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에는 추위와 함께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3고 현상으로 인한 경기 불황까지 지속되는 연초다. 물가와 인건비가 오르는 상황 속에서 인디 개발팀들도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2023년에도 경제 상황이 쉽게 좋아지진 않을 전망이다.
한편, 위드 코로나 국면에 접어들면서 오프라인 게임 행사들은 밀린 한을 쏟아내듯 큰 규모로 진행됐다. 성황리에 열린 플레이엑스포(5월),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BIC, 9월), 지스타(11월), 아웃오브인덱스(OOI, 12월), 버닝비버(12월) 등의 사례가 있었다. 활기와 한기가 모두 감돌았던 연말이 지났다.
"2022년은 어떻게 보냈고, 2023년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7개 인디 개발사에게 물었다. /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김승준 기자
"힘들었다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가 자라나는 씨앗 김효택 대표의 첫 마디였다. "경제적 상황은 인디 게임사들 모두 비슷하겠지만, 저희는 비전이나 방향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MazM> 시리즈의 색깔이 사라진 게 아닌지 걱정이다." 자라나는 씨앗은 스토리텔링에 집중한 <MazM> 시리즈 외에도 탄막 슈팅 게임 <다이 크리쳐>와 보드게임 <하이드 앤 씨크>를 출시하며 새로운 도전을 했다.
지난 12월 22일 스토브 독점으로 출시해 많은 관심을 받은 <러브인 로그인>의 개발사 메타크래프트도 마찬가지였다. 메타크래프트 이제호 본부장은 "<솔리테어 오브 노벨>과 <러브인 로그인> 두 작품을 내는 게 2022년 목표였는데, 하나는 잘 되고 하나는 결과가 좋지 못했다. 그런 부분들이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에 이어 "힘든 시기도 있긴 했지만, 후속작 등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했다.
한편, <서울 2033> 시리즈 등의 대표작을 가진 반지하게임즈 이유원 대표는 인사(人事)에 대한 어려움도 언급했다. "내부적으로 인력이 변한 일도 있었고 걱정이 많았는데, 게임을 좋아하는 동료들이 잘 합심해서 버티지 않았나 싶다.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인원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고, 인디 특성상 방향이 안 맞으면 떠나는 경우도 있다."
자라나는 씨앗 김효택 대표는 "인원 감축이 인디 씬에서 점차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다른 스타트업 회사들의 경우에도 신규 투자가 없으니까 직원 수를 50명 대에서 7명으로 줄인 경우도 있다. 이자 부담도 큰 상황에서 대출도 쉽지 않으니, 이런 시기에는 내실을 강화하고 회사 규모를 함부로 키우지 않고 방향성을 잘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른바 3고로 인해 모든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디 개발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피그로맨스>를 만든 외계인납치작전 최용찬 대표는 3년 넘는 개발 기간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워커홀릭이라서 일은 재밌게 하는 성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힘들었던 건 같이 일하는 팀원들이 식음을 전폐하며 돈이 없던 시기를 견디는 것이었다. 저를 포함한 팀원 다섯 명 모두가 희생하며 개발했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또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플랫폼이 사용자 데이터 추적을 제한하면서 인앱 광고에 의존하던 게임들은 광고 수익이 감소하기도 했다.
에어캡의 <걸 글로브>라는 게임에도 광고 수익형 BM(Business Model)이 있어 질문했다. 에어캡 현지민 대표는 "<걸 글로브>가 첫 게임이라서 애착을 가지고 조금 손해를 보는 상황이 와도 서비스를 유지해왔다. 대대적으로 마케팅을 하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서, 조건이 맞고 유저층이 겹치는 타 게임들이랑 크로스 프로모션을 하는 등의 이벤트도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엔돌핀커넥트의 조용래 대표는 "2021년부터 하이퍼 캐주얼 게임들을 냈다. 하이퍼 캐주얼 쪽에서는 확실히 광고 수익이 줄어든 게 느껴진다. 광고비는 계속 나가는데 환율이 너무 올라서 더 어렵지 않았나 싶다."라고 했다. "그래서 하이퍼 캐주얼을 개발하는 다른 개발사들도 미드코어 쪽으로 넘어가려고 고민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고환율 등 경제 상황 변동에 대한 플랫폼 측의 반영은 없었는지 질문하자 조용래 대표는 "고환율에 대한 보정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마케팅을 더 저렴하게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답했다. "Saas(Software as a Service,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도 세무, 전자 계약서 등에 사용하고 있지만, 단품이 아닌 구독형으로 바뀐 포토샵 같은 툴이 경제적으로 더 부담"이라고 했다.
