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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노 맨즈 스카이림?…스타필드 ‘유사성’ 논란, 그리고 불안

1,000개의 행성, 제대로 나올까?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2-06-15 10:22:07

 

(출처: 노 맨즈 스카이 레딧)

 

“네 숙제 좀 베껴도 돼?”

“그래. 대신 베낀 티 안 나게 좀 다르게 해봐”

“알았어” 

 

위 이미지는 72만 명 규모 <노 맨즈 스카이> 서브레딧 커뮤니티에서 13일 기준 가장 많은 4,400여 회의 추천(upvote)을 받고 최상단에 걸린 게시물이다. 표절 논란이 발생했을 때 흔히 사용되는 밈에 <스타필드>와 <노 맨즈 스카이>를 대입한 내용이다. 14일 현재 기준 추천 수는 1만 1700여 개다. 왜 이런 짤이 인기를 끌고 있을까?

 

6월 13일 Xbox & 베데스다 게임 쇼케이스에서 <스타필드> 게임플레이 영상이 최초로 공개됐다. 영상에서는 탐험, 전투, 건설 등 <스타필드>의 주요 콘텐츠들을 미리 엿볼 수 있다. 영상에서는 기존 베데스다 게임들에 비교해 높아진 퀄리티와 방대해 보이는 스케일이 드러나 여러 게이머가 기대를 밝히고 있는 상황.

 

그런데 이 영상에 일종의 ‘기시감’을 호소한 유저들도 많다. 우주배경 생존 어드벤처 장르에서 널리 인정받는 헬로 게임즈의 <노 맨즈 스카이>와 여러모로 비슷하다는 감상이 속출하고 있다. 소니 출신 게임작가 겸 저널리스트 알라나 피어스는 트위터에서 다음과 같은 ‘짧고 굵은’ 한 마디로 감상을 정리했다.

 

(출처: 트위터)

“노 맨즈 스카이림”

베데스다의 오픈월드 RPG <스카이림>과 <노 맨즈 스카이>를 합친 말장난이다. 많은 게이머가 여기에 ‘천재적 비유’라며 공감을 표하고 있다. 비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평소 호의적인 기사를 많이 쓰는 편인 IGN도 가세했다. 쇼케이스의 실망스러운 부분을 지적하는 기사에서 IGN은 <스타필드>를 “그냥 못생긴(ugly) <노 맨즈 스카이>”라고 평가했다.

 

 

# 같은 ‘우주 게임’이라서 그런 것 아냐?

 

우주는 상상력을 제한 없이 펼치기 좋은 배경이고, 실제로 우주 테마 게임의 메카닉과 스토리는 다양하다. 유저들은 우주의 멸망을 막거나(헤일로, 매스 이펙트),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거나(서바이빙 마스, 산소미포함), 우주선을 만들어 날리거나(커벌 스페이스 프로그램), 괴물에 쫓기는(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 등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여러 ‘우주 게임’ 중에서도 자유도가 높아야 할듯한 오픈월드형 장르에서는 오히려 비슷한 게임성이 공유되는 역설적 경향이 있다. 행성 탐험, 성간 탐험, 기지 건설, 자원 채취, 무역, 우주 전투, 지상 전투 등의 전형적 액티비티를 공통으로 다루는 게임들이 다수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타이틀에는 크게 <엘리트 데인저러스>, <이브 온라인>, <아스트로니어>, <스타 시티즌>, <노 맨즈 스카이> 등이 있다. 인게임 활동이 아주 세세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겹치는 점은 분명 많은 게임들이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스타필드>만 유독 <노 맨즈 스카이>와의 유사성을 지적당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왜 ‘베낀 숙제’라는 꼬리표가 벌써 따라붙고 있는 것일까?

 


 

 

# 눈에 띄는 몇몇 ‘디테일’

 

먼저 <스타필드> 트레일러는 몇몇 디테일 면에서 <노 맨즈 스카이> 유저들이 눈치챌 수밖에 없는 ‘닮은꼴 장면’을 몇 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생물 스캔’ 인터페이스에서는 대상 생물이 시각적으로 하이라이트 되는 모습, 조사를 통해 해당 행성의 ‘연구 진척도’가 올라가는 시스템 등이 <노 맨즈 스카이>와 비슷하다. 동굴 벽면에 붙은 철광석에 빔을 쏴 채취하는 장면 역시 비주얼뿐만 아니라 콘셉트 상으로도 과하게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IGN은 이런 유사성에 대한 팬 반응을 설명하면서, 아예 서로 비슷해 보이는 장면들을 엮어 만든 영상을 트위터에 게시하기도 했다. 해당 영상은 약 2,000번 리트윗됐고 9,000번가량의 ‘마음에 들어요’를 받았다.

 

영상 속에는 ▲주인공을 따라 움직이는 이족보행 로봇 ▲기지 건설 ▲외계 생물과의 조우 ▲지상 전투 ▲우주 전투 ▲마을 방문 등 두 게임의 주요 콘텐츠들이 나란히 비교된다. 실제로 그래픽 스타일 등 비주얼을 제외하면 콘셉트 측면에서 겹치는 부분을 많이 찾을 수 있다.

 

물론 이 중에는 장르적 공통점을 고려할 때 ‘베끼기’로 단정 짓기 매우 어려운 부분들도 있다. 이를테면 우주선 간의 ‘도그파이트’ 장면은 이미 수십 년 전 <스타워즈>, <스타트렉> 등 고전 작품에서 그 전형이 완성된 유서 깊은 연출이다.

 

<스타필드>와 <노 맨즈 스카이>를 비교한 IGN 영상.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출처: 트위터)

 

 

# 너무 큰(?) 교집합

 

그런데, 장면 각각의 유사성과는 별개로, 이렇듯 나란히 비교할 만한 장면이 많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눈여겨볼 만하다.

