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 내 성인게임 규제의 서막일까?
지난밤 국내 게임 커뮤니티는 떠들썩했다. 스팀에 입점한 <오크 마사지>, <인큐버스> 등 성인게임들의 국내 판매가 중단되었다는 소식이 확산했기 때문이다. 두 게임 개발사는 공지를 통해 한국 정부에 의해 규제된 것 같다며, 기존 판매된 게임들의 이용은 막히지 않는다고 알렸다.
취재 결과 이번 성인게임의 차단은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밸브 측에 협조 공문을 보내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유저들은 이것이 정부의 스팀 내 성인게임 규제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정말 그런 것일지, 사건의 내막과 의미를 살펴봤다.
먼저 현행법상 게임위는 이번에 차단된 게임들의 국내 유통을 막을 분명한 명분과 권한이 있다.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게임법)에 따르면 국내에서 게임물이 ‘합법적으로’ 유통되기 위해서는 심의를 거쳐 등급분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등급분류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직접 하거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한 ‘자체등급분류 사업자’가 한다. ‘자체등급분류 사업자’는 등급분류기준이나 게임위와 협약한 별도 기준에 따라 자체적으로 서비스하는 게임의 등급을 매길 수 있다. 19세이용불가 등급을 제외한 나머지 게임들을 자체적으로 등급분류해서 서비스할 수 있는 제도다.
밸브는 그러나 현재까지 둘 중 어느 쪽의 절차도 따르지 않고 있다. 구글플레이스토어, 에픽게임즈 등 다른 글로벌 게임 유통 플랫폼들의 경우 자체등급분류 제도를 준수한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유독 국내 규제를 많이 회피하고 있는 것이 객관적 사실.
따라서 만약 게임위가 엄격해지기로 마음먹는다면, 스팀의 무수한 게임 중 타 플랫폼에서 등급을 분류받은 게임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국내 유통을 막을 수 있다. 게임위는 실제로 '국내 시장 유통을 목적으로 한 스팀 게임'을 제재 대상으로 두고 있다.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한국어화 여부 ▲국내 다운로드 수 ▲국내 사용자 수 등이다.
또 하나의 명분은 이번에 차단된 성인게임의 경우 '민원제기'에 따른 공문 전달이라는 점이다.
게임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스팀에 해당 유형의 몇몇 게임들이 유통되고 있으므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민원이 있었다. 모니터링 결과 해당 게임들은 국내 기준으로 등급을 아예 받을 수 없는, 등급거부 수준의 콘텐츠로 판단되어 밸브에 공문을 통해 이를 전달했다. 이에 밸브가 개발사에게 게임위 판단을 전달해 판매 중지 결정이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게임의 높은 수위가 문제시됐다는 의미다. <오크 마사지>와 <인큐버스> 두 게임은 모두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성행위가 묘사된다. 이 경우 음란물 유포를 금지한 정보통신망법에 저촉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국내 유통이 원천 불가한 콘텐츠인 셈.
관계자는 “해당 콘텐츠는 게임위 기준을 상회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청소년 이용 불가 등급 분류조차 힘든 것으로 판단된 듯하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정식 심의를 신청해도 등급 보류에 해당하고, 등급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는 법에서 정의한 음란물 유통에 해당하는 상황에서 민원 제기에 따른 처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위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앞으로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여타 스팀 게임들의 국내 판매를 금지하게 될까? 게임위에 따르면 기존의 분위기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밸브가 현재 태도를 유지하는 한 스팀상 개별 게임을 게임위가 속속들이 살펴 제재를 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관계자는 “밸브는 자체 등급분류사업자가 아니다. 게임위는 그간 밸브 측에 국내 제도 편입을 계속 요청해왔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면서, “자체등급분류를 받은 콘텐츠의 경우 (게임위에 의한) 직접적 모니터링과 후속 처리가 용이하지만, (글로벌 사업자인) 스팀의 경우 게임위가 먼저 나서서 그 안에서 유통되는 게임들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전했다.
다만 민원이 제기될 경우 처리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 게임위는 법을 집행하는 기관으로 민원이 제기될 경우 해당 민원에 대한 처리를 반드시 해야 하고 그 결과를 민원인에게 통보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이는 스팀의 모든 게임에 대해서 등급분류를 할 수는 없지만, 민원이 제기될 경우 우선적으로 모니터링을 통해 법적인 허용 기준을 넘어간다면 이에 따른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스팀 게임 외에 해외로부터 반입되는 음란 도서 및 영상물 등도 정보통신 보호법에 따라서 세관에서 적발시 모두 압수조치 되는 것과 비슷한 처리로 볼 수 있다.
판매 중지된 또 다른 게임 <인큐버스>의 공지 내용
그동안 게임위는 실제로 스팀 게임 제재를 가하지는 않아 왔다. 밸브에 대한 게임위의 자세는 2020년 있었던 스팀게임 국내 차단 논란 당시에도 드러났다.
2020년, 일부 스팀 입점 게임사들이 “한국에 게임을 판매하려면 한국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밸브 측의 안내를 받았다고 대외적으로 밝혔다. 이에 한국 유저들 사이에는 게임위에 의해 스팀 게임이 한국에서 일괄적으로 판매 정지당하는 것 아니냐는 ‘지역 차단’ 우려가 확산했다.
그러나 당시 게임위는 공식 성명을 통해 관련 제도를 스팀에 ‘안내’했을 뿐 직접 제재 의사를 드러낸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재홍 당시 위원장이 발표한 입장은 다음과 같다.
“국내 유통목적 게임물이 등급분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하여 밸브(Valve, 스팀플랫폼 운영사업자)와 지속 논의해 왔다. 주요 논의내용은 자체등급분류 제도 및 해외게임물 등급분류 신청 절차 관련 사항이다.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최근 위원회는 해외 게임사업자가 직접 위원회로 등급분류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한 바 있고, 국내에서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는 게임물에 대하여 해당 사업자에게 이 제도를 안내하도록 밸브와 협의하였으며, 밸브에서 관련 안내를 실시했다.”
즉, 자체등급분류 사업자 등록 등 수단을 통해 국내에서 게임을 합법적으로 유통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줬을 뿐, 게임위가 직접 스팀 게임들을 일괄 규제하겠다는 의사가 아니라고 밝힌 것이다.
한편 밸브는 당시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것과는 달리 아직 제도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번 게임위 공문에 순순히 응한 것을 봤을 때, 적어도 게임위가 직접 요청할 경우 협조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