<리프트 스위퍼>를 만든 조프소프트 김정호 대표이사도 "개발 초반에 재정적인 위기가 있었다. 소규모 투자와 기술보증대금의 대출, 저를 포함한 공동 설립자들의 투자금으로만 해결하다가, 이제서야 고비를 좀 넘기고 있다"고 답했다.
엔돌핀커넥트 조용래 대표는 "2022년에 네오위즈, 스마일게이트 등 여러 회사들이 인디를 많이 도와주셨다. 그런데 실제로 인디 회사에 더 절실한 건 행사보다는 자금이다. 개발 기간을 버티기 위한 속도와 자금이 중요하다. 주변 회사들을 보면 오프라인 행사 준비하는 동안 개발 에너지가 분산되는 경우도 있었다"는 말을 했다.
오프라인 행사에 대해 자라나는 씨앗 김효택 대표는 "부스를 다녀가는 유저 수를 생각해봐도 플레이하고 가는 걸 기준으로 하면 하루에 몇십 명에 그칠 때도 있으니까, 모객이 목표가 될 순 없다. 우리는 전시회의 본질이 '유저와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유저의 존재를 느끼기 위한 의의에서 온라인 오프라인 소통을 모두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김효택 대표는 인디 개발사들이 투자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네오위즈나 스마일게이트 같은 회사들이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하고 퍼블리싱을 하는 자체는 긍정적으로 본다. 그렇지만 그게 게임 만드는 사람들의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원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고, 그럴만한 체력을 기를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려운 시기 속에서도 투자, 지원, 수익 등을 추가로 확보해 개발 자금 문제를 극복한 경우도 있었다.
에어캡은 <걸 글로브> 외에도 차기작 <아가타>에만 14명을 투입할 정도로 인디 개발사 중에선 직원 수가 많은 편이다. 이에 인건비 등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는지 질문하자 에어캡 현지민 대표는 "넉넉하게 개발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아가타>의 가능성을 보시고 기존에 투자해주셨던 분들을 통해 초기 개발 자금까지는 확보한 상태다. 안정적으로 차기작을 만들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얻은 게 2022년의 가장 큰 성과였다"고 답했다.
조프소프트 김정호 대표이사도 "2022년 초에 코스닥 상장사인 미투젠 그룹의 대규모 투자를 받아서 저희가 계열사로 편입됐다. 인디게임 회사 규모지만 사실상 코스닥 계열사기 때문에 이제 재정적으로는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었다. <리프트 스위퍼> 같은 협동 게임엔 사용자가 많이 필요한데, 정식 출시할 때 개발, 마케팅 비용으로 잘 사용할 것 같다"고 했다.
외계인납치작전 최용찬 대표 또한 "다행히 나라에서 지원 받은 금액이 있어서 그걸로 충당하면서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잘 버텨온 덕분에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게임 레벨업 쇼케이스'에서 최종 평가 1등, 이용자 평가 1등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반지하게임즈 이유원 대표도 "그래도 <서울 2033>이 있으니까 괜찮은 편인 것 같다. 연말에 맞춰 광고 집행도 늘렸는데, DAU(일 활동 유저)와 매출도 늘었다. 마이너한 게임들이 가진 중독성과 힘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킬링 콘텐츠를 가진 회사들은 경제 흐름을 타진 않았다"는 외계인납치작전 최용찬 대표의 말처럼 경제 위기를 극복할 열쇠는 게임 콘텐츠 안에 있다.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러브인 로그인>은 스트리밍 모드를 지원한다. 인터넷 방송을 의식한 개발 예시는 어떤 게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메타크래프트 이제호 본부장은 "공동 개발한 온파이어 측에서 스트리머들이 잘했던 리액션 등을 반영한 패러디를 많이 했다. 또 ASUS와 협업한 실제 제품이 노출되는 등 소소한 재미 요소도 있다. 후속작에서도 스트리머와 시청자가 소통하며 게임하는 문화를 더 많이 반영할 예정"이라고 했다.