 

상술된 ‘우주 오픈월드’ 게임들은 공통점도 많지만, 구체적인 테마가 달라 전혀 다른 감상을 느끼게 준다. 예를 들어 <아스트로니어>는 행성간 모험보다는 지표 위 활동에 중점을 맞춘다. 반면 온라인게임 <이브 온라인>은 주로 함선을 이용한 무역, 약탈 등 활동에 집중하고 있어 다른 게임들과 차별화된다.

 

한편 <스타필드>는 트레일러에 드러난 모습들을 볼 때 <노 맨즈 스카이>와 중첩되는 교집합의 영역이 넓은 편이다. 성계 탐험, 행성별 자연환경 및 토착 생물 연구, 우주 및 지상에서의 전투, 제트팩을 이용한 이동 시스템, 미지의 구조물 조사, 기지 건설과 기술 연구 등등 요소가 서로 겹친다. 이는 결국 ‘우주 탐사’라는 게임의 기본 테마를 구현하는 구체적 방법론에서 비슷하다는 인상을 준다.

 

한 유저는 이 장면에 "<노 맨즈 스카이>의 효과음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평했다.

 

# 베데스다는 ‘반쪽짜리 창작’을 했나

 

그런데 <스타필드>는 장르 상으로 ‘오픈월드 생존 어드벤처’가 아닌 ‘오픈월드 RPG’다. 그리고 실제로 이 지점에서 <노 맨즈 스카이>와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스타필드>는 인게임 도시의 규모, 디테일 면에서 <노 맨즈 스카이>보다 월등히 방대한 모습이다. NPC, 대화 시스템도 더 복잡하게 구현된 듯하다. 역사를 지닌 팩션들이 있고, 팩션별 퀘스트도 나뉜다. 레벨업에 따른 스킬 획득, 아이템 제작과 같은 캐릭터 성장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

 

사실 이런 이유로 기존 <노 맨즈 스카이> 팬 중에는 <스타필드>를 비판하기는커녕 이 게임을 통해 <노 맨즈 스카이>에서 제안된 여러 아이디어를 더 완성도 높게, 그리고 다른 방향에서 즐길 수 있다는 기대를 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처럼 두 게임은 설령 그 기틀이 비슷하다고 인정할지라도 막상 서로 다른 느낌으로 플레이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두 게임의 차별성이 RPG 측면에 주로 치중된 것이 사실이라면, 여전히 <스타필드>의 오리지널리티는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관점에 따라 ‘나머지 중요한 반쪽’인 오픈월드 측면에서 <노 맨즈 스카이>에 큰 빚을 진 것으로 판단할 수 있어서다.

 

<스타필드>의 생물 스캔 장면

 

 

# ‘옛 버릇’에 대한 불안

 

특히, 절차적 생성법을 통해 방대한 우주 공간을 구현한다는 아이디어는 <노 맨즈 스카이>가 내세우는 핵심 특징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물론 <노 맨즈 스카이>와 달리, <스타필드>의 1,000여 개 행성은 실시간으로 자동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전 생성 후에 제작진의 수동 작업을 거친다는 차이가 있다. 베데스다는 각각의 행성에 직접 ‘휴먼 터치’를 가함으로써 탐험하는 재미를 구현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스타필드>의 ‘반자동 우주’가 <노 맨즈 스카이>의 ‘자동 우주’에 비해 얼마나 더 디테일 면에서 뛰어날 것인지, 더 나아가 얼마나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할 것인지에는 물음표가 찍힌다. 베데스다의 게임 제작 방식에 관한 최근의 ‘폭로’ 때문이다.

 

지난주 해외 게임 뉴스 블로그 코타쿠는 베데스다 출신 직원 10여 명과의 심층 인터뷰 기사를 통해 <폴아웃 76> 제작 당시 불거졌던 베데스다의 착취적 기업문화 이슈를 폭로한 바 있다. 요약하면 베데스다는 제작진에게 과도한 크런치를 요구했고, 이에 여러 직원이 떠났으며, 게임 완성도는 잘 알려진 대로 처참했다는 내용이다.

 

나름 명예회복을 했지만, <폴아웃 76>은 대부분 게이머에게 재앙으로 기억되고 있다.

 

인터뷰이들은 토드 하워드가 대외적으로 크런치 문제를 잘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역겨움’을 느꼈으며, 산하 스튜디오를 방임하는 MS의 특성상 앞으로도 베데스다의 제작 문화는 지속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이런 제작 이슈가 사실이라면, <스타필드>의 완성도 역시 중대한 리스크를 안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폴아웃 76> 출시 당시의 ‘NPC 실종’ 이슈 또한 불안함을 가중하는 요소다. <폴아웃 76>은 NPC가 전무한 상태로 출시해 숱한 비난을 받았다. 이번 고발 기사에 따르면 이것은 출시 스케쥴을 맞추기 위한 임원들의 선택이었다. 싱글플레이용 엔진을 바탕으로 멀티플레이어를 만들기 위해 많은 작업이 필요했고, 이 때문에 NPC를 비롯한 주요 콘텐츠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

 

만약 직원들의 예상대로 베데스다가 앞으로도 이러한 제작관행을 유지한다면, 게임의 주요 피쳐 중 일부가 포기될 가능성은 작지 않아 보인다. 특히 수작업을 통해 1,000여 개의 행성에 디테일을 채워 넣겠다는 약속은 베데스다가 기존 구현해온 콘텐츠와 비교했을 때도 더욱더 까다로운 작업인 만큼, 제대로 이행될 것인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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