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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백(rollback).
위키피디아는 롤백을 "데이터베이스에서 업데이트에 오류가 발생할 때,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라고 정의하고 있다.
라이브, 온고잉, 온라인, 네트워크 등등 여러 수식어와 무관하게 롤백은 게임 운영에 있어 치명적인 사고로 간주된다. 유저들의 쏟은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년 게임 콘텐츠 분쟁 접수 현황'을 보면, 지난 상반기 접수된 게임 콘텐츠 관련 분쟁 7,281건 중 롤백 문제를 포함하는 '콘텐츠·서비스 하자, 기술적 보호조치 미비'가 25%에 달한다.
이런 문제가 지속되자 지난 8월, 국회에서는 게임에서 롤백이 일어날 경우 청약철회를 의무적으로 가능하게 하며, 위반 시 기업에게 과태료를 물게 한다는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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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RPG <킹스레이드>는 한국의 베스파가 개발한 모바일게임으로 2017년 출시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게임이 나왔다 사라지는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4년이라는 기간은 '장수' 칭호를 붙여줄 만하다.
게임은 출시와 함께 매출 5위를 기록했고, 일본과 대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바 있다. 별다른 홍보와 캐릭터 뽑기 없이 이룬 성과다. <킹스레이드>는 뽑기형 과금 모델 없이 출시됐다. <킹스레이드>는 좋은 게임성과 적절한 BM으로 입소문을 탔다.
2013년 설립된 베스파는 <킹스레이드> 하나로 날개를 달았다. 회사는 2018년 12월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베스파는 상장 뒤 적극적인 투자 전략을 펼쳤는데, 봄버스, 하이브(HIVE), 넥사이팅 등 자회사에 이어 코쿤게임즈와 하이노드를 인수하고, 미국에도 법인을 설립하며 몸집을 키웠다.
베스파는 <킹스레이드>로 떴지만, 한편에는 '원 히트 원더'라는 평가가 붙었다. 베스파는 투자자들에게 <타임디펜더스>, <킹스레이드 2>, <샤이닝포스> 등 신작 출시를 통해 모멘텀을 마련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신작이 나올 동안 캐시카우 <킹스레이드>는 버텨줘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
베스파는 2018년 12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출처: 베스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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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 <킹스레이드>에서 롤백이 발생했다. 베스파는 9월 21일 자정 무렵 서버 환경 불안전 현상이 발견된 사실을 전했다.
약 40분 동안 이루어진 플레이 데이터가 사라졌고, 결제한 재화를 받지 못했거나 '각성'에 성공했지만 되돌려지는 피해를 본 유저가 생겼다. 이에 베스파는 소정의 전체 보상을 제공하는 동시에, 자사 CS 메일에 불편을 겪은 유저에게 피해 내역을 담은 메일을 보내면, 확인 뒤 도움을 주겠다고 공지했다.
게임 내 최상위 콘텐츠에 해당하는 '신벌 레이드'가 추가된 지 갓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개발사 측에선 명절 맞이 이벤트를 열었고, 추석 연휴를 맞아 시간 부담 없이 <킹스레이드>를 즐겼던 유저는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데이터 업체 모바일인덱스가 제공한 데이터를 살펴보면, 추석 연휴 동안 <킹스레이드>의 매출 순위는 소폭 상승했다.
베스파는 사과했지만, 오래도록 게임을 즐겨온 유저들은 분노했다. 유저 자신이 피해 사실을 찾아내 직접 메일을 보내야 하는 상황은 처음이었다. 업체 측 과실로 서버가 특정 시점으로 돌아갔는데, 일부 유저들에게는 그간 자신이 얻었다가 잃어버린 기록을 스스로 입증해내라는 의미로 이해됐다.
[Update 2021-09-29 17:07]
베스파는 공지사항에 언급된 전체 보상은 "한화 약 27만 원 상당의 게임 아이템"이라고 전했다. "이 보상에 아울러, 누락된 사항에 관해서 CS 메일을 안내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킹스레이드> 공식 카페에 게시된 공지사항. 직접 메일을 작성하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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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마다 유저마다 사정이 다르므로, 사고가 생겼을 때 합당한 보상 기준은 객관화하기 어렵다. 2018년 <소녀전선>의 XD글로벌은 긴급 점검 후 서버를 롤백하며 20만 원 상당의 재화를 이용자 전원에게 발송했다. 오픈과 동시에 롤백이 발생한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 오리진>에서는 피해 범위를 6,885개로 명확히 하고 전체 보상, 피해자 개별 보상, 청약 철회 과정 등을 안내하기도 했다.
