Fuzhou Field | RTS |
Ghost Fighter Online | MYLSTONE | MMOACT |
GZK | Shanghai CaiQu | Web-game |
Shushan Online | Onwind | MMORPG |
※ 중국 간자로 표기할 경우 파악이 어려운 관계로 영문명으로 작성했습니다.
샨다는 18기금 공식 사이트를 통해 총 자금 운용 규모 30억 위안(약 6천억 원), 2년 동안 30여 개의 프로젝트를 지원, 2천여 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거뒀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샨다는 18기금을 통해 개발된 게임들의 매출 기여와 향상된 개발력을 과시하며 2007년 이전 규모의 영업 실적과 주가를 회복했고, 지난 6월에는 시가 총액 5조 원(한화 기준)을 돌파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18기금 지원 게임 중 최고의 히트작으로 손꼽히는 <귀취등 온라인>.
■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전례가 없는 초대형 개발 지원 펀드’, ‘참신한 게임의 개발을 위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등 18기금에 대한 긍정적인 수식어들은 넘쳐납니다.
샨다의 입장에선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선 자국 산업의 보호와 지원, 이익의 사회환원이라는 회사 브랜드 이미지 향상이 무형의 수확이겠군요.
현실적으로는 자체 개발력 확보와 확장, 신규 라인업의 추가라는 실질적인 이익도 얻었지요. 중국 정부에서도 18기금의 취지와 운용 방식을 주의 깊게 관찰할 정도이니까요.
이러한 시장 반응을 모를 리 없는 경쟁 업체들 역시 발 빠른 대처에 나섰습니다.
더나인(第九城市官方网站, The9)은 중국 4대 명문 대학으로 손꼽히는 복단대학과 산학협약을 맺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석사 과정 학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원합니다. 이를 통해 복단대학 졸업생의 더나인 입사를 장려하는 한편, 자사 개발자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등 개발력 보유/확장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킹소프트(金山软, King Soft)의 경우,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게임 개발자 확보를 위해 현재 4개 지역에 있는 R&D 센터를 내년까지 8개 지역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이죠.
아직 중국 온라인게임이 (해외에서, 특히 한국에서 보기에) 부족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뻔뻔하게 베끼는 산자이(표절, 또는 짝퉁) 게임이 눈엣가시처럼 보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18기금을 들여다 보면 상당한 위기의식을 갖게 됩니다.
18기금은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등한시해 왔던 개발력 확장 측면에서 중국 게임 산업만이 갖는 시장 차별화의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18기금이 운용된 지 2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