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취재

영웅전 “살아남기 위해 액션을 선택했다”

이은석 디렉터의 ‘마비노기 영웅전의 포스트모템’

안정빈(한낮) 2010-05-26 19:51:02

“<마비노기 영웅전>(이하 영웅전)이 액션을 선택한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영웅전>의 개발을 총괄하는 이은석 디렉터는 26일 넥슨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NDC)에서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영웅전>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들을 소개했다. 비결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 그리고 유니크함이었다.

 

특히 디렉터의 의사결정을 중요하게 여긴 그는 <영웅전>의 프로토타입 영상을 최초로 공개하며 게임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도 보여줬다. ‘마비노기 영웅전의 포스트모템(사후평가)’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은석 디렉터의 강연을 디스이즈게임에서 정리했다.

 

참고로 포스트모템은 해외 유명 개발자 컨퍼런스인 GDC에서도 인기 있는 강연 장르다. 시장에 출시된 화제작의 기획의도와 제작과정, 잘 된 점과 안 된 점을 개발자로부터 생생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강연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이른바 ‘개발 노하우 공유의 장’이 펼쳐지는 셈이다.

 

국내 개발자 컨퍼런스에서는 포스트모템이 거의 없는 가운데 이은석 디렉터는 정성껏 발표자료를 준비해서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에 최대한 많은 자료를 기사에 담아 보았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신작 게임은 발붙이기 어려운 현실

 

이은석 디렉터(오른쪽 사진)는 먼저 치열한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을 직시했다. 그는 신규 게임의 론칭 자체가 어려운 시장의 구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게임은 철저히 재미만을 따지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그러다 보니 소수의 재미있는 게임들이 시장을 독점하게 된다. 마치 영화처럼 말이다. 게임마다 지불하는 비용이 비슷한 만큼 유저들의 눈높이가 가장 재미있는 작품에 맞춰지는 것도 영화와 비슷하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온라인 게임은 수명이 매우 길고, 유저의 충성도 역시 높다.

 

결국 신규 게임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장기간 콘텐츠를 쌓아 올린 과거의 대작 게임들사이에서 살아남을 필요가 있다. 그것도 한 해에 50개 이상 나오는 다른 온라인 게임들과 함께 말이다.

 

이은석 디렉터는 이런 치열한 생존경쟁을 영화 <배틀로얄>에 비유했다. 물론 살아남는 게임은 극소수다.

 

2005년 작성된 <영웅전>의 사내 개발 제안서. 핸드액션을 포인트로 잡았다.

 

   

신작 게임의 무기는 유니크함

 

치열한 현실 속에서 신규 게임은 어떻게 해야 생존할 수 있을까? 이은석 디렉터는 그 게임이 아니면 찾아볼 수 없는 유니크함을 개발하는 데 승부를 걸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게임은 발전한다. 턴 방식에서 시작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은 실시간 진행으로 발전했고, 온라인 게임은 텍스트 머드로 시작해 그래픽을 입히고 액션을 흉내내는 단계까지 왔다. 과거의 게임에서는 구현할 수 없었던 시스템도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구현이 가능한 것으로 바뀐다. 기술과 아이디어의 발전이다.

 

신규 게임은 이처럼 발전된 기술과 아이디어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해 과거의 게임보다 한발 더 나간 유니크한 게임을 만드는 것. 그것이 이은석 디렉터가 내세운 신규 게임의 무기이자 생존 방법이다.

 

<영웅전>은 무엇이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핸드액션을 밀어붙였다. 초기 콘셉 이미지.

 

만약 유니크한 게임으로 주목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 게임은 유저들의 머릿속에 알아서 각인된다. <영웅전>이 살아남기 위해 액션을 선택한 이유다.

 

이은석 디렉터는 <영웅전> 개발초기부터 인터페이스만 보며 싸우는 제자리 칼춤’ 방식의 게임에서 벗어나 플레이어가 보다 많은 환경에 대처하는 인터랙션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 결과 <영웅전>은 예고영상과 게임쇼(지스타) 체험 플레이만으로도 유저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영웅전>이 아닌 다른 게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액션 덕분이었다.

 

2007년 개발팀 기획서에서 잡아 놓은 <영웅전>의 액션 정체성.

 

<영웅전>의 액션은 정교한 타격판정으로 승부를 걸었다.

 

핸드액션은 현실적인 한계에 직면하고, 다양한 응용법으로 우회했다.

 

 

디렉터의 역할은 지도를 만드는 일

 

이은석 디렉터는 이처럼 유니크한 개성을 만드는 데 디렉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디렉터는 결정의 전문가. 항해로 따지면 선장이다.

 

개성 있는 온라인 게임을 만든다는 말은,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과 같다. 도면 혹은 대본을 보면 완성품을 연상할 수 있는 영화나 건축과 달리 게임은 직접 만들어 보기 전에는 무엇이 나올 지 알 수 없다. ‘지도를 만들어 가며 떠나는 항해와 같은 것이다.

 

앞을 알 수 없기에 디렉터가 계속해서 꿈과 비전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선주 격인 대표나 프로듀서는 서쪽으로 가라같이 막연한 목표만 제시한다. 선장인 디렉터는 그 막연한 목표를 향해 가면서 그때그때 팀원들에게 구체적인 방향을 지시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디렉터에게는 현실을 판단하는 이성과 팀원들을 설레게 할 수 있는 감성이 모두 필요하다.

 

<영웅전>도 처음에는 <마비노기: 언더월드>라는 이름으로 던전 플레이만 독립시킨 게임을 만들자는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이든 잡을 수 있는 핸드액션을 추가시켰고, 액션성을 살리기 위해 조작도 키보드 방식으로 바꿨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지금의 <영웅전>이다.

