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과 검찰의 법 해석이 달랐다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진법)’을 근거로 피고인들을 기소했다. 게진법 중에 “게임머니를 환전, 또는 알선하거나 재매입을 업으로 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시행령이 있기 때문이다.
게진법에서 환전을 금지하는 게임머니는 세 가지로 정의되어 있다.
① 베팅 또는 배당의 수단이 되거나 우연적인 방법으로 획득된 게임머니, ② 1번의 대체 교환 대상이 된 게임머니나 게임아이템, ③ 프로그램을 복제, 해킹하거나 비정상적인 이용으로 생산, 획득한 게임머니나 게임아이템이다.
1번은 사실상 고스톱·포커 등의 웹보드게임에서 사용되는 머니를 뜻한다. 3번은 오토(자동사냥) 프로그램을 이용했거나, 해킹 등으로 얻은 머니 또는 아이템을 의미한다.
이 중에서 검찰은 ‘아데나(리니지 게임머니)’도 1번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피고인들이 오토나 해킹으로 아데나를 얻었다는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검찰이 기소할 수 있는 근거는 “우연적인 방법으로 획득된 게임머니”라는 조항이었다.
하지만 재판부의 법 해석은 검찰과 달랐다. 아데나를 우연적인 방법으로 획득된 게임머니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심(항소심)과 3심(상고심)에서 피고인들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 현금거래 합법화로 볼 수 있나?
결국 “비정상적인 이용(오토나 해킹)으로 얻지 않았다는 전제 아래, 아데나는 환전이 금지된 게임머니로 볼 수 없다”는 판례가 나온 것이다. 게진법에서 환전을 금지한 게임머니의 대상이 사실상 고스톱·포커 종류였고, 검찰이 이를 MMORPG에도 적용하려다가 실패한 셈이다.
이번 판례는 관점과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례라고 생각하는 쪽은 현금거래의 합법화라고 주장한다.
반면, 이해관계를 떠나서 보면 검찰이 같은 근거로 현금거래를 기소하기 어려워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 바꿔 말해 현금거래를 해도 (판례만을 기준으로 볼 때) 기소되어 유죄를 받을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게진법의 시행령이 무효라는 의미는 아니다. 관련 조항의 해석에 대해 검찰과 재판부의 해석이 달랐을 뿐, 고스톱·포커류의 머니와 오토·해킹으로 얻은 게임머니의 환전(현금거래)은 여전히 불법이다.
<리니지>를 개발·서비스하는 엔씨소프트는 “판결 전문을 보고 공식 입장을 고민해 보겠다”며 무죄 판결에 대한 확대 해석을 우려했다.
이번 사건은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왔다가 2심에서 무죄로 뒤집어지고, 3심에서도 무죄가 나온 경우다.
국내 대형 현금거래 중개사이트인 아이템베이와 아이템매니아는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자 피고인들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두 업체는 대형 로펌에 피고인 2명의 변호를 의뢰했다. 유죄로 사건이 마무리될 경우 현금거래 시장에 불똥이 튈 것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피고인 측 증인으로 나선 단국대 법학과 정해상 교수는 게진법에서 환전을 금지한 게임머니는 우연적인 방법에 의한 것이라고 정의된 점을 파고들어 무죄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정 교수는 “<리니지>의 아데나는 오랜 시간을 들여 획득한 것으로 우연적인 방법에 의해 획득하는 고스톱·포커류의 게임머니와 동일하게 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증언했고, 이것이 2심과 3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는 영향을 미쳤다.
로펌과 증인들의 적극적인 변론으로 피고인들을 무죄 판결을 받았고,
■ 계류 중인 게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면?
이번 재판은 현재 시행 중인 게진법을 토대로 진행됐다. 무죄의 근거가 된 환전 금지 게임머니에 대한 정의도 현행 게진법이 기준이었다.
게진법은 계속해서 개정되고 있다. 최근 6개월 동안에도 세 번이나 개정안이 나왔다. 지난 해 9월과 12월, 그리고 올해 1월 1일에 개정안이 시행됐다. 국회에서 통과를 기다리는 새로운 개정안도 있다.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개정안에는 ‘게임머니 매매 금지에 대한 조항’이 추가되어 있다. 신설 조항에는 기업형식의 게임머니 생산자(속칭 작업장)와 매매에 대한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게진법의 환전 금지 대상이 고스톱·포커류였다면, 개정안에서는 일반적인 온라인게임에 대한 조항도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번 재판이 게진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에 진행됐다면 판결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국내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법원의 무죄 판결은 현행 게진법을 적용한 것으로 고스톱·포커류 게임머니 환전과 MMORPG의 게임머니 거래를 다른 행위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개정안이 통과된 후에 재판이 진행되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고 밝혔다.
■ 엇갈린 입장, 현금거래 다시 핫이슈로
이번 판결을 가장 반기는 쪽은 아이템 현금거래 중개업체들이다. 선두업체 두 곳에서는 로펌 비용까지 지불하면서 피고인들을 지원했을 정도로 무죄 판결을 바랐다.
한 아이템 거래 중개업체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인해 게임 아이템과 머니도 노동에 대한 대가로 인정 받게 됐다. 이로써 전반적인 게임 이용시간이 증가되어 전체 게임시장의 활성화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게임업계와 정부는 난감한 입장에 처했다. 사행성을 없애고 과몰입을 방지하는 등 ‘게임의 반작용’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현금거래 무죄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게진법 개정안 등 대처 방안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향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게임산업협회의 반응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현금거래가 활성화되면 게임산업이 발전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지금도 현금거래의 부작용으로 인한 피해와 불건전성이 논란이 되는 상황인데 오히려 사태를 키울 수도 있다. 무죄판결은 게임업체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일반 게임머니의 현금거래는 무죄로 판결이 나왔으니 이번 일을 계기로 현금거래를 인정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에버퀘스트>의 소니온라인엔터테인먼트처럼 퍼블리셔가 현금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면 매출과 산업규모를 키울 수 있다는 논리도 나왔다.
경인년 초,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현금거래 이슈가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