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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이승찬 식 ‘평생 게임만 만들고 살기’

넥슨 컨퍼런스 이승찬 본부장 키노트 강연

정우철(음마교주) 2010-05-25 10:29:17

 

게임 개발자로서 평생 게임만 만들면서 살 수 있을까? 말은 쉽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어려운 일이다.

 

상당수의 국내 게임 개발사 사장들의 출발점은 개발자였다. 게임을 만든다는 것, 그래픽이나 사운드, 심지어 프로그램 코딩까지 수많은 공정이 있다. 이중 한 과정에라도 참여하는 개발자 중에서 지금까지 평생 게임만 개발하고 있는 개발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과연 평생 게임만 만든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넥슨 컨퍼런스 키노트 연사로 나선 이승찬 신규개발 1 본부장이 자신의 이야기로 구성한 평생 게임만 만들고 사는 방법을 들어봤다. /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기자


 

평생 게임 나부랭이나 만들고 살라고?

 

이 거친 부제는 PT의 첫 주제였다.  

 

이승찬 넥슨 신규개발 1본부장(오른쪽 사진) <메이플스토리>통해 대박의 꿈을 이룬 사람 중 한 명이다.

 

소위 개발자들이 한번 쯤 꿈꾸는 성공신화를 젊은 나이에 달성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실패도 경험했다. 그것도 비교적 젊은 나이에 말이다.

 

76년생인 그가 게임을 처음 접했던 어린 시절에 오락실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시기였다. 지금은 이전에 비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당시 게임은 사회적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어둠의 놀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승찬 본부장이 게임업계에 뛰어든 당시에도 마찬가지다.

 

게임회사에 다닌다고 말을 꺼내기가 힘들어 넥슨에 다니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당시 무선전화기 제조업체인 에 다니고 있다고 오해하는 게 당연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게임이 산업으로 발전하고 경제적 성공을 이끌면서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선망의 직업으로 떠오르는 시대가 됐다.

 

과거 평생 게임을 만들며 산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던 이승찬 본부장도 지금은 평생 게임만 만들고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불과 10년이라는 사이에 과연 어떻게 바뀌었을까?

 

 

게임산업 발전에 따른 개발자의 입지

 

90년대 후반, 게임산업의 도입기라 할 수 있는 당시는 오락실과 해적판 게임이 당연시 되던 시대였다. 게임 개발자는 라면을 먹으며 게임 개발에 몰두하던 때였다. 즉 게임이 너무 좋아 미쳐야만 개발할 수 있었던 시기로 먹고 살기 위해서 책 쓰기, 번역 등의 부업을 해야만 했던 시대였다.

 

해외에서는 개임 개발자인 존 카맥이 페라리를 타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막연한 동경을 하던 시절이기도 합니다라고 이승찬 본부장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결코 농담에 머물진 않았다.

 

90년대 후반 IMF시대를 맞이한 당시 벤처 열풍이 불면서 온라인 게임 제작은 개발자의 로망을 넘어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했고 <바람의 나라> <리니지> 등 대박 신화의 탄생으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이를 기회로 게임업계에 인력이 유입됐고 병역특례 제도를 통해 고급인력이 추가됐다.

 

즉 게임 만들기가 경제적 보상으로 이어지던 시기인 셈이다.

 

2000년대 후반까지는 규모의 경제가 되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M&A로 산업이 재편되면서 보상,처우, 복지의 현실화가 게임 업계에도 이뤄졌다. 물론 대박 신화가 줄어들자, 안정된 직업을 원하는 인력이 업계를 떠나는 시기가 도래했다.

 

이승찬 본부장은 이때는 이공계의 도전기피 등으로 고급 인력이 게임업계로 들어오는데 한계를 보이는 시기다. 직접 면접을 보면서도 이전과 같지 않음을 느꼈다.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아져도 고급인력이 들어오는 데는 아쉬움을 남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페라리를 타는 존 카맥을 동경하던 이승찬 본부장은 <메이플스토리>로 꿈을 이뤘다.

 

 

이승찬 본부장의 개인적인 이야기

 

그렇다면 이승찬 본부장 자신은 어땠을까?

 

그가 처음 게임을 개발하게 된 동기는 다소 엉뚱하다. 어린 시절 MSX 대신 금성 패미콤을 갖고 놀았던 그는 게임이 호환되지 않자 베이직 프로그램으로 게임을 스스로 만들었다. 대학생 때 아마추어 개발자가 된 그는 게임을 만들어 돈을 벌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다가 좌절하기도 했다.

 

대학생이던 이승찬 본부장이 만든 게임의 총 매출은 200만원, 그나마 게임을 팔아서 번 돈이 아닌 대학생 게임 공모전에 응모해서 받은 상품을 돈으로 환산한 것이다. 이후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접고 고시 공부를 매진하다가 우연하게 넥슨에 병역특례로 입사하면서 그의 게임 개발 인생에 전환점을 맞이한다.