<리프트 스위퍼>의 스팀 태그 중엔 '고난이도'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난이도 외에도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조프소프트 김정호 대표이사는 "협동 게임 장르에 고어한 게임들이 많은데, 저희는 사이버펑크적이고 산뜻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노력했다. 고대부터 근미래까지 타임 슬립을 하면서 색다른 미션을 수행하는 독특한 경험을 앞세우고 있다"고 대답했다.
자라나는 씨앗 김효택 대표는 "깊이 있는 내러티브 콘텐츠에 집중해서 게임을 더 발전시키고 싶다. <레사>라는 네이버 웹툰 IP와 계약해서 게임을 만들고 있는데, 고전 명작을 가지고 게임을 만들 때와 다른 접근도 필요했다. 이번 작품도 <MazM>스럽게 성공시키고 팬덤과도 더 소통을 많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위해 전화 연결을 했을 때 추운 날씨 때문인지 병원에 있거나, 회복된지 얼마 안 된 회사들이 적지 않았다. 외계인납치작전 최용찬 대표는 "코로나에 걸렸다가 어제 격리 해제 됐다"고 밝혔고, 조프소프트 김정호 대표이사도 "팀원들이 중간중간 코로나에 걸렸다. 저도 코로나 걸린 후 3주밖에 안 지난 상태"라고 했다. 반지하게임즈 이유원 대표 또한 "코로나로 이번주 내내 고생했다"고 전했다.
소수의 개발자들이 목숨 걸고 일하는 구조를 반복하다 보면 건강을 챙기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개발 동력은 팀원들의 건강에서도 나온다. 아픈 시기를 잘 넘긴 만큼 경제적 지원 확보, 게임성 강화 등을 통해 2023년에도 7개 인디 개발사 모두 개발 의지를 불태울 예정이다.
에어캡은 "차기작 <아가타>의 알파 단계를 2023년 1월로 보고 있고, 베타 단계는 하반기에 거칠 예정"이라며 "게임성을 인정받아 한 발짝 더 도약할 기회를 얻는 게 목표"라고 했다.
엔돌핀커넥트는 "<어글리후드: 퍼즐 디펜스>와 비슷한 퍼즐 RPG에서 룰을 다르게 한 신작을 만들기 위해 IP도 논의하고 준비"하고 있다며 "2023년 여름 출시를 목표로 작업 중"이라고 밝혔다.
외계인납치작전은 "2023년 6월에 콘솔 버전을 포함한 <피그로맨스> 정식 출시를 할 예정"이라며 "콘솔 포팅 팀을 구하는 중이고 기존 멤버들과 버그 픽스 등에도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프소프트는 "인디게임이지만 AA급 게임들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며 "<리프트 스위퍼> 판매 목표인 50만~100만 장을 목표로 게임의 완성도와 마케팅에 힘을 주겠다"고 했다.
메타크래프트는 "저희가 노벨피아 IP를 중심으로 게임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노벨피아에서 더 좋은 작품이 나오기를 희망한다"며 "<러브인 로그인> 후속작과 새로운 미연시 게임 등을 개발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대답했다.
반지하게임즈는 "<수확의 정석>의 성공적 출시" 외에도 "고민하고 있는 재밌는 신작도 많고, 2022년 말에 다른 IP 관련 제안도 많이 받아서 여러 방향을 생각 중"이라고 전했다.
자라나는 씨앗은 "<MazM>스러움을 더 강화하는 쪽으로 개발 중"이라며 "모바일과 스팀을 동시에 활용하는 방향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7개 개발사가 밝힌 목표처럼, 경기 불황을 이겨내고 2023년에도 더 매력적인 게임이 많이 출시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