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블록스>가 어린 게임 개발자들을 착취한다.”
한 해외 유튜브 채널이 2억 명 넘는 이용자를 보유한 거대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에 관해 제기한 주장이다. 22만 구독자 규모 게임 저널리즘 유튜브 채널 ‘피플 메이크 게임즈’(People Make Games)는 지난 8월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영상을 업로드했다.
그리고 최근, 해당 채널은 관련 영상을 하나 더 공개했다.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이 우리 영상을 내리라고 압박하길래 더 조사를 해봤다”는 제목의 이 영상은 현재 2,300개 넘는 댓글이 달리는 등 활발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의 ‘착취’란 무엇일까? 영상의 주된 내용을 요약해봤다.
유튜브 채널 'People Make Games'의 첫 번째 <로블록스> 비판 영상
<로블록스>는 게임 제작 플랫폼이다. 하지만 개발사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에 따르면 <로블록스>는 엄밀히 말해 ‘게임 플랫폼’은 아니다. 현재 이들은 ‘게임’ 대신 ‘체험’(experience)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제시되고 있으나, 대체로 '게임 앱'의 자체결제 시스템 운영을 금지하는 애플 앱스토어의 정책을 우회하기 위한 편법으로 이해되는 추세다. (본 기사에서는 편의상 ‘게임’으로 지칭)
<로블록스>에서는 제공된 무료 툴을 이용해 누구나 게임을 만들어 업로드할 수 있고, 또한 누구나 이러한 게임을 무료로 다운받아 즐길 수 있다. 제공되는 애셋 및 툴의 한계상 게임의 외관과 구조는 단순한 편이며, 이용자층은 어린이의 비중이 매우 높다.
그러다 보니 <로블록스> 게임을 만드는 ‘어린이 개발자’도 많다. 타미 바우믹 로블록스 코퍼레이션 부사장 또한 과거 “<로블록스>는 처음부터 어린이가 어린이를 위해 게임을 만드는 곳이었다”고 정의했던 바 있다.
피플 메이크 게임즈는 그런데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이 이런 어린이 개발자들에게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이익을 갈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은 공식 홈페이지와 공식 유튜브 채널 등에서 “누구나 상당한 수익(serious money)을 벌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광고한다. <로블록스>를 통해 큰돈을 벌어들인 게임 개발자들의 사례를 통해 플랫폼을 홍보하기도 한다.
이런 마케팅이 어째서 거짓이라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로블록스>는 절대다수의 게임이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로블록스>에 등록된 게임은 약 2,000만 개에 달한다. 그러나 그중 플랫폼에서 전면에 노출되는 것은 이미 수많은 유저를 확보한 소수의 게임 뿐이다. 나머지 게임은 노출이 전무해 거의 유저가 모이지 않는다.
만약 자신이 만든 <로블록스> 게임을 유행시키고 싶다면 수단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제한된다. 유명 스트리머에게 의뢰하거나, <로블록스>의 광고 상품을 구매하는 것 등이다. 어린이 개발자들이 실제로 성취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방법들이다.
심지어 현재 <로블록스> 게임 개발은 점점 더 그 규모가 커져 상위권 게임들은 대부분 ‘기업형’ 개발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한 어린 개발자들이 개발 및 마케팅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그 외에는 우연히 ‘바이럴’ 게임이 되길 기대하는 정도가 전부다.
더 큰 문제는 게임으로 어느 정도 수익을 올렸다고 해도, 여전히 ‘돈 벌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소형 게임’들이 벌어들인 작은 수익은 전부 로블록스 코퍼레이션 측에만 돌아갈 뿐이다.
이것은 <로블록스>의 수익을 현금화하는 절차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착취'다. <로블록스> 게임 개발자가 인게임에서 벌어들인 돈은 ‘로벅스’라는 가상 재화로 누적된다. 그런데 로벅스를 현금으로 찾을 수 있는 최소한도는 10만 로벅스부터다.
10만 로벅스는 약 1,000달러(약 118만 원)에 달한다. 로블록스 코퍼레이션 측에서 판매 수익의 30%를 수수료로 가져간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적어도 170만 원 어치의 인게임 아이템을 판매해야 비로소 ‘현금’을 받아볼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 이하의 매출을 올리는 게임의 경우, 이익을 보는 것은 로블록스 뿐이다. 개발자는 한 푼도 벌 수 없다.
