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지혜과학연구소 최문기 교수는 [놀이와 학습의 혁명 : 기능성 게임]이라는 주제로 학술 트랙 강연을 진행했다. 강연에 앞서 스스로를 게임 전문가가 아닌 심리학자라고 밝힌 최문기 교수는 놀이와 인간 학습발달의 관계를 심리학적으로 접근하여 풀어 냈다.
그는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한 기능성 게임의 특징과 접근 방향을 이야기했다. 또한 앞으로의 기능성 게임이 가진 가능성과 전망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 디스이즈게임은 연세디지털게임교육원 학생기자단과 KGC 2009 참관기를 제작합니다. 관람객의 입장에서 보고 들은 상세한 내용과 강연에 기대했던 점, 소감 등을 블로그 글쓰기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참관기의 내용과 의견은 디스이즈게임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혀 둡니다. /디스이즈게임 취재팀 |
■ 놀이는 가장 근원적이고 효과적인 학습 방법
“인류의 역사를 일주일이라고 본다면 지식을 이용한 학습 체계는 일요일 저녁 10시쯤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 발달에 있어 놀이의 중요성을 역설한 최문기 교수는 현재의 지식 기반 학습에 대해 이와 같은 의견을 밝혔다. 과거에는 명시적인 지식 체계보다 노동, 또는 놀이를 통한 학습이 더욱 우선시됐다는 의미다.
그는 심리학자 칙센미하일(Csikszentmihalyi)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들며 놀이와 일이 상호배타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성공한 사람(개인적인 만족도 포함) 200인을 조사한 칙센미하일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일과 놀이가 구분 없이 결합된 사람일수록 자신의 일에서 더 높은 만족감과 성취도를 올린다는 것이다.
최문기 교수에 따르면 학습과 발달 과정에서도 놀이는 많은 역할을 수행한다. 재미는 기억을 촉진시키고 그것을 통해 더 많이,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첫 번째 역할이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행동을 통해 학습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는 “사회적인 기술을 습득하거나 문제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기도 하며 규칙에 대한 이해를 돕는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 놀이는 암묵적인 학습체계를 구축한다
“여러분이 머릿속에서 사과를 떠올릴 때 그것이 어떻게 떠오르는 지는 모른다. 이것은 많은 무의식이 빠르게 작용한 결과이다. 우리의 지능체계는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암묵적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놀이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지식체계에 도움을 주는가에 대한 이야기에서 최문기 교수는 ‘무의식의 작용’을 핵심 요소로 들었다.
인간의 행동이 이뤄지는 과정을 본인이 의식적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명시적인 정보를 통한 교육은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반면에 게임은 이러한 암묵적인 사고를 빠르게 진행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여러 개의 스타킹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 다음, 왜 그것을 골랐는지를 설명하라고 하면 그것들이 모두 같은 스타킹일지라도 각자 나름의 이유를 댄다. 이처럼 의식은 무의식적인 부분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최문기 교수는 심리학자 니스벳(Nisbett)과 윌슨(Wilsom)의 실험결과를 통해 인간의 의식적인 작용은 자신의 무의식적 부분을 논리화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러한 의식적인 지식체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놀이를 통해 무의식적인 인지 구조를 반복적으로 경험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사회적으로도 게임의 중독성을 조장한다
“한국 청소년들은 놀 때는 불안하고 공부할 땐 지루해한다. 하지만 서양은 공부할 땐 지루할 수 있지만 놀 때 불안하진 않다. 사회적으로 게임의 중독성을 조장하고 있다.”
최문기 교수는 게임의 단점으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중독성에 대해 이와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게임 자체가 가진 중독성 이상으로 사회적인 여건이 학생들을 게임 중독에 빠지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지식 위주의 학습으로 인한 능동적인 참여가 힘들어 학생들이 학업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렇게 몰입의 대상을 찾지 못 한 학생들이 게임에 빠지면 계속되는 악순환으로 인해 결국 중독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 기능성 게임으로 게임과 놀이를 과학화
“게임이 과학화되면 체계적인 방법으로 놀이를 공급할 수 있다. 기능성 게임으로의 변화를 통해 게임은 과학화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될 것이다.”
최문기 교수는 게임의 과학화로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교육시장에서 점차 게임을 주목할 것이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접근방법으로 만들어진 기능성 게임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예견이 이어졌다.
또한 이러한 놀이의 과학화를 위해서는 감이나 막연한 예상 같이 직관에 의존한 기존의 게임 제작단계와 달리 과학적인 차원의 제작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리어스 게임 연구에는 시리어스한 과학이 필요하나는 것. 게임의 좋고 싫음의 수준이 아닌 인식체계 상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을 거쳐야 게임이 증진시키고자 하는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덧붙여 게임의 교육적 효과는 암묵적인 학습에 작용하기 때문에 명시적인 기준으로 측정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최문기 교수는 “따라서 현재로서는 정보의 전달보다는 인지력 발달에 도움을 주는 게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 기능성 게임이 재미없어 안 팔릴 것이라는 말은 판단기준의 오류
“치매치료를 위한 재활보다는 치매예방 게임을 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기능성 게임은 기존 게임 시장에서 말하는 재미에 기준을 잡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기능성 게임은 재미가 없어 안 된다는 시각에 대해 최문기 교수는 기능성 게임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생긴 오류라고 지적했다. 기능성 게임에서 재미는 해결해야 할 과제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능성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재미 이외의 목적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존 게임시장에서 가진 판단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최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기능성 게임은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제공하며 시장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 질의응답
Q. 몰입과 중독의 차이가 불분명해 보인다. 어떤 차이가 있는가?
A.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자극이 결핍됐을 때 통제력을 잃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로 보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게임 중독이라고 부르는 현상은 미국의 중독 기준 DSM-IV에 비춰 보면 중독이라고 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게임 중독에 대해 사회적인 이슈를 모으기 위한 일종의 과장된 표현이라고 본다. 어떠한 콘텐츠라도 그 정도의 문제가 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Q. 기능성 게임이라고 하면 학습적인 목적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기능성 게임과 그 시장은 이러한 부분이 어떤 식으로 다양해질 것이라고 보나?
A. 현재의 게임 산업처럼 하나의 독립된 시장을 갖추려면 이미 큰 규모를 형성하고 있는 교육시장으로의 유입이 필요할 것이다. 이후에는 소비자가 직접 자신이 원하는 기능을 제공하는 게임을 찾아서 이용할 수 있도록 바뀌어 갈 것이다. 그것을 통해 시장이 급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Q. 기능성 게임이 암묵적인 학습에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그것은 명시적인 정보와 상호작용할 때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보 전달을 위해서 기능성 게임은 어떤 방법을 찾아야한다고 보는가?
A. 명시적인 정보전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암묵적 기재와 명시적 정보가 합쳐져 전달되는 게임이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게임일 것이다. 더불어 명시적인 정보로 표현하기 힘든 내용에 대해 다양한 측면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하여 두 정보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 건설적인 놀이문화를 만들기 위한 철학을 담은 강연
이번 강연의 핵심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놀이의 가치에 대해 재조명'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더해졌다. 비단 게임이 아니더라도 많은 놀이문화들이 소모적이고 부정적인 것으로 취급받고 있는 요즘의 풍조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강의였다고 생각한다.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학생은 물론 현업 개발자들에게도 자신이 만들고자하는 게임의 근간이 되는 철학의 토대로 삼을만한 좋은 이야기들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게임이 가진 놀이적 성격에 대해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놀이를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단서를 열어주었다랄까. 단순히 말초적이거나 수동적인 자극에 기대지 않는 게임들의 출현을 기대하게 하는 강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