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만 1억5천만 부, 전 세계에서 3억 부 이상 팔린 만화 <드래곤볼>의 산실, 바로 일본의 집영사(集英社)입니다. <드래곤볼 온라인> 취재를 위해 일본에 간 한국 기자단은 집영사를 찾았는데요, 해외 미디어가 대규모로 집영사에 초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집영사 내부를 둘러보는 것도 제한적으로 가능했는데요, 그래도 언론에게 내부를 공개하지 않던 집영사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또한, <드래곤볼>의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를 발굴한 ‘귀신편집자’ 토리시마 상무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도쿄(일본)=박상범 기자
1926년 소학관에서 독립할 당시의 기념 사진. ‘영지(英知)가 모이다’라는 의미의 집영사는 관동대지진으로부터 2년이 지난 1925년에 탄생했다. 현재 집영사의 최대주주인 출판사 소학관(小學館)은 1925년 당시 취미와 오락성을 강조한 잡지를 집영사의 이름으로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26년, 소학관의 오락지출판부분이었던 집영사는 분사, 독립했다. 1926년부터 집영사는 소년, 소녀를 위한 잡지를 꾸준히 발행하면서 만화로 영역을 넓혀 가기 시작했다. 1949년에는 주식회사가 되었고, 1955년에는 지금도 발행되는 전설적인 소녀 만화잡지 <리본>이 창간됐다. 집영사는 이후에도 끊임 없이 만화, 문화, 생활 잡지를 창간했는데, <주간 소년 점프>(1968년)와 <영 점프>(1979년)는 <드래곤볼> <슬램덩크> <원피스> <나루토> 등 인기만화의 산실로 자리를 잡았다. 집영사는 만화 잡지 뿐만 아니라 문화, 생활 잡지도 활발하게 출간하고 있는데, 1971년 창간한 여성 패션잡지 <논노>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17개의 만화잡지를 정기적으로 출간하면서 패션, 문화, 생활 잡지도 다양하게 펴내고 있다.
사람 나이로 치면 80살이 넘은 집영사가 위치한 최신식 건물.
집영사 로비. 매우 깔끔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로비에 펼쳐진 그라비아 모델들의 대형 포스터는… 왜 있을까요?
정답(?)은 기사 마지막에 나와 있습니다.
■ 귀신 편집자, 토리시마 상무를 만나다
집영사를 방문한 한국 기자들 앞에 나타난 사람은 집영사의 상무 이사직을 맡고 있는 토리시마 카즈히코(오른쪽 사진)입니다. 주간 소년 점프 편집부에서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를 발굴, <닥터 슬럼프> <드래곤볼> 등의 만화를 연재 시켜 성공을 함께한 인물입니다. 먼저 <닥터 슬럼프>와 <드래곤볼>을 처음 봤을 당시의 느낌은 어땠을지 물어봤습니다.
“토리야마 아키라가 <닥터 슬럼프>를 처음 가져왔을 때 ‘이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드래곤볼>은 처음에 ‘이게 정말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천하제일무도회가 등장하면서부터 ‘이건 <닥터 슬럼프>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어쩔 때는 제가 만화를 보는 스카우터를 갖고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그의 별명은 바로 ‘귀신 편집자’. 작가의 재능을 알아보는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마음에 안 드는 작품은 작가가 보는 앞에서 원고를 세절기에 넣어 버리는 과감함을 갖고 있어 생긴 별명이랍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좋은 만화는 무엇일까요?
“제가 봤을때 순간적으로 눈에 확 들어오는 만화가 있습니다. 소년 점프에 한 달에 150편씩 신작 응모가 들어옵니다. 그 중에서 눈이 멈춰지는 게 한두 작품 있어요. 쉽게 말해 제가 가진 일종의 감이라고 할까요? 분명한 건 눈이 멈춘 작품은 지금까지 못 본 새로운 작품이었다는 겁니다.”
이때 갑자기 토리시마 상무가 폭탄 발언(?)을 했습니다. 자기가 괜찮다고 생각한 작품의 10개 중 9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거죠. 현장 관계자들의 당황스러운 웃음이 이어지더군요.
■ 편집자는 독자의 입장에서 재미만을 판단해야
토리시마 상무는 귀신 편집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지만, 귀신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작가와의 교감입니다. 여러 작품을 직접 보고 작가와 작품의 진행 방향을 끊임없이 상의하고 연구해야 하는데요, 그가 편집자이던 시절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바로 오직 하나, ‘재미’였습니다.
“<드래곤볼> 연재 당시를 예로 들면 다음 주 콘티가 팩스로 들어오는데요, 이때 편집자는 이 만화를 가장 먼저 보는 독자입니다. 이때 나는 머리를 완전히 비우고 작가의 노력은 신경도 안 쓰고 오직 재미만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재미가 있으면 그대로 가고 재미가 없으면 수정해 달라고 요청하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미가 없는 것을 작가에게 납득 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수정을 한 다음에 반응이 안 좋으면 작가에게 신뢰를 잃으니까요. 그래서 수정을 요구할 때 많은 신경을 씁니다.”
하지만 토리야마 아키라는 다른 작가와는 달랐다고 합니다. 토리시마 상무가 수정을 요구하면 수정하면서 동시에 그 수정한 것에 맞는 재미까지 곁들였다는군요.
예를 들어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손오공의 꼬리는 원래 그 캐릭터를 부각 시키기 위해 수정한 특징에 지나지 않았지만 토리야마 아키라가 이를 사이어인의 중요한 특징으로 발전 시켰다는 겁니다.