이와 달리 로그를 볼 수 없는 유저가 40분간의 플레이 이력을 찾아내서(혹은 기억해서) 보내면 확인을 거쳐 보상하는 대응은 이례적인 조치라는 반응이다. 그리하여 이번 롤백 사태는 유저들에게 '트리거'로 작용했다. 게임의 국내 출시 초기 시절부터 <킹스레이드>를 즐겨왔다는 제보자는 "현재 서비스 중인 <킹스레이드>는 방치되고 있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신규 출시 캐릭터의 능력치가 3일 만에 하락했다. 그전에 캐릭터를 보유한 유저들은 기대와 다른 물건을 구매한 셈이 됐지만,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또 특정 캐릭터와 장비 조합이 대미지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버그가 발생했다. 회사는 보상으로 최상위 PvP 랭커들이 얻는 아이템을 지급했는데, 애써 보상을 얻은 랭커들은 반발했다.
포털사이트에 "스킵 버튼을 누를 수 없다"는 코멘트가 담긴 <킹스레이드> 광고가 실렸다. 닉네임이 노출된 유저는 '정말로 게임 중에 스킵 버튼을 누를 수 없어서 그렇게 평가했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했다. 회사는 광고를 게재하며 유저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 롤백이 당긴 트리거는 최근 연이어 일어났던 사건들을 환기시켰다.
잘못된 유저 평가를 허가 없이 게재했던 <킹스레이드>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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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백 사태가 일어난 뒤 <킹스레이드> 관련 커뮤니티를 둘러본 결과, 다수의 유저들이 '시즌 2' 내지는 <킹스레이드 2>를 언급하고 있다. 둘은 실상 같은 대상을 지칭하는데, 베스파가 신작을 개발하며 본작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킹스레이드 2>는 특이한 방식으로 공개된다. 기존의 <킹스레이드> 플레이 계정을 그대로 사용하게 하는 한편,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같은 앱에 덧씌워 <킹스레이드 2>를 서비스한다. 투자자와 유저들에게 <킹스레이드 2> 출시는 2021년 4분기로 약속됐다.
하지만 새로운 게임에 대한 정보는 다소 부족하다는 게 유저들의 공통된 평가다. 출시까지 3달 남짓 남았는데 게임에 관한 정보는 특별히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베스파는 지난달 <킹스레이드 2> 신규 캐릭터 4명에 대한 정보를 공개했을 뿐이다.
<킹스레이드> '시즌 1'에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개발 중인 '시즌 2'에는 정보 부족이 이어지고 있다. '시즌 2' 개발 때문에 <킹스레이드> 서비스에 역량을 쏟지 못한다는 직접적이고 확실한 정황 근거는 찾지 못했지만, 추측은 커뮤니티에서 확신처럼 떠돌고 있다.
5월 공개된 ‘더 파이널’은 <킹스레이드> '시즌 1'의 마지막 챕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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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분기, 베스파는 순손실 113억 원을 냈다. 출시로부터 수년의 시간이 흐르며 <킹스레이드> 또한 예전의 영향력을 잃었다.
8월 24일, 베스파는 일본에서 타워 디펜스 게임 <타임디펜더스>를 출시했다. 게임은 출시 직후 한때 일본 구글플레이 인기 1위를 기록했지만, 조사 업체 앱애니 데이터를 보면 현재는 랭킹 217위에 머무르고 있다. <타임디펜더스>는 일본에 이어 대만, 홍콩, 마카오에도 출시될 예정이지만, 4분기에 기대한 실적을 거둘 것인지 의문부호가 따라온다.
이제 글로벌 1,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한 <킹스레이드>의 시즌 2가 남았다. <킹스레이드 2>는 과연 유저들과 베스파를 구조할 수 있을까?
<킹스레이드 2>의 홍보 이미지 (출처: 베스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