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키워드가 전 세계 테크 산업을 집어 삼키고 있다. 전방위로 펼쳐지는 기술 트렌드의 ‘빅 웨이브’ 자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현기증 날 정도의 돈이 움직이는 와중에도 여전히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룬다는 사실에는 분명 위화감이 든다.
‘메타버스 광풍’을 향한 무수한 경계의 시선은 그런 맥락에서 거의 당연하다. ‘뭔지도 모를’ 일에 소중한 노력과 재력을 낭비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낭만적(혹은 ‘탐욕적’)인 누군가의 부주의로 인해 사회 자원이 무의미하게 소모되는 것도 달갑잖긴 매한가지다. 신기루를 쫓은 것은 내가 아닌데, 거기 쓰인 비용은 함께 낸다. 억울한 일이다.
“그래서 메타버스가 뭔데”라는 질문에는 종종 그런 함의가 있다. 메타버스가 대체 뭔지, 내가 모르는 것만큼이나 너도 모르는 것이 분명하니 제발 자중하라는 부탁이자 날 선 경고다.
따라서 거꾸로 ‘메타버스가 뭔지’ 나름의 정의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각광받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LG CNS 안무정 책임의 ‘메타버스론’도 '안심 되는' 명징성을 띈다. 그가 그리는 메타버스의 큰 그림은 몇몇 빅테크 기업의 야심찬 SF급 비전과 비교하면 다소 톤다운 되어 있지만, 그래서 그만큼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다.
지스타 2021 강연에서 안무정 책임은 ‘메타버스’ 트렌드의 급부상 원인과 향후 예상되는 발전방향, 더 나아가 개인과 기업이 메타버스 시대의 도래에 앞서 갖춰야 할 역량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펼쳐보였다. 주제 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안무정 책임은 개인적으로 메타버스 이전의 인상적인 기술 웨이브로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가상 아바타 ▲3D 프린팅 ▲VR·AR 등이다. 공통점은 사회를 점령할 것 같았던 초기 인상과는 달리 지엽적인 성공만 기록한 채 주류로 자리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VR·AR은 매우 최근 사례고, 지금 논하는 메타버스와 직간접적 관계도 있다. 등장했던 당시에는 상당한 인기였다. 그러나 HMD, 홀로렌즈 등 불편한 장비를 장착해야 한다는 범용성 허들을 넘기 힘들어 불리함을 안고 있었고 결국 대중적 기술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그러면 메타버스 또한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합당한 의심이다. 실제로 메타버스는 이미 과거에 '반짝' 관심 받았던 전적이 있다. 그래픽과 통신 기술적 한계를 극복 못해 2009년 폐쇄한 ‘다다월즈’ 같은 초기형 메타버스 플랫폼이 그 예시다.
그렇다면 이미 한 번 좌절됐던 메타버스의 꿈은 왜 다시 살아나고 있을까? 2008년 이화여대에서 출간한 논문에 단서가 있다. 이 논문은 놀랍게도 현재의 메타버스 업계 현황을 거의 그대로 예견하고 있지만 적중시키지 못한 한 가지 요소가 있는데, 다름 아닌 코로나19다.
코로나19라는 맥락을 빼놓으면 2000년대 초 ‘반짝’했다가 사라졌던 메타버스의 ‘재부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들 아는 얘기지만 코로나19는 메타버스를 더욱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사용해야 할 이유를 차고 넘치게 제공했다.
2015년 시스코가 만들었던 텔레프레즌스 같은 가상회의 서비스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던 것은 비대면 만남의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충분치 못했던 탓이 크다. 당시에도 이산화탄소 배출 절감, ESG 경영 등의 낱말을 위시해 비대면 회의의 이점을 강조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
반면 코로나 이후 1년 6개월 만에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원격 교육이 전면 가능해지고, '텔레프레즌스'에 비해 기능이 단순한 줌 등의 화상회의 서비스가 대세가 됐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생명과 안전이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는 메타버스 방면의 비약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유행 종료와 함께 메타버스 트렌드도 끝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안무정 책임에 따르면 꼭 그렇지는 않다. 기업들의 주도로 ‘메타버스’ 유행은 명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에게 메타버스는 이미 형성되어 버린 새로운 미디어 영역이다. 과거 SNS에서 그랬고, 모바일에서 그랬듯 기업들은 자사 제품을 홍보하고 고객과 만날 새로운 채널을 쉽게 놓지 못한다. 이미 발을 들여놓은 이상 계속 메타버스를 이용한 홍보와 기타 기업활동을 계속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사내 커뮤니케이션과 정보공유(업무회의), 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메타버스는 기업들이 미래의 고객을 미리 확보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어린 소비자를 자사의 충성 고객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이제 흔하다. 메타버스는 이런 마케팅 전략에 최적의 도구다. 이미 어린 유저들은 <로블록스> 등 매체를 통해 어른들이 상상하는 있는 것 이상으로 가상세계 이용에 익숙하다. 따라서 앞으로 펼쳐질 메타버스 비즈니스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가능성이 월등히 크다.
메타버스가 이렇듯 끝내 찾아올 흐름이라면, 미리 대비할 필요성은 분명하다. 개인 혹은 기업으로서 관련 역량을 키우고 메타버스에 어울리는 자신만의 콘텐츠를 준비해야 새 시대에 충분한 생존력을 지닐 수 있다.
첫번째로 키워볼 역량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메타버스에 접목해 ‘비접촉 비즈니스’로 디자인 하는 ‘기획력’이다. 안무정 책임은 그 예시로서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 속 언어 강습 사업을 소개했다.
이는 플랫폼 측에서 제공하는 정식 서비스가 물론 아니다. 유저 스스로가 언어 학습에 적합한 커리큘럼을 미련한 뒤 ‘수강생’을 초대, 가상공간을 활용해가며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고 안무정 책임은 말한다. 자신만의 경험과 지식을 비접촉 비즈니스로 만드는 과정인 셈이다.
두번째로 갖출 역량은 유니티, 언리얼 등 주요 게임 엔진을 이용하는 코딩 역량이다. 앞으로 여러 조건에서 3D 가상세계를 구축하려면 엔진 활용 능력은 개인 혹은 기업에게 강력하고 유용한 도구가 되어줄 것임에 분명하다.
마지막은 사업적 게이미피케이션 계획 수립이다. 게임들이 유저에게 특정 미션을 주고 보상을 지급, 소비를 유도하는 것처럼 앞으로 일반 기업들도 메타버스 안에서 같은 시도를 해 고객 만족도와 기업으로서의 효용을 동시에 챙길 수 있다. 정보 노출, 친밀도 상승, 감성 브랜딩, 그리고 고객의 실제 구매 유도 등 실질적 효과를 노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