심지어 170만 원 이상 매출을 올린 게임일 경우에도, 실제 ‘현금화’는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 막상 10만 로벅스를 인출 하면 실수령액은 118만 원이 아닌 약 41만 원(350달러)가량에 불과하기 때문. 현금으로 로벅스를 살 때와 로벅스를 현금으로 바꿀 때의 ‘환율’이 서로 일치하지 않아서다.
로벅스 상태로 남겨뒀을 때와 비교해 그 가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셈이다. 그런데 로벅스는 <로블록스> 내 모든 활동에 두루 사용된다. 당장 앞서 언급한 <로블록스> 광고 상품 구매에도 현금이 아닌 로벅스가 필요하다.
따라서 <로블록스> 활동을 계속할 마음이 있는 군소 개발자라면 로벅스를 현금으로 인출하는 것 보다,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로벅스 상태로 남겨두는 것이 유리할 때가 많다. 결국 실제 현금으로 환전되는 로벅스는 더욱더 적어진다.
그 결과 실제로 <로블록스> 개발자들이 가져가는 수익은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이 취하는 것에 비교해 지극히 일부다. 이는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의 공시 자료에서도 드러난 사실이다. 2020년 9월 기준으로 이전 9개월 동안 발생한 <로블록스>의 전체 수익 중, 개발자들에게 돌아간 것은 17%에 불과하다.
이 17%는 소수의 상위권 게임 개발자들이 가져가는 수익으로 추정된다. 전체 생태계를 봤을 때는, 대부분 개발자가 실질적으로 별다른 수익을 올리지 못한 채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에만 돈을 ‘벌어다 주는’ 구조라는 것이 피플 메이크 게임즈의 설명이다. 그리고 이런 개발자 중 상당수는 어린아이들이다.
피플 메이크 게임즈는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이 미국의 테크 산업 규제 미비를 파고들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1930년대 미국 채광 기업들이 운영했던 가증권(scrip) 제도의 예시를 들어 로벅스의 불합리성을 설명하고 있다.
당대의 미국 채광 기업들은 광부들에게 현금 대신 쿠폰처럼 사용되는 가증권을 지급했다. 가증권은 회사 내 상점에서 온갖 물건을 사는 데 쓰였다. 가증권으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회사가 제공했던 것.
만약 노동자가 원한다면 가증권을 회사에 제출해 현금으로 환전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회사가 책정한 낮은 ‘환율’ 탓에 가증권의 구매력에 비교해 확연히 적은 현금만 받을 수 있었다. 즉, 광산에서 번 돈을 들고 기업 밖으로 나서는 순간 상대적으로 가난해지는 구조였던 것.
결국 미국 정부는 그 불합리성을 인식해 1938년 법적으로 가증권 제도를 금지했다. 그런데 이와 거의 같은 원리로 운영되는 로벅스의 경우 관련 규제가 아직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있다는 게 피플 메이크 게임즈의 주장이다.
심지어 어린이 개발자들이 현실을 깨닫고 뒤늦게 <로블록스> 게임 개발을 그만두더라도, 그간 들인 노력이 대부분 허사로 돌아간다는 문제가 있다. 개발한 게임을 다른 플랫폼으로 옮길 수 없으며, <로블록스> 개발 도구를 숙달하며 얻은 지식을 다른 상용 개발 도구에 그대로 접목할 수도 없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상술한 내용을 담은 첫 번째 <로블록스>영상은 실제 해외 개발자 사이에 공유되며 논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일 수 있으나 영상 공개 이후 <로블록스>가 공식 홈페이지 홍보 내용에서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을 조용히 삭제하기도 했다. <로블록스> 게임 개발자들이 피플 메이크 게임즈 측에 더 많은 부조리를 제보하기 위해 접촉해오기도 했다.
이러한 반응에 힘입어 두 번째 영상을 기획하던 피플 메이크 게임즈는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의 의견을 직접 영상에 반영하기 위해 연락을 취했다. 그런데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은 되려 첫 번째 영상에 ‘여러 가지 오류가 있다’며 삭제를 종용했다고 이들은 말한다. 그 오류가 정확히 무엇인지 여러 차례 물었음에도 정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피플 메이크 게임즈는 전했다.
두 번째 영상에서 이들은 로블록스 코퍼레이션이 어린이 고객 보호에 있어 기업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로블록스> 게임 개발자 생태계의 어린 개발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관련 규정을 마련하지 않는다는 주장 ▲자제력이 부족한 어린 고객들이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아이템 투기 시장’을 운영 중이라는 주장 등을 담고 있다.
유튜브 채널 'People Make Games'의 두 번째 <로블록스> 비판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