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끝난 독일 게임스컴에서 굵직한 온라인게임들이 경합을 벌이며 눈길을 끌었다. ‘별들의 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개발사와 브랜드의 인지도가 높은 게임들이 많았다.
엔씨소프트는 9월 25일 유럽 론칭을 앞둔 <아이온>을 중심으로 부스를 꾸몄고,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둔 <길드워>의 후속작 <길드워2>를 최초로 발표했다. 지난 해 북미와 유럽에서 ‘포스트 WoW’를 꿈꿨던 <에이지 오브 코난>도 확장팩 <신을 죽이는 자의 등장>을 발표하면서 부활을 노렸다.
특히 스퀘어에닉스는 신작 MMORPG <파이널 판타지 14>의 체험판을 처음으로 선보이며 유럽 시장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EA가 퍼블리싱을 맡고 리얼타임월드에서 개발 중인 <APB>는 유럽 매체들이 모이는 게임스컴에서 비공개 시연회를 개최했고, 바이오웨어도 SF MMORPG <스타워즈: 구공화국>의 첫 시연플레이를 선보였다.
■ 게임스컴에서 떠오른 4개의 별
유럽 온라인게임 업계 관계자들은 <WoW>를 포함해 게임스컴에서 발표된 게임 4개가 비슷한 점유율을 가지면서 경쟁하는 구도가 유럽 시장에 가장 적합한 모양새라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조화를 상징하는 펜타그라마(오망성)를 형성하는 것이 유럽을 세계 최대의 온라인게임 시장으로 키울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때 <에이지 오브 코난>의 확장팩과 <길드워2>는 이미 원작이 유럽에서 높은 인지도를 형성하고 있다. 두 게임을 제외하면 <아이온> <APB> <파이널 판타지 14> <스타워즈: 구공화국> 4개의 게임이 남는다.
그러나 게임스컴 현장 반응을 볼 때 이미 팬타그라마의 형성은 물 건너 간 것처럼 보인다.
게임스컴 관람객과 업계 관계자들, 유럽 기자들의 평가를 종합하면 가능성을 보이는 게임은 3개 뿐이다. <파이널 판타지 14>는 유럽에서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는 평가가 이미 나와버렸다. 미완성 체험판의 공개는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 유럽에서 환영 받지 못 한 <파이널 판타지 14>
<파이널 판타지 13>은 북미·유럽 시장을 먼저 염두에 둘 만큼 <파이널판타지>라는 브랜드 위상은 대단하다. 하지만 콘솔 게임이 아닌, 온라인게임 <파이널 판타지 14>는 오히려 브랜드 파워를 믿다가 외면 받은 격이 되었다.
예상을 깨고 체험버전을 선보였지만 부족한 컨텐츠와 수많은 버그로 좋지 않은 첫인상을 남기며 일찌감치 후보군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번 게임스컴에서 수모를 겪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
유럽의 한 매체 기자는 “E3에서 발표할 때까지 만해도 <파이널판타지> 브랜드를 가진 두 번째 온라인게임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게임스컴에서 체험해 보니 놀라운 것은 뛰어난 그래픽 뿐이었고, 온라인게임으로서의 의미가 없다. 미완성 온라인게임은 유럽시장에서 유저들에게 가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미 유럽 온라인게임 시장을 지배한 <WoW>의 영향으로 게임성의 판도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파이널 판타지 14>는 성급하게 체험판을 선보여 첫인상을 망친 셈이다. 결국 브랜드 위상이라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셈이다.
게임스컴 현장에서 만난 유럽 게임업체 관계자들에게 <파이널 판타지 14>의 시연대가 썰렁한 이유를 물어 봤다.
돌아온 대답 중 인상적인 한 마디. “유럽은 일본이 아니다”라는 말은 국내 업체들도 유럽시장 진출을 고려한다면 새겨서 들어야 할 부분이다.
프로모션 영상은 멋졌지만 실제 게임은 볼 것이 없었던 <파이널 판타지 14>.
■ 인지도 쌓기에 나선 <APB>와 <스타워즈: 구공화국>
리얼타임월드의 <APB>와 바이오웨어의 <스타워즈: 구공화국>의 경우 부스에 체험판을 선보이지는 않았다. 대신, 기자를 대상으로 세션을 진행하거나 준비된 시연영상을 통해 인지도 쌓기에 나섰다.
<스타워즈: 구공화국>은 스타워즈가 갖는 브랜드 이미지를 해치지 않기 위해 체험판 대신 실제 플레이 영상을 유저들에게 선보였다. 준비되지 않은 컨텐츠로 유저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줄 바에는 오히려 기대감을 키우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게임스컴 EA 부스에는 <스타워즈: 구공화국> 공간이 존재했지만 안에는 홈페이지에 연결해 정보를 알려 주는 노트북 몇 대만 배치되어 있었다. 그 대신 개발자의 시연을 볼 수 있는 시어터에서 실체를 공개했고,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린 관람객들은 대부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스타워즈: 구공화국>의 부스는 한산했지만,
이런 입소문이 행사장에 돌기 시작하면서 <스타워즈: 구공화국> 시어터는 2시간 이상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 체험 위주의 게임스컴에서 시연영상 하나만으로 바이럴 마케팅에 성공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리얼타임월드의 <APB>도 <스타워즈: 구공화국>과 마찬가지로 비공개 부스에서 전보를 전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APB>는 개발자가 직접 시연이 가능한 버전을 선보였다는 것.
<APB>는 예전부터 ‘GTA 온라인’이라고 불릴 만큼 높은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다. 또 B2C 홀에서 일반 유저를 대상으로 시연을 했다. <APB>의 실제 플레이 느낌은 GTA 온라인이라는 어울릴 정도로 상상한 그대로의 느낌을 전달해 주고 있다.
실제 유저들이 플레이했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유럽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GTA> 시리즈의 느낌을 재현한 <APB>를 선보이면서 역시 인지도 쌓기에 나선 모습이었다.
■ 착실하게 쌓아 올린 <아이온>의 브랜드 이미지
엔씨소프트의 <아이온>은 유럽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처음부터 착실하게 준비한 덕분이다. <길드워>로 엔씨소프트라는 브랜드를 알렸고, 그 엔씨소프트가 개발한 <아이온>이라는 인식이 유럽 유저들에게 받아들여진 셈이다.
또한, 커뮤니티를 활용한 입소문 마케팅이 주효하면서 기대감이 높아졌고, 최신 1.5 패치로 론칭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면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특히 <길드워2>의 발표를 <아이온> 부스에서 진행해 엄청난 시너지 효과도 얻었다.
결과적으로 <아이온>은 게임스컴에 출전한 온라인게임 중 거의 유일하게 완성된 컨텐츠를 유저들에게 선보였고, 그만큼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현장 취재를 하면서 보고 느낀 그대로를 전달하자면 국내에서 <아이온>이 첫선을 보였던 당시와 비교했을 때 유럽에서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렇듯 게임스컴에서 공개된 온라인게임을 비교해보면 <아이온>은 다른 경쟁자들보다 한 발 이상 앞서 나가고 있다. 한달 뒤 론칭을 앞둔 상황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아이온> 부스 이벤트 모습. <아이온>은 게임스컴 베스트 온라인게임 상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