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급상승하고 있는 희귀한 레트로 게임의 가격이 실은 조작된 것이었다는 의혹이 퍼지고 있다.
8월 24일, 게임 스피드런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칼 잡스트'의 유튜브에 "레트로 게임 시장의 속임수"라는 동영상이 업로드됐다. 약 1시간 정도의 동영상에서 칼 잡스트와 영상 제작에 참여한 유튜버들은 경매 등으로 거래되는 희귀한 레트로 게임의 가격이 조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근거로는 ▲최근 18개월간 급상승한 레트로 게임 가격 ▲가격이 올라갈수록 막대한 이익을 얻는 관련 단체 ▲게임 감정 사이트 '와타 게임즈'와 미국 경매 사이트 '헤리티지 옥션' 간의 수상한 정황을 들었다.
최근 들어 레트로 게임의 가치는 급상승하고 있다. 물론 모든 레트로 게임의 가치가 급상승한 것은 아니다. 희귀한, 그리고 보관이 잘 된 경우 감정기관에서 등급을 정하고, 높은 등급을 받은 게임이 가치를 인정받아 경매 등에서 거래된다.
다만 최근 수상한 낌새가 보인다. 4월에는 <슈퍼 마리오>의 카트리지가 66만 달러(약 7억 4,565만 원)에 낙찰돼 게임 최고 판매가를 경신했다. 7월에는 <젤다의 전설> 미개봉 패키지가 87만 달러(약 9억 9,000만 원)에 낙찰됐다.
이후 얼마 지나지 <슈퍼 마리오 64> 패키지가 156만 달러(약 17억 8천만 원)에 낙찰됐으며, 8월 <슈퍼 마리오>의 미개봉 패키지가 200만 달러(약 22억 원)에 낙찰되면서 기록을 갈아치웠다. 여기에서 언급된 게임 카트리지는 모두 와타 게임즈가 가치를 매겼으며, 헤리티지 옥션을 통해 경매됐다.
와타 게임즈는 2018년 설립된 레트로 게임 감정 전문 사이트다. 최초로 설립된 레트로 게임 감정 단체는 아니다. 기존에도 레트로 게임에 가치를 매겨 주는 사이트가 존재했다. 그러나 칼 잡스트는 헤리티지 옥션과 와타 게임즈와의 관련성을 짚으며 이들이 레트로 게임 가격 상승에 일조했다고 주장했다.
와타 게임즈의 로고
와타 게임즈가 설립된 후, 이들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들이 감정한 게임이 비디오 게임 거래 사이트 '저스트 플레이'와 헤리티지 옥션의 온라인 경매에 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헤리티지 옥션의 관계자가 와타 게임즈의 고문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그리고 와타 게임즈가 설립되고 1년 후 헤리티지 옥션이 최초의 비디오 게임 경매를 시작했다. 경매에 오른 게임은 모두 와타 게임즈가 감정한 제품들이었다.
와타 게임즈 설립 전 비디오 게임의 최고 거래가는 3만 달러(약 3,513만 원)에 거래된 <슈퍼 마리오>의 카트리지였다. 그러나 2019년 2월 와타 게임즈가 등급을 매긴 <슈퍼 마리오> 카트리지가 이전 기록의 3배를 넘는 10만 달러에 판매되면서 기록이 깨졌다. 이후 약 18개월 동안 레트로 게임 카트리지 가격은 급상승했다.
최근 들어 레트로 비디오 게임 카트리지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출처 : 헤리티지 옥션)
이를 홍보하는 헤리티지 옥션의 보도자료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며, 여기에는 와타 게임즈 CEO의 "(레트로 게임 거래는) 감속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인용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칼 잡스트는 이들이 다수의 TV 쇼에도 나오는 등, 의도적인 발언을 통해 레트로 게임의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레트로 게임 수집품 시장이 커지고 가격이 치솟을수록 관련 업체는 막대한 이익을 본다. 레트로 게임 거래 시장이 커지면 판매자들은 빠르고 손쉬운 거래를 위해 자신이 소유한 레트로 게임에 등급을 매기고 싶어 하며, 이는 자연스레 와타 게임즈의 매출로 이어진다.