 

조작키의 추가에도 많은 고민과 기획 의도를 담아 냈다.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살아남기 위해 차별화된 액션을 추구하고,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숱한 결정을 내렸다는 이은석 디렉터. 하지만 아직까지도 아쉬운 점이 있다는 그는 이번 사후평가를 통해 <영웅전>을 한층 더 유니크한 게임으로 만들어 나갈 각오를 밝혔다.

 

아래는 이은석 디렉터가 강연에서 공개한 <영웅전>의 프로토타입 영상이다.

 


 

<영웅전>의 첫 프로토타입은 2006년 2월에 나왔다.

 

두 번째 프로토타입에서는 보스전이 등장했다.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서 다양한 특징을 미리 점검했다.

 

2006년 8월에 나온 세 번째 프로토타입. 종탑을 마구 때려 부술 수 있었다.

 

 

■ 영웅전 개발에서 잘 풀린 5개, 안 풀린 5개

 

이은석 디렉터는 강연 막바지에 <영웅전>을 개발하면서 잘 된 점 다섯 가지와 잘 안 된 점 다섯 가지를 정리해 주었다. 포스트모템 강연의 핵심인 베트스 5와 워스트 5를 정리해 봤다.

 


<영웅전>을 만들면서 잘 풀린 것 다섯 가지

 

인재와 비전: 상관관계에 있는 두 가지 요소. 노련함보다는 열정으로 달려 온 개발팀.

 

임팩트: 강렬하고 잊혀지지 않는 게임.

 

③ 유니크함: 독자적인 위치로 유저의 자긍심 고취.

 

콘텐츠 멀티플라이어: 차세대 룩(look) 게임의 콘텐츠 제작 비용은 비쌈. 제작 비용에 따라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캐릭터 > 던전 > 컷신 > 거대보스 > 새 몬스터 > 의상 > 변종몬스터 > 무기)

 

아웃소싱으로 강점에 집중: 패치와 인증은 넥슨 게임 매니저 사용, 메신저는 넥슨 플러그인 사용, 길드는 넥슨 포털의 웹 기반 길드 사용, 물품거래소와 캐시샵은 과거 데브캣 웹프로모션팀의 도움을 받음.


 

<영웅전>을 만들면서 안 풀린 것 다섯 가지

 

① 스케줄 준수: 경험 부족, 고난도, 욕심, 유저 눈높이의 변화에 따라 일정 지연.

 

② 거시 플레이 모델: 매끄러운 목표와 보상의 순환 루프 확립을 못했음. 외길형 직선 플레이와 지나친 스토리 의존의 진행화도 반성. 라이브 모드에서 보완하는 중.

 

이은석 디렉터는 거시 모델의 프로토타이핑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③ 플레이 허들: 독특한 게임 구성, 유저 인터페이스, 그리고 유저들이 본격 액션에 익숙치 않았기에 접근성에 장벽이 존재.

 

④ 기술유연성 부족: 단일서버 등 새로운 시도로 소기의 성과는 거뒀으나, 유연성과 견고성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함. 유저 인터페이스(UI)도 유연성이 부족(UI는 베테랑이 만들어야 하지만, 베테랑은 UI 만들기를 싫어함).

 

⑤ 아웃소싱으로 강점에 집중: (앞서 잘 풀린 것 5번의 상대적 단점) 다양한 기능을 외부에 맡기다 보니 게임의 로직과 밀접하게 연동이 어려움. 고급기능의 추가나 유지보수도 곤란. 일부 기능을 내부로 옮겨올 계획.

 

끝으로 이은석 디렉터는 “현재는 라이브 모드, 즐거움과 어려움은 여전히 계속”이라는 문구와 함께 강연을 마쳤다.

 

 


[취재후기] 아낌없이 공개한 ‘솔직함’과 발전을 위한 ‘열정’

 

넥슨은 올해 사내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4개의 강연을 언론에 공개했다. 그중에서 <영웅전>의 포스트모템은 단연 기자의 눈에 띄었다. ‘과연 얼마나 솔직하고 자세하게 공개할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강연 취재에 들어갔다.

 

기사로 다 옮기진 못 했지만, <영웅전>의 이은석 디렉터는 1부와 2부를 합해 178 페이지에 달하는 강연 슬라이드를 준비해 왔다. 게다가 과거에는 대외비였던 사내 제안서와 기획문서가 섞여 있었다. 기사를 통해 다른 게임회사와 개발자들이 볼 수 있음에도 아낌없이 공개한 것이다.

 

미국 GDC를 취재했던 편집국 선배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 정도면 매우 충실한, 오픈 마인드의 포스트모템 강연이란다. 특히 <영웅전>이 지적 받았던 문제들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잘 풀린 것과 안 풀린 것을 정리하는 강연의 마무리도 인상적이었다.

 

서양권 콘솔 게임이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한 데는 서양 특유의 공유정신이 한몫을 단단히 했다. 각종 컨퍼런스에서 게임을 만든 후에 잘한 것과 못한 것을 아낌없이 공유하면서 소모적인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여 나간 덕분이다. 우리나라의 게임 컨퍼런스에서도 보다 많은 포스트모템 강연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유니크한 스테이지 진행을 만들기 위해 랜덤 섹터 시스템을 활용했다.

 

프롤로그는 충격적이고, 액션의 인상적인 첫 경험과 튜토리얼의 역할을 목표로 했다.

그래서 미소녀와 거대괴물, 주변의 대량 파괴 체험, 충격적인 시스템을 넣었다.

 

<영웅전>의 캐릭터는 실사풍을 지향하면서도 동양에서도 좋아하게 만들었다.

 

웃어도 주름이 지지 않는… 미소녀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