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케이스 끝난 지가 언젠데..." 이 기사를 클릭한 분이라면 분명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쇼케이스는 수 일전 마무리됐습니다.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와 <마블 스파이더맨 2>, <마블 울버린> 등 굵직한 신작에 관한 소식도 일찌감치 전해졌죠. 사실상 식어버린 '떡밥'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PS 쇼케이스에서 당신이 놓친 부분이 있었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그것도 본 행사에 앞서 소니가 공개한 짧은 홍보 영상에 말이죠. 아직 출시되지 않은 신작 게임 로고부터 특정 타이틀을 암시하는 듯한 의문의 숫자 등 짧은 영상에 담긴 수많은 '이스터에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요소를 한데 모아봤습니다. / 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21초쯤 등장한 '불꽃' 문양입니다. 얼핏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이 문양은 사실 <호그와트 레거시>의 메인 로고와 동일한 형태입니다. 실제로, 게임의 한글 로고를 잘 살펴보면 '호그와트'의 ㅎ 쪽이 불꽃으로 표현된 걸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죠. 영상 속 불꽃 역시 이와 유사합니다.
지난해 처음 모습을 드러낸 <호그와트 레거시>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세계관을 차용함은 물론, 호그와트 마법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의 모험을 그렸다는 사실로 인해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개발사 아발란체 소프트웨어는 완성도를 이유로 게임 출시일을 2022년으로 연기한 바 있죠.
일각에서는 해당 문양이 <인퍼머스>의 카르마 로고와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불꽃이 아니라 카르마 등급 중 '진정한 영웅'에 표기된 새의 날개라는 주장이죠. 2009년 첫 번째 시리즈를 시작한 <인퍼머스>는 많은 유저의 사랑을 받았던 액션 어드벤쳐 게임인데요, 2014년 <인퍼머스: 세컨드 선>을 출시한 뒤 수년 째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 쇼케이스에는 <인퍼머스> 신작에 대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해당 문양이 정말 <인퍼머스>를 향한 거라면, 이는 기다림에 지친 팬들에게 전하는 일종의 '메시지'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실제로, 몇몇 해외 매체는 개발사 서커 펀치 프로덕션이 새로운 <인퍼머스>를 개발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27초쯤 등장하는 미시마 가문의 로고에도 눈길이 갑니다. 이미 알고 계신 분도 있겠지만, 미시마 가문은 <철권> 시리즈의 대표 캐릭터 '카즈야'와 '헤이야치'의 가문으로, 게임 내 세계관에서 철권 토너먼트를 주최하는 집단입니다. 사실상 <철권> 시리즈를 상징하는 셈이죠. 그런 미시마 가문의 로고가 PS 쇼케이스에 떡하니 등장했으니 유저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PS에서 출시된 최후의 <철권>은 2017년 발매된 <철권 7: 페이티드 레트리뷰션>입니다. 약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만큼, 새로운 PS <철권>을 바라는 유저들의 목소리도 그 어느 때보다 높죠. 그리고 지난 5월, 반다이 남코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3이라는 숫자가 담긴 의문의 로고를 공개한 바 있습니다. 쇼케이스와 의문의 로고가 새로운 <철권>을 암시하는 건 아닐까요?
영상의 38초 구간에는 수많은 사람이 '지하철역'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오가는 장면이 등장하고, 바쁘게 계단을 내려가는 주인공 뒤로 'Valisthea - 06:16'이라는 메시지가 표기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감이 안 오실 테니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스퀘어 에닉스는 지난해 PS5 게이밍 쇼를 통해 <파이널판타지16>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게임의 캐릭터는 물론, 세계관에 대한 내용도 일찌감치 공개됐죠. 그리고, 게임의 주 무대가 되는 세계의 이름이 바로 바리스제아(Valisthea)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장면에 표기된 단어와 동일한데요, 우연히 겹친 거라 보기엔 너무나 낯설고 독특한 단어입니다.
단어 뒤에 새겨진 '06:16'에 대한 의견도 분분합니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파이널판타지16> 출시일이라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파이널판타지16>이 PS5 기간 독점으로 출시되는 만큼, 영상에 표기된 숫자가 무의미할 리 없다는 것이죠. 아직 스퀘어 에닉스는 게임의 출시일을 밝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영상을 1분 30초로 넘겨봅시다.
영상 속 캐릭터들은 총기로 추정되는 장비를 든 채 의문의 건물 내부로 진입합니다. 여기서 이들이 지나치는 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낯익은 로고가 하나 보입니다. <바이오하자드 4>에 등장했던 사이비 종교 단체 '로스 일루미나도스'의 로고입니다.
캡콤은 2019년 <바이오하자드 RE:2>를 시작으로 지난해 <바이오하자드 RE:3>까지 출시하며 꾸준히 구작 리메이크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2020년 해외 매체 사이에서는 <바이오하자드 4> 리메이크가 2022년을 목표로 개발에 착수했다는 이야기도 돌았죠. 심지어 비디오게임크로니클은 "<바이오하자드 4> 리메이크 개발팀은 규모가 크며 <데빌 메이 크라이 5> 개발진도 합류했다"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영상에 등장한 로스 일루미나도스의 로고는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나도 노골적인 떡밥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소니와 캡콤이 간접적으로나마 <바이오하자드 4> 리메이크 개발을 시인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이쯤에서 시곗바늘을 되감아 봅시다. 몇 년 전만 해도 개발사나 유통사가 진행하는 게임쇼는 꽤 정직했습니다. 별다른 내용이 없는 오프닝 영상과 인사말 이후, 신작에 관한 내용을 풀어냈으니까요. 하지만 최근엔 이러한 흐름이 조금 달라진 듯한 느낌입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의 수장 필 스펜서는 Xbox 시리즈 S 실물이 공개되기 전, 몇몇 해외 매체와의 영상 인터뷰 배경에 실제 기기를 배치하는 대담한 이스터 에그를 준비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시간이 지나 많은 유저의 놀라움을 자아냈죠. 덕분에 최근엔 필 스펜서의 책상에 무엇이 올려져 있냐에 따라 커뮤니티가 떠들썩해지는 상황도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스터에그 하나로 유저들이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회사 입장에서 굉장히 바람직한 구도가 펼쳐진 셈입니다.
소니가 개최한 PS 쇼케이스 2021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쇼케이스를 단순한 신작 발표회로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많은 이스터에그가 등장합니다. 공개는 됐지만 아직 출시되지 않은 타이틀은 물론, 베일에 감춰진 미지의 타이틀에 관한 떡밥까지 대거 쏟아졌으니까요. 덕분에 국내외 커뮤니티는 지금까지도 해당 쇼케이스에 등장한 떡밥에 관한 이야기로 분주합니다. 쇼케이스가 종료된 지 6일이 지났음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그림입니다.
소니가 이번 쇼케이스를 일회성 행사로 소모하는 걸 넘어, 유저들이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재생산하는 그림을 준비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 이유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소니와 MS가 펼치는 '이스터에그 대결'의 서막을 바라보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흥미로운 그림이죠. 향후 소니와 MS가 펼칠 창의적인 대결 구도가 무척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