특히 시장 가치가 올라갈수록 검사 비용도 큰 폭으로 상승한다. 와타 게임즈 홈페이지에 따르면 2,500달러(한화 290만 원) 이상의 게임은 신고 금액의 2%가 추가로 부과된다. 예를 들면 100만 달러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된 게임은 2만 달러를 검사 수수료로 지불해야 한다.
와타 게임즈의 수수료 책정 기준 중 일부 (출처 : 와타 게임즈)
또한 칼 잡스트는 가장 이득을 보는 집단은 헤리티지 옥션이라고 지적했다. 레트로 게임 경매가 성사되면 헤리티지 옥션은 구매자에게 20%의 경매 수수료를 징수한다. 100만 달러 게임을 구매하면 20만 달러를 추가로 경매 사이트에 지불해야 하는 셈. 판매자에게도 판매 금액의 5%를 징수한다.
더해서 게임 판매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 고가의 게임 카트리지는 '랠리'와 같은 수집품 지분 거래 사이트에 등록되어, 공동 투자한 사람들이 지분을 나눈 후 해당 카트리지가 경매에서 낙찰되었을 때 모두가 이득을 보는 일종의 '투기 수단'이 되었다.
실제로 8월 6일 <슈퍼 마리오>의 카트리지가 200만 달러(약 22억 원)에 판매되자 해당 카트리지에 투자한 모두가 큰 이익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헤리티지 옥션의 조항 중 일부 (출처 : 헤리티지 옥션)
200만 달러에 판매돼 게임 최고 판매가를 경신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카트리지 (출처 : 랠리)
여기에 더해 레트로 게임 거래와 관련한 수상한 정황도 포착됐다.
8월 25일 해외 매체 'Proof'의 기자 '세스 에이브람슨'에 따르면 24일 헤리티지 옥션에서 판매된 <익사이트바이크>는 품질이 나쁘고, 종이 케이스에 곰팡이가 피어 있어 와타 게임즈에서 '5.0'의 등급을 받았다. 다만 곰팡이가 핀 게임 카트리지에는 빨간색 점수 스티커가 붙어 있어야 함에도 파란색 점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단순한 실수로도 볼 수 있지만(물론 와타 게임즈는 돈을 받고 게임을 감정하는 전문 사이트인 만큼, 이 경우에도 문제가 된다) '코믹 커넥트'에서 판매 중인 '6.0' 등급을 받은 <알파 미션> 카트리지에는 빨간색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세스 에이브람슨은 이를 들어 와타 게임즈가 헤리티지 옥션에서 거래되는 카트리지에 더욱 후한 평가를 매긴 것 같다고 지적했다.
(출처 : 트위터)
의도적으로 게임 카트리지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매물을 조정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세스 에이브람슨에 따르면 와타 게임즈는 설립 후 750개 이상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 카트리지에 가치를 매겼지만, 그 중 65개만 시장에 내놓았다. 이 정보는 와타 게임즈 측의 실수로 유출되었다. 세스 에이브람슨은 이들이 의도적으로 게임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매물을 천천히 시장에 내놓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8월 26일 게시된 트윗에 따르면 게임 카트리지 매물에 관한 보도 이후 <슈퍼 마리오 3>의 카트리지 매물이 크게 늘어난 정황이 포착됐다. 세스 에이브람슨은 "이런 건 처음 본다.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시세 조정의 신호탄인지 궁금하다"고 언급했다.
갑작스럽게 늘어나고 있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의 카트리지 매물 (출처 : 트위터)
현재 와타 게임즈는 다수의 해외 매체를 통해 "비디오에서 나온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고, 우리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 칼 잡스트가 이를 바로잡기 위해 우리에게 연락하지 않아 매우 유감이다"라며 공식 입장을 밝혔다.
헤리티지 옥션도 동영상에 "수많은 오해"가 있으며 "우리는 시장 조작과 같은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에 관련되었다는 주장에 강력히 반박한다"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리고 칼 잡스트를 미국 댈러스의 본사로 초청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