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는 <하데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데스>는 2020년 출시한 슈퍼자이언트 게임즈의 액션 로그라이트 타이틀이다. 명계의 왕 ‘하데스’의 아들 자그레우스가 지상에 거주하는 어머니 페르세포네를 만나기 위해 철통같은 보안을 뚫고 지옥에서 탈출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장르 문법에 맞춰 주인공 자그레우스는 탈출 시도 중 무수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때마다 하데스가 사는 지옥 최하층의 집으로 돌아와 전 과정을 반복한다. 이때마다 자그레우스는(그리고 플레이어는) 이전보다 조금씩 강해져 결국엔 마지막 출구를 막아선 아버지 하데스를 쓰러뜨린 뒤 지상의 빛을 보게 된다.
게임을 처음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1회 탈출이 곧 게임 클리어일 것이라고 상상하기 쉽다. 그런데 첫 탈출에서 어렵사리 만난 페르세포네와 자그레우스는 그저 잠깐의 대화를 나눌 뿐이다. 자그레우스는 ‘지옥 출신’의 운명을 끊어내지 못한 채 스틱스강에 붙잡혀 다시 지옥으로 돌아온다.
이때 해금되는 도전과제의 이름마저 얄궂다. ‘탈출은 없는가?’ (Is There No Escape?) 게임의 ‘진엔딩’까지 플레이한 유저라면 이 질문에의 답이 결국 ‘그렇다’인 것도 잘 알고 있다. 자그레우스는 끝내 지상에서의 삶을 누리지 못하고 다시 자신에게 주어진 장소로 돌아오는 절차를 반복하게 된다.
그렇다면 자그레우스는 자신을 둘러싼 굴레에서 끝내 ‘탈출’하지 못한 인물인 걸까? <하데스>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강력함을 이야기하는 게임일까? 12월 17일 미국의 서평지 ‘LA 리뷰 오브 북스’가 내놓은 <하데스> 평론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아래는 링크의 기사를 요약, 재구성한 것입니다.
평론의 저자 비비안 램(Vivian Lam)은 <하데스>의 이야기 구조 파악을 위해 먼저 헝가리 문예이론가 죄르지 루카치(György Lukács)의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저서 <소설의 이론>에서 루카치는 고대 서사시와 근대적 소설의 차이, 그리고 고대인과 근대인의 세계관(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차이를 설명한다.
고대는 개인과 세상, 개인과 사회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잘 통합되어 있던 시대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 나가기보다는 세상이 부여해준 역할과 운명에 따라 사는데 익숙했다는 의미다. 물론 고대인들도 각자 선택을 내리며 살았지만, 이 또한 정해진 삶의 경로를 밟아나가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루카치는 이를 ‘총체성’(totality)이라고 지칭한다. 서양 문학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호메로스의 고대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속 신화적 인물들을 통해 이런 총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램은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는 예정된 죽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투를 향해 나아갔다. 탁월한 지략으로 불운을 모면했던 '오디세우스'마저도 항상 예언 안에서 움직이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근대에 접어들면서 사회와 개인 사이의 연결은 느슨해지고, 끊어지고 만다. 주어진 운명에 따라서만 사는 삶이 거부되기 시작한 것이다. 개인이 바라보는 ‘실제 세상’과 ‘이상적 세상’이 분리되었다. 개인의 삶과 세상은 이제 예전처럼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닐뿐더러, 이따금 서로 충돌한다.
루카치는 이런 불일치의 상태를 ‘초월적 실향’(transcendental homelessness)이라고 지칭했다. 총체성을 잃은 근대의 개인도 여전히 자신과 잘 맞는 세상, 즉 '고향'과 같은 세상을 계속 원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호전성과 무관심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그 세계에 도달하기 힘든 '실향민'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실향의 상태를 그리는 것이 서사시와 구분되는 근대적 의미의 '소설'이 가지는 특성이다.
저자는 <하데스>가 ‘서사시적’ 세계와 ‘소설적’ 주인공 사이의 끝없는 충돌을 그린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정말로 자그레우스의 끊임없는 도전은 무익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저자는 자그레우스가 <하데스>의 지옥에 불러오는 변화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체념을 말하는 가사에도 불구하고 멜로디는 힘차다. 저자는 "자그레우스가 처음 떠나온 지옥과 현재의 지옥은 서로 다른 장소다. 자그레우스의 죽음들은 짧게 지속했지만, 그가 실천한 말과 행동의 결과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데스>가 지옥의 영원한 굴레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일견 혼란스러울 수 있다. 끝끝내 온전한 삶을 쟁취할 수 없는 닫힌 환경 속에서 기쁨을 찾으라는 권유는 모순적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진엔딩 이후 자그레우스는 지옥의 ‘보안 책임자’가 되어 지옥을 점점 더 탈출하기 어려운 장소로 만든다. 자신의 ‘수감 상태’를 강화하는 셈이다.
저자는 "그러나 <하데스>는 생존의 노력 자체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일종의 부조리극이다.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을 듯했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관계를 일궈내는 이야기이자, 당신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불합리한 시스템을 무너뜨리기 위해 무한히 도전하는 이야기다. 궁극적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할지언정 아끼는 이들의 문제를 완화해줄 수는 있는, 점진적 변화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전한다.
저자에 따르면 초월적 실향 상태의 해결법은 자신에 어울리는 세상을 찾아 평생을 바치는 것에 있지 않으며, 그러한 세상을 스스로 만드는 것에 있다. 그리고 자그레우스가 그러했듯, 탈출할 수 없는 상태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