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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오픈마켓 게임물 자율심의 “너무 늦었다”

게임법 개정안 처리 늦어, 진정한 자율규제가 필요

안정빈(한낮) 2010-05-27 23:29:53

도입이 너무 늦었다.유통사업자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오픈마켓 게임물 활성화를 위한 게임산업진흥법(이하 게임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개발자와 유통사업자의 이야기는 그리 밝지 않았다. 이미 한국이 오픈마켓 시장에서 소외됐을 만큼 개정안의 도입 시기가 늦었고, 심의를 전적으로 유통사업자에게 떠맡기면서 개발자와 유통사업자 모두에게 새로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법 개정안 도입을 앞두고 진행된 오픈마켓 게임물 등급분류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오픈마켓을 둘러싼 각양각색의 목소리를 들어 봤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개정안 너무 늦었다한 목소리

 

지난 4월 문화체육관광 방송통신위원회는 오픈마켓 활성화를 위한 게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오픈마켓 게임을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의 사전심의 없이 KT와 SK텔레콤 등 유통사업자의 판단에 따라 등급을 정하고 유통하는 것이다.

 

의결된 개정안은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를 거쳐 이르면 내년 초에 도입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게임위는 오픈마켓 게임을 일일이 심사하기 위한 인력 부담을 덜 수 있고, 개발사와 유통사업자는 트렌드에 맞는 게임을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서비스할 수 있다.

 

아주대학교 김민규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앱스토어에 등록된 게임은 약 5만 개다. 하지만 게임위가 1년 동안 진행하는 등급분류는 모든 기종과 온라인게임 패치까지 합쳐도 5천 건을 넘지 않는다. 국내 오픈마켓 시장을 위해 개정안이 얼마나 필요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왼쪽부터 사전 발표를 맡은 황승흠, 이재홍, 김민규 교수.

 

하지만 세미나에 참가한 게임 개발사 대표들은 개정안 도입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개정안 자체는 적극 찬성하지만, 도입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컴투스의 구본국 실장은 이미 국내 오픈마켓 시장은 소외 당했다. 개정안의 논란이 지속되는 동안 유저들은 해외 구매 계정을 따로 만드는 등 갖가지 편법을 이용하고 있다”라며 개정안 도입 시기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국게임개발자협회의 이승훈 회장도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까지 임시로 자율등급분류제도를 운영해 줄 것을 제안했다.

 

자율등급분류제도란 등급분류 신청 후 일주일 동안 결과를 통보 받지 못 하면 개발사가 임시등급을 붙인 채 게임을 서비스하고, 등급분류 결과가 나오면 등급을 교체하는 시스템이다. 현행법을 어기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개정안이 나올 때까지 최대한의 융통성을 발휘해 달라는 것이다.

 

게임위에서 등급분류하는 게임은 아케이드와 업데이트까지 합쳐도 1년에 5천 개 이내다.

 

 

유통사업자 심의 부담이 우리에게 오는 것 뿐

 

유통사업자도 아쉬움을 나타내기는 마찬가지였다. 개정안이 도입되면 게임위의 부담이 줄어들지 몰라도 그 심의 부담은 고스란히 유통사업자에게 오기 때문이다.

 

KT의 민경용 차장은지금 상태로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존의 콘텐츠 검토 업무에 등급분류 작업이 추가된다. 시간은 물론 유통사업자가 들이는 비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개정안이 단순히 유통사업자에게 일을 떠넘기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SK텔레콤의 박정민 팀장도 “개정안 도입 후 오히려 심의과정에서 다양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게임도 유통사에 따라 몇 번씩 심사를 받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

 

오픈마켓마다 서로 다른 등급을 받아서 소비자를 혼동시킬 수도 있다. 유통사는 주위의 평판에 민감하고 등급분류 결과도 유통사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심의기준이 더 까다로워질 가능성도 있다.

 

SK텔레콤의 박정민 팀장은 “유통사업자의 부담과 개발사의 진정한 자율성을 위해서라면 개정안에 그치지 말고, 궁극적으로 사전심의 자체를 없애고 선 유통, 후 모니터링 방식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발사의 입장을 말했던 컴투스의 구본국 실장(왼쪽)과 유통사업자의 입장을 대변한 SK텔레콤의 박정민 팀장(오른쪽).

 

 

궁극적인 규제는 게임업계의 자정능력

 

국내의 게임 심의제도가 지금의 강제규제에서 차츰 개발사에 의한 자율규제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세미나에 참석한 모든 관계자가 동의했다.

 

국민대학교 법학과의 황승흠 교수는 법은 규제를 위한 것이다. 반대로 규제만 잘 지켜진다면 법은 필요 없다며 미국의 자율규제를 예로 들었다.

 

미국은 ESRB라는 게임 자율등급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자율등급 규제임에도 불구하고 ESRB가 잘 지켜지는 까닭은 부모들의 관심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게임을 사줄 때 등급분류와 그에 해당하는 설명을 꼼꼼하게 살펴본다. 등급분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며 판매처의 관리자를 불러 따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부모들의 관심이 높다 보니 판매처에서도 자연스럽게 등급분류에 신경 쓰게 되고 등급분류가 없는 물건은 유통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법적인 강제력이 아닌 부모의 관심과 시장의 힘에 따른 구속력이다.

 

ESRB 등급표시가 없으면 대부분의 매장에서 판매를 허가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문제가 커질 수 있는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의 경우 굳이 게임법이 아니더라도 청소년 보호법에 의해 규제할 수 있다.

 

김민규 교수는 “등급분류의 책임을 개발사, 유통사업자, 부모 등으로 나눠서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모든 것을 게임위의 탓으로만 돌리는 대신, 개발사와 보호자, 사용자 스스로가 책임질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개발자를 대표하는 이승훈 회장도 등급분류를 자율에 맡기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강력한 제재를 함으로써 게임업계를 ‘뛰어난 자정능력을 가진 생태계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동의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세미나는 오후 내내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