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나로크 2>는 지난 2007년 5월 관심과 기대 속에 오픈 베타테스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완성도와 흥행성적은 기대치를 밑돌았다. 이후 그라비티는 <라그나로크 2>의 재오픈을 약속하고 리뉴얼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약 2년이 흐른 지금까지 리뉴얼 버전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라비티는 <라그나로크 2>와 관련된 부정적인 보도가 나올 때마다 “현재 리뉴얼 작업을 계속 하고 있으며, 완성도가 만족스럽게 나오지 않아 작업이 지연되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해 왔다. 지난 해 8월 새로운 이호준 CTO(최고기술경영자)를 통해서는 “내년(2009년) 10월에 리뉴얼 버전을 선보이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렇게 약속했던 10월이 지나 11월이 된 지금, <라그나로크 2>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 두 번째 바뀐 게임 엔진
온라인게임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엔진은 게임의 ‘심장’과 같다. 심장을 바꾸려면 엄청난 추가 작업이 필요하게 마련이고, 그만큼 시간도 더 걸린다.
그라비티는 원래 언리얼 엔진 2.5를 사용해서 <라그나로크 2>의 오픈 베타 버전을 개발했다. 그러나 엔진을 <라그나로크 2>에 맞춰 최적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첫 리뉴얼 작업에 들어가면서 국산 상용엔진인 ‘제로딘 엔진’으로 갈아탔다.
그렇게 1차 리뉴얼 버전이 나왔지만 완성도는 만족스럽지 않았고, <라그나로크 2>의 엔진은 다시 한번 바뀌었다. 현재 개발 중인 2차 리뉴얼 버전에 사용된 엔진은 바로 게임브리오. 국산 온라인게임에서 자주 쓰이는 엔진이다.
결국 <라그나로크 2>의 심장은 언리얼 엔진 2.5에서 제로딘 엔진으로, 또 다시 게임브리오 엔진으로 바뀐 것이다.
2008년 첫 업데이트 이후 서버만 열린 채 방치된 <라그나로크 2>.
■ CTO가 두 명이 된 그라비티
엔진이 두 번이나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은 가운데 가장 중요했던 역할은 개발팀을 이끄는 선장, CTO였다. 하지만 <라그나로크 2>의 올해 10월 리뉴얼을 공언했던 이호준 CTO는 올해 초에 그라비티를 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한동안 공석이었던 CTO 자리에 온 인물은 그라비티의 최대주주인 겅호의 호리 세이이치 개발본부장이다. 지난 9월 그라비티에 이사(CTO)로 부임한 호리 세이이치는 겅호에서 <그란디아 온라인>의 개발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이어서 지난 10월, 그라비티는 또 한 명의 CTO를 영입했다. 바로 KRG소프트에서 <열혈강호 온라인> 시리즈의 개발을 이끌었던 전진수 이사였다. 이로써 일본인 CTO와 한국인 CTO가 함께 공존하는, CTO가 두 명인 상황이 연출됐다.
■ 그라비티 경영 장악에 나선 겅호
현재 그라비티의 대표이사는 강윤석, 오노 도시로의 한일 공동체제다. 회사의 안살림을 챙기는 COO(최고운영책임자)는 과거 한일 공동체제였다가, 지난 해 9월 조직개편 때 겅호 출신 기타무리 요시노리 전무가 단독 COO를 맡았다. 이어서 올해 4월 오노 도시로 공동대표가 왔고, 올해 9월 호리 세이이치 CTO가 내정됐다.
겅호는 지난 해 2월 그라비티의 최대주주가 된 후 그라비티의 CEO(대표이사), COO(운영책임자), CTO(기술책임자) 자리에 모두 겅호 출신 인사를 배치했다. 그라비티의 지분 59.31%를 가진 겅호가 경영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관건은 이렇게 내정된 인물들이 과연 <라그나로크 2>에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그라비티의 호이 세이이치 CTO는 겅호에서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투입된 <그란디아 온라인>을 만들었지만, 결과물은 황당할 정도로 완성도가 낮아 일본에서조차 혹평을 받고 있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굳이 일본에서 온라인게임 개발로 성공한 경력이 없는 인물을 CTO로 데려온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최근 쌍용차 기술유출처럼 온라인게임 개발 노하우만 빼가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그라비티의 최대주주인 겅호가 <라그나로크 2>를 제대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궁금할 정도”라고 말했다.
올해 8월 일본 서비스가 시작된 <그란디아 온라인>.
■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겅호의 재정상황
일본 증시에 상장되어 있는 겅호는 그라비티를 자회사 및 자산으로 편입시켰다. 겅호의 올해 2분기(4월~6월) 실적을 살펴보면 매출은 25억 엔, 영업이익은 4억9천만 엔, 그리고 3억4천만 엔의 적자를 기록했다. 매출은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줄었고, 이익을 남기지도 못 했다.
올해 상반기(1월~6월)로 보면 순이익 1억5천만 엔을 기록했지만, 이는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식의 긴축경영으로 이뤄낸 결과다. 여전히 <라그나로크>의 매출 비중은 너무 높고, 멀티플랫폼 전략으로 전개하는 콘솔 게임 사업은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겅호의 주력인 온라인게임 사업은 올해 채널링으로 타사 게임 3개를 서비스했고, 직접 만든 <그란디아 온라인>을 지난 8월 론칭했지만, 일본의 한 게임웹진 독자평가에서 평균 40점(100점 만점)을 받을 정도로 완성도의 문제를 드러냈다. 매출에 도움이 될 확실한 신작은 없는 셈이다.
겅호의 올해 상반기(1월~6월) 지역별 실적.
일본에 비해 매출은 낮지만 한국 그라비티의 영업이익(오른쪽 끝)은 일본과 맞먹는다.
흑자전환과 매출상승이 시급한 겅호에게 그라비티 경영 장악은 필수적이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 상승에도 자회사 그라비티의 기여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일본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결국 겅호의 입장에서 현재 그라비티는 <라그나로크>를 업데이트하고 서비스하면서 이익률을 높게 유지하면 좋은 존재일 수 있다. 겅호에게 <라그나로크 2>를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할 심리적, 자금적 여유가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 그라비티 인수의 주체는 여전히 소프트뱅크
수 차례 제기됐던 그라비티 매각설의 요점은 ‘겅호가 그라비티를 중국 게임업체에 팔려고 한다’는 것이다. 나스닥 상장사인 그라비티, 그리고 일본증시 상장사인 겅호는 매각설이 나올 때마다 펄쩍 뛰며 부인해 왔다.
잠시 시간을 과거로 돌려 보자. 2005년 8월, 소프트뱅크 그룹은 4,000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그라비티를 인수했다. 이후 겅호에게 약 350억 원(당시환율 기준)의 헐값에 그라비티의 지분을 모두 넘겼다. 참고로 겅호의 최대주주는 지분 33.82%를 보유한 소프트뱅크BB주식회사다. 겅호도 소프트뱅크 계열사인 것이다.
결국, 만에 하나 그라비티를 매각한다면 의사결정의 주체는 겅호보다 윗선, 소프트뱅크 그룹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손해 보지 않는 비즈니스’를 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겅호는 그라비티, 겅호웍스, 게임아츠의 3개 자회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겅호의 최대주주는 소프트뱅크BB주식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