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엔씨소프트가 두 편의 신작 예고 트레일러를 동시에 공개했다. 주인공은 엔씨소프트의 차기 중요 타이틀로 주목받아 온 <Throne and Liberty>(이하 <TL>), 그리고 <TL>과 같은 세계에 기초한 신작 <프로젝트 E>다.
엔씨소프트로서는 ‘엄중한 시기’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요즘이다. 지난 2월, 전년대비 영업이익 55% 감소 등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엔씨소프트는 ‘글로벌 게임회사 도약’을 최우선 전략목표로 공표하고,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포지션을 강화하려면 다양한 장르 신작을 출시·성공시켜야 함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TL>과 <프로젝트 E>를 한 번 살펴보니 기존 그 어느 때보다도 시장 트렌드를 의식한 듯한 기류가 느껴진다. <TL>은 공개된 방향성을 실제 출시까지 지켜나갈 수만 있다면, 그간의 엔씨소프트 게임 중 가장 대중의 선호에 맞는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레일러와 관련 정보를 종합해 한 번 자세히 살펴봤다.
지난 실적발표에서 엔씨소프트가 밝힌 <TL>의 주요 공략 목표는 ‘서구권 게이머’다. 북미와 서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구매력이 높은 게임 시장이고, ‘코어 게이머’ 비중이 높다. <TL> 트레일러에 등장한 ‘기존에 못 본’ 요소 중 상당수가 이런 서구권 공략, 더 나아서는 코어 게이머 공략이라는 키워드에 일관적으로 들어맞는 점이 흥미롭다.
첫 눈에 두드러지는 점은 카메라 시점이다. 실적발표에서 엔씨는 <TL>에 대해 'PC와 콘솔에서 경험할 수 있는 풀 3D MMORPG'라고 미리 소개한 바 있는데, 이에 따라 PC·콘솔 유저에 두루 익숙한 3인칭 백뷰 시점을 메인으로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카메라 시점만으로 게임성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트레일러에서 확인된 ‘새로운 면모’가 그것뿐이라면 어떤 기대를 걸기엔 부족하다. 그런데 영상에 묘사된 인게임 콘텐츠 중에는 솔직한 말로 엔씨소프트 신작 소개에서 만나볼 것이라 예상하기 힘들었던 요소들도 많아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먼저 상자를 뛰어넘으며 이동하는 애니메이션과 흔히 ‘로프 액션’으로 일컫는 암벽 등반 장면이 연속 등장한다. 일반적 트리플A 게임에서는 흔하다고도 볼 수 있는 이러한 주변 오브젝트와의 상호작용, 맵의 수직적 활용을 트레일러에서 굳이 강조한 것은, 월드를 깊이 있게 구현하겠다는 엔씨소프트의 기존 발언을 재확인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엔씨소프트는 17일 자사 홈페이지에 공개한 <TL>, <프로젝트 E> 개발진 인터뷰에서 이 점을 상세히 언급했다. 안종옥 <TL> PD는 “월드의 레벨 디자인은 두 가지에 집중했다. 하나는 모든 공간을 심리스(Seamless)하게 연결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모든 공간을 플레이어가 입체적으로 느끼도록 구성해 이 공간을 잘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이어 “공간감을 위해서 순간이동 방식을 줄이고, 속도감 있게 고저 차를 넘나드는 이동 방식들을 고안해야 했다. 우리는 그 해답을 동물에서 찾았다. 육상, 수상, 공중에서 특화된 여러 동물로 변신하여 이동할 수 있고, 각 동물의 이동 기술들을 잘 활용해야 탐험이 가능한 지역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또한 트레일러에서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엔씨가 말하는 <TL>의 또 다른 특징은 입체적 인물과 개연성 있는 줄거리가 가미된 내러티브 콘텐츠다. 이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트레일러 장면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스토리 애니메이션 컷씬이다. 특정 장소에서 특정 오브젝트와 상호작용 할 때 펼쳐지는 것으로 보아, 탐험, 스토리 퀘스트 등 콘텐츠와 유기적으로 연계된 콘텐츠일 가능성이 있다.