■ 토리야마에게 최고의 악역이었던 토리시마 상무
토리시마 상무를 소개할 때 <닥터 슬럼프>에 나오는 한 캐릭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바로 닥터 마시리트입니다. 토리시마 상무를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캐릭터죠. 그렇다면 이 캐릭터는 토리야마 작가가 넣은 것일까요? 아니면 토리시마 상무가 넣어 달라고 한 걸까요?
“그에 대한 진실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토리야마 씨가 <닥터 슬럼프>에서 악역으로 등장할 캐릭터의 그림을 그려 왔는데 악역의 임팩트가 없었어요. 그래서 토리야마에게 ‘당신이 아는 사람중 가장 악역이 있으면 그 사람을 그려라’라고 했더니 날 그려 왔더군요. 그래서 이걸 고치려고 했는데 이미 그때는 원고를 제본으로 넘겨야 하는 상황이었죠. 시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넘어갔는데 그 캐릭터의 인기가 날로 좋아아지더라고요. 그건 좋았어요(웃음).”
그만큼 토리시마 상무는 토리야마 작가에게 악역이었나 봅니다. 원고의 지적은 물론 마감 독촉 전화를 줄기차게 했을 테니 말이죠. 그래서 하루는 토리미사 상무가 토리야마에게 ‘마감을 지키지 못할 거면 멀리 있지 말고 도쿄로 이사를 오라’고 요구했답니다. 그랬더니 토리야마 작가는 ‘나는 지평선이 없는 곳에선 살기 싫다.’는 말로 일축했다는군요.
토리야마 작가에게 최고의 악역(?)이었던 토리시마 상무를 모티브한 닥터 마시리트.
■ 한국 만화작가들 뛰어나, 함께 일하고 싶다
일본 정상급 출판사의 상무인 토리시마에게 한국 만화 산업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습니다. 그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작가를 키워 낸 시장입니다. 특히 순정 만화는 유럽에서 일본의 만화와 견줄 만한 퀄리티를 갖고 있죠. 아직 소년 점프에선 한국 작가의 작품이 없는데 형제 회사인 소학관의 잡지인 소년 선데이에서는 한국 작가의 작품이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만약 상무 이사직이 아니라 실무직으로 내려간다면 한국 작가와 일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만화 시장의 현실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만화는 사장길에 접어들고 대신 인터넷을 활용한 웹툰이 성장하고 있죠. 이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만화왕국 일본의 상황은 어떨까요?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5~6년 전과 비교하면 단행본 판매량이 많은 차이를 보이죠. 그래서 일본도 모바일과 디지털을 활용한 만화의 매출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오프라인도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시장입니다. 우리는 오프라인과 디지털을 함께 키우면서 독자의 반응을 통해 진행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토리시마 상무는 몇 장의 종이를 보여줬습니다. 바로 <드래곤볼>의 디지털 작업에 쓰인 원본이었죠. 기존 오프라인에서 보지 못하던 색감을 입혀 드래곤볼 초기 연재분부터 디지털로 제공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토리시마 상무에게 만화 콘텐츠가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습니다.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바로 캐릭터의 힘이라는 거죠. 특히 저학년을 타깃으로 하는 매체에서 캐릭터의 힘은 막강하다는 겁니다.
토리시마 상무는 편집자가 캐릭터를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일해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속했던 주간 소년 점프의 편집실을 특별히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집영사 건물 4층, 소년 점프 편집실의 복도로 들어왔습니다.
잠긴 문으로 편집실의 내부가 살짝 보이는군요.
편집실의 통로에는 이렇게 수많은 포스터와 장식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가 캐릭터를 디자인한 <드래곤퀘스트> 시리즈도 보입니다.
그래도 명색이 <드래곤볼>의 출판사이니… 영화 포스터도 붙긴 했습니다만,
왠지 서글퍼 보이는 건 저만의 생각일가요…. -_-;
<원피스> 로드쇼의 홍보용 판넬입니다.
현상금 포스터에 얼굴을 넣고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일본은 물론 한국과 미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끄는 <나루토>의 모습입니다.
집영사의 여러 캐릭터들의 모습. 오랜만에 보는 마사루가 반갑네요.
얼마 전 발매된 <점프 얼티밋 스타즈>의 포스터입니다.
집영사를 포함한 일본의 수많은 만화 캐릭터들이 등장한 게임이죠.
소년 점프 편집부 습격! 갑작스런 취재진의 등장에 당황하는 직원들의 모습입니다.
소년 점프의 편집실 내부입니다. 생각보다 굉장히 넓었습니다.
역시 많은 분량의 책을 내는 만큼 직원도 많네요.
그러면 이제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을 살펴볼까요?
토리시마 상무가 “편집부가 매우 지저분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경고가 맞긴 맞네요. ;;
편집부 내부의 캐비넷에 올려져 있는 귀여운 쵸파 인형입니다.
사진으로는 작아 보이지만 크기가 초등학생만하답니다.
<데스 노트>의 류크와 아마네 미사의 피규어가 보입니다.
짧은 탐방을 마치고 나올 때 입구에서 눈에 띈 손 세정제입니다.
여러 사람의 손이 많이 타는 종이를 취급하는 곳 만큼 신종플루에 민감한가 봅니다.
위에서 왜 그라비아 모델의 사진이 많아 했더니 1층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더군요.
바로 그라비아 화보집 전시회! 집영사는 만화 외에도 다양한 출판 사업을 하고 있죠.
짧은 시간이었고, 그래서 더 아쉬웠던 집영사 탐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