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와 e스포츠 독점계약을 맺은 그래택이 지난 7일 온게임넷과 MBC게임, 한국e스포츠협회(이하 KeSPA)에 공문을 발송했다.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라이선스가 그래텍에 있으며, 새로운 리그를 진행하려면 그래택과 서브 라이선스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아직까지 양대 게임방송사와 KeSPA가 그래텍과 협상에 나섰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단지 MBC게임만이 “필요한 절차가 있다면 논의할 의사는 있다”는 입장으로 알려진 상황이다. 국내 e스포츠 판도에 중대 영향을 미칠 ‘스타 e스포츠 라이선스 협상’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현황을 정리해 봤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답답한 그래텍 “협상 없이 진행하면 무단 리그”
국내에서 블리자드 게임들의 e스포츠 독점권리를 갖게 된 그래텍은 게임방송사와 KeSPA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공문을 보내서 “그래텍과 협상해 서브 라이선스를 받지 않고 새로운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진행하는 것은 무단이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7일, 블리자드와 그래텍은 e스포츠 독점계약 기자회견에서 “기존의 리그는 8월까지 진행되도록 허용할 방침이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e스포츠계의 해석은 조금씩 엇갈렸다. 8월에 챔피언 결정전이 열리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시즌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과 8월 말까지는 개인리그도 괜찮다는 해석이 나왔다.
결론적으로 블리자드와 그래텍의 ‘8월까지 유예’ 발언은 프로리그에만 해당된다. 독점계약이 발표된 후 시작되는 <스타크래프트> 개인리그는 그래텍으로부터 서브 라이선스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그래텍 관계자는 “일단 진행 중인 프로리그가 원만히 끝날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새로운 개인리그가 8월 말까지 마무리된다고 해서 서브 라이선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결국 블리자드와 그래텍의 독점계약 이후 시작된 MBC게임의 ‘빅파일 MSL’과 온게임넷의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2’는 서브 라이선스를 받아야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협상 없이 새로운 개인리그를 강행할 경우 지적재산권 무단 사용이지만, 그래텍이 당장 법적인 조치 등 강경대응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블리자드와 함께 “e스포츠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명분을 밝힌 마당에 바로 법적인 카드를 꺼내서 개인리그가 파행으로 치닫는 것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래텍은 다소 답답하더라도 잠시 동안 상황을 지켜볼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운 개인리그 빅파일 MSL은 이미 방송 경기를 시작했다.
■ MBC게임과 온게임넷의 ‘남다른 속사정’
지난 31일 KeSPA는 12개 프로게임단과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함께 블리자드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전히 공동운명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프로게임단을 운영하는 KeSPA의 이사사 중에서 두 곳의 속사정은 다르다. 바로 게임방송사인 MBC게임과 온게임넷이다. 두 곳은 유일하게 이번 ‘e스포츠 갈등’이 회사의 경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스타크래프트> 개인리그 때문이다.
3개월 단위로 열리는 개인리그는 게임방송사의 ‘시청률’과 ‘매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개인리그 한 시즌에 투입되는 후원 규모만 3억~5억 원에 이른다. 만일 한 시즌이라도 쉬게 되면 방송사 운영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대외적으로는 시청자들의 ‘볼 권리’를 내세웠지만, 내부적으로 보면 개인리그 중단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 방송사들의 속사정이다.
개인리그를 후원하는 후원사들이 불안해 할 경우 일일이 해명하는 것도 적잖은 부담이 된다. 한 e스포츠 관계자는 “어떤 후원사가 진행에 불안요소가 있는 리그를 후원하겠는가. 겉으로는 괜찮다는 입장이라고 해도 속으로는 이것저것 상황을 면밀히 따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결과적으로 KeSPA 이사사이자, 개인리그를 여는 게임방송사인 MBC게임과 온게임넷의 상황은 다른 10개 게임단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e스포츠 갈등’은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온게임넷의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2도 11일 예선전을 진행한다.
■ 침묵을 지키는 KeSPA, 다음 행보는?
그래텍은 MBC게임과 온게임넷 뿐만 아니라 KeSPA 사무국에도 공문을 보냈다. 8월에 끝나는 프로리그 09-10 시즌의 다음 리그를 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리그 10-11 시즌을 위해서는 그래텍의 서브 라이선스가 필요한 상황이다.
KeSPA 측은 아직까지 어떤 입장도 그래텍에 전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래텍 관계자는 “아직까지 (KeSPA로부터)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KeSPA는 지난 31일 기자회견에서 “블리자드와 다시 협상하고 싶고, 잘 할 자신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블리자드는 “이미 그래텍과 독점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그래텍과 협상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내세웠다. KeSPA의 “다시 만나자”는 요청을 “그럴 일 없다”고 거절한 셈이다.
게다가 2007년 KeSPA가 대행사(IEG)에 판매했던 프로리그 중계권은 이번 09-10 시즌으로 3년 계약이 끝난다. 당시 잡음이 크게 일어났으나 결국 MBC게임과 온게임넷은 3년짜리 프로리그 중계권 계약을 맺고 지금까지 프로리그를 방송해 오고 있다.
KeSPA의 프로리그 중계권 판매는 블리자드가 e스포츠 지적재산권을 지키겠다고 나서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였다. 만에 하나 KeSPA가 또 다시 중계권을 판매하려고 할 경우 블리자드와 그래텍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국내에서는 지적재산권 침해가 발생할 경우 형사처벌에 중점을 둔다. <스타크래프트>로 e스포츠 리그를 진행하는 한, 지적재산권을 무시하고 강행하기는 힘든 게 현실이다. 양대 게임방송사와 KeSPA가 어떤 선택을 할 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