 

넥슨에서 그는 자신이 대학생 때 만든 게임을 보여주니 10분만에 병역특례가 결정됐고, 이후 <퀴즈퀴즈>를 개발해서 흥행이 무엇인지를 맛보게 된다. 이 성공은 초고속 인터넷 망 등의 사회적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결국 이승찬 본부장은 넥슨 병역특례 과정에서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만들면서 직접 사업하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나도 이제 페라리를 탈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세속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금성 패미콤이 아닌 MSX를 가졌다면 지금의 이승찬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 '메이플 스토리'의 성공과 좌절 이야기

 

결국 이승찬 본부장은 넥슨에서 병역특례를 마치고 위젯이라는 개발사를 차렸다.

 

3명으로 시작한 위젯이 처음부터 대박을 터트린 건 아니다. 개발을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했다. 개발비를 모으기 위해 용역과 더불어 대출을 받아 만든 게임이 <메이플 스토리>였다. 그 자신도 <메이플 스토리>가 성공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는 <메이플 스토리>를 만들 당시인 27살에 빚이 4억 원 정도였다. 당시만 해도 내 인생이 맛이 가는 줄 알았던 시기였는데 운이 좋았는지 서비스 2달 만에 모든 빚을 갚을 정도로 성공했다. 이때 평생 게임만 만들며 살 수 있다는 신념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갑작스런 성공은 그에게 후유증을 남겼다. 아직 학교 졸업을 안 한 상태에서 여러 고민을 하다가 <메이플 스토리> 서비스 1년 후 위젯을 넥슨에 매각하고 갑작스럽게 유학을 떠난 것이다.

 

성공으로 생긴 신념이 이시기에 다시 무너졌다. 그는 유학생활에 실패했다. 이후 넥슨 재팬으로 복귀해 근무하면서도 상대적 박탈감이 심했다고 털어놨다. 자신이 서비스 할 때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는 <메이플 스토리>의 모습을 보면서 잠이 안 올 정도였다고 그는 말했다.

 

짦은 시간동안 쓴맛 단맛, 괴로운 맛을 모두 안겨준 <메이플 스토리>

 

 

1년 만에 다시 독립, 하지만 좌절

 

그래서 한번 더 해보자는 생각으로 넥슨 복귀 1년 만에 시메트릭 스페이스를 차리고 <텐비>를 만들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텐비>는 처음부터 목표를 잘못 설정한 게임이라고 털어놨다.

 

집을 팔고 나서 집값이 올라가니 옆집을 사는 모양새였다. 또 성공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게임을 개발하다 보니 결국 <메이플 스토리>과 비슷해지더라. 게임이 나올 때 창피해서 인터뷰를 못할 지경이었다. 목표와 방향이 다르니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경험을 한 것이다

 

결국 시메트릭 스페이스를 접으면서 직업과 인생 목표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대박을 위해 게임을 개발했던 것인가 고민하다 보니 게임을 만드는 것 자체가 인생에서 제일 재미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이승찬 본부장이 넥슨에 2번이나 회사를 매각하고 복귀한 특이 사례를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평생 게임을 만들고 살려면 남은 기회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평생 게임을 만들며 살아 보려고 돌아왔다. 많이 만들고 많이 망하다 보면 성공도 나올 것 같아서 라고 할 수 있다. 시메트릭 스페이스에서도 한두 개 정도의 게임을 더 만들 여유는 있었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안 되는 것을 겪고 난 뒤에 큰 회사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이다.

 

 

평생 게임만 들고 살기? 가능하다

 

아직도 물음표가 많은 이야기다. 일단 게임업계의 짧은 업력과 직업의식의 미정립, 그리고 지속적으로 발전되는 시장에서 대표할 만한 롤 모델이 없다

 

이승찬 본부장은 평생 게임만 만들며 살 수 있는 모델에 가장 가까운 인물로 XL게임즈의 송재경 대표를 들었다. 국내 최초의 온라인게임인 <바람의 나라>를 만든 사람이 지금도 <아키에이지>라는 게임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이후에는 송재경 대표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믿고 있다.

 

그리고 평생 게임을 만들며 살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다. 일단 자신의 커리어를 관리해 게임 만들기를 직업으로 재정립 해야 한다. 또 계속 도전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게임 10개 만들어 다 실패 할 수 있지만 20개 만들면 1~2개 성공할 수 있다. 확률적으로 망하는 게 당연한 시절이다. 게임이 많이 나오니까 망하는 게임이 많은 게 당연하다. 게임을 몇 개 만들고 망해서 결과에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최선을 다한 결과에 좌절을 할 필요는 없다

 

 

이승찬 본부장이 키노트에서 밝힌 자신의 개발 목표는 '30/5/5/20'이이다. 30개의 게임을 만들어 보고 5개는 큰 성공, 5개는 망하지는 않을 정도, 20개는 쫄딱 망하는 게임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다소 엉뚱하지만 이 정도면 평생 게임만 만들고 살 수 있는 목표인 셈이다.

 

강연 내내 미소를 잃지 않던 이승찬 본부장. 게임개발이 천직이기 때문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