다른 하나는 수집품을 조사하는 별도 인터페이스다. 이 또한 <레드 데드 리뎀션 2> 등 많은 트리플A 타이틀에서 시도된 적 있는 시스템으로, 사물이나 인물에 얽힌 비밀을 알아내고 추가 보상을 얻는 등, 내러티브적 풍부함을 보조함과 동시에 세계관 이해를 심화하는 장치로 자주 사용된다. <TL>에서도 마찬가지의 역할을 해낼지 궁금해지는 지점.
한편 대규모 보스 레이드 장면이 PVP 장면보다 월등히 많이 등장하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엔씨는 <TL>의 전투 콘텐츠에 대해 “엔씨소프트의 강점인 PVP가 들어가겠지만, PVE 콘텐츠도 많다”고 설명했던바 있다.
보스전 자체는 엔씨소프트 게임에서 익숙한 개념이다. 하지만 <TL>에 공개된 보스전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투마다 독특한 ‘기믹’이 보인다는 사실이 한 번쯤 기대를 걸 부분이다. 몬스터의 ‘부위 파괴’가 일어나는 장면, 패턴에 맞춰 유저들이 맵의 특정 구간으로 회피하는 모습, 심지어는 대형 몬스터 위에 유저들이 단체로 탑승하는 장면 등, 유니크한 레이드 패턴이 관심을 끈다.
<TL>과 동시에 공개된 <프로젝트 E>는 훨씬 낯선 타이틀이다. 게임플레이 영상은 없이 시네마틱만 공개되었다. 조선을 연상시키는 복식 및 건축물이 등장하는 한편, 괴수와 주술도 함께 묘사되면서, 동양적 판타지 세계관임을 짐작게 한다.
개발진 설명에 따르면 <프로젝트 E>와 <TL>은 서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게임이다. 같은 행성의 두 대륙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고 이들은 전했다. <TL>과 <프로젝트 E>는 각각 현실 속 서양과 동양의 중세를 모티프로 삼았다는 설명.
같은 행성인 만큼 세계를 구축하는 기본 원리, 몬스터나 마법의 기원이 동일하다. 그러나 두 대륙에 공통으로 일어난 ‘글로벌한’ 사건에 대해 각 문화권이 그 해석을 달리하고, 이에 따라 각자 대륙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성격도 서로 다르다고 엔씨는 전했다.
해당 세계관은 강력한 에너지가 응축된 봉인석 파편이 행성 곳곳에 퍼지며 주요 사건이 전개된다. 이때 <TL>의 솔리시움 대륙에서는 봉인석을 얻으려는 전쟁이 펼쳐졌다. 반면 <프로젝트 E>에서는 조각들이 특수한 지형과 신수를 만들어내는 등의 영향을 줬다는 설정.
이러한 설정대로라면 <프로젝트 E>는 전쟁보다는 괴수 사냥에 초점을 맞출 듯하지만, 공식적인 장르는 아직 발표한 바 없다.
지난 2월 엔씨소프트는 신작 공개 방식에 변화를 주겠다고 예고했었다. 3월부터 준비 중인 신작 관련 내용을 공개하고 유저 피드백을 받는 등, 양방향으로 소통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TL>과 <프로젝트 E> 트레일러 공개는 그 신호탄인 셈이다. 실제로 엔씨는 두 게임 개발진과의 대담을 자사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등 이전과는 사뭇 다른 소통법을 시도하고 있다.
이 말처럼 엔씨가 앞으로 개발 프로세스에서 현황을 적극 공개하고 이에 대한 유저 피드백을 게임에 반영해나간다면, 사전 공개되는 게임 콘텐츠와 실제 게임 내용 사이의 괴리는 크게 좁혀질 것으로 보인다. 모처럼 창작적 시도가 많이 담긴 트레일러들을 실물과 비교해볼 날을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