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동안 출시하는 게임의 수가 ‘적당하던’ 시절이 있다. 스팀 플랫폼 데이터를 제공하는 사이트 ‘스팀DB’의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출시한 전체 스팀 게임의 수는 434개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숫자는 폭발적으로 성장해왔다. 2022년 올해에 이르러서는 1년 간 12,926개 게임이 스팀에 선을 보였다. 2013년의 30배에 달하는 수치다. 일각에서 큰 인기를 끈 게임이 다른 일각에서는 ‘금시초문’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빈번한 이유다.
올해 새로 출시해 호평받은 출시작 중, 각자 유명세와 인기를 얻었지만 '누구나 아는' 대세게임에는 등극하지 못한 몇몇 타이틀을 돌아봤다. 모두 스팀 플랫폼에서 유저들로부터 ‘매우 긍정적’ 이상의 평가를 받으며 완성도를 두루 인정받은 게임들이다. 더 나아가 한국어를 완벽 지원하는 게임에 한정해 선정했다. 함께 살펴보자.
기억을 잃은 ‘아무개’(Nobody)가 유령, 용, 로봇 등 저마다의 특징을 지닌 존재로 변신해 세상을 구하는 단순명쾌한 내용의 핵&슬래시 ARPG 타이틀이다. 다양한 퀘스트를 해결할 때마다 새로운 ‘변신 형태’를 획득할 수 있으며, 각각의 형태는 서로 다른 캐릭터처럼 육성해나갈 수 있다.
15개에 달하는 형태를 자신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하고 상호 조합하며 펼쳐지는 풍성한 전투/퍼즐 콘텐츠가 장점으로 꼽힌다. 캐릭터별 메카닉이 다르다는 점을 이용, 주어진 상황에 따라 최적의 캐릭터를 선택하게끔 유도하는 전략적 요소가 반응이 좋다. 다만 일부 퀘스트의 빈약한 구성, 후반부로 가면서 떨어지는 스토리·전투의 흥미는 단점으로 지적된다.
원예(horticulture)와 오컬트를 소재로 한 추리, 퍼즐 게임. 흑마법(내지는 주술)에 해당하는 초자연적 힘이 존재하는 세계관에서 삼촌이 운영하던 화원을 물려받아 운영하며 벌어지는 16일간의 여정이 주된 내용이다. 화원이 위치한 ‘언더미어’ 마을의 다양한 손님을 상대하면서, 그들 개인의 이야기와 더불어 마을에 벌어지고 있는 으스스한 여러 사건을 접하게 된다.
주민들의 요구에 맞는 식물을 파악하고 찾아내는 전반적 과정은 추리물처럼 진행된다. 인게임 상의 사소한 단서와 고객과의 대화에서 필요한 정보를 도출, 식물의 소재를 파악한 뒤 고객에게 제공하면 된다. 식물 발견 후 도감에 적힌 텍스트를 통해 이뤄지는 간접적 스토리텔링 방식도 호평이다. 반면 5~6시간의 다소 짧은 플레이타임은 아쉽다는 평가다.
퍼즐에 가까운 감각으로 플레이되는 시티 빌더 게임. 도로, 숲, 밀밭 등 다양한 구성요소가 얹어진 육각형 타일을 배치해 마을의 형태를 점차 갖춰나가는 단순한 메카닉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접 타일의 접촉면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완벽한 배치’를 통해 고득점을 노린다면 게임의 난도가 자연스럽게 상승한다.
각자 취향에 맞춰 어렵게, 혹은 쉽게 플레이할 수 있는 이중적 게임성과 아름다운 그래픽으로 호평받는다. 절차적으로 생성되는 타일 시스템과 다양한 타일 해금 시스템으로 리플레이 가치도 높다는 평가. 다만 자원관리, 무역 등 요소가 포함된 본격적 시티빌더를 원하는 유저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미국 TV 애니메이션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화 및 스토리로 사랑받은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동화적 세계에서 주인공 남매의 ‘귀가’를 돕는 내용이다. 단서를 찾아 다음 나아갈 길을 알아내는 장르 문법을 답습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내러티브 퍼즐이 어린아이의 상상력을 반영하고 있어 폭넓은 공감과 즐거움을 동시에 준다는 평가.
알아들을 수 없는 가상의 언어로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추리 과정에서 텍스트가 배제되는 점도 특징으로 꼽을 만하다. 작화풍뿐만 아니라 모션과 색감, 음향 등 모든 시청각 요소에서 상업 애니메이션과 유사한 높은 퀄리티를 보여준다. 한편 4~5시간 분량의 플레이타임은 아쉬움을 사는 요소다.
롤러스케이트와 슈팅이라는 다소 안 어울리는 소재를 엮어 만든 액션 게임. 한정된 아레나 안에서 롤러스케이트를 이용한 각종 트릭을 펼치는 동시에 화력을 남발하는 여러 적을 쓰러뜨리는 독특한 게임플레이를 선보인다.
묘기와 적 처치가 모두 점수로 이어지는 독창적 콘셉트, 정밀한 에임이 요구되지 않는 건플레이는 전통적인 슈팅게임 팬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며 막힘없는 액션을 펼치는 게임성은 <둠> 리메이크 시리즈로 대표되는 레트로 스타일 슈터에 맥이 닿아있다.
<허 스토리> 등 작품으로 FMV 장르에서 독보적 입지를 다지고 있는 개발자 샘 발로우의 신작이다. 단 세 편의 영화만을 촬영한 뒤 영화계에서 모습을 감춘 배우 ‘마리사 마르셀’의 자취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편집자의 입장에서 게임은 진행된다. 1968년, 1970년, 1999년 개봉했다는 설정의 세 영화는 실제 영화에 준하는 분량으로 제작됐다.
영화 클립, 인터뷰 영상, 비하인드씬 등 마르셀에 관련된 영상자료를 적절히 이어붙이고 영상 속 특정 소재를 클릭하면서 새로운 영상이 발견되는 메카닉이다. 그 과정에서 마르셀에게 벌어진 사건의 전말을 알아낼 수 있다. 장르 내에서 시도된 적 없는 시스템, 깊이 있는 내러티브, 상업 영화를 연상시키는 연출 퀄리티로 호평받았지만, 게임의 ‘진척도’를 피드백하는 아무런 UI가 없어 게임으로서의 성취감은 느끼기 힘들다는 의견도 자주 나온다.
적절한 선로 배치로 기차들의 안전 운행을 돕는 내용의 아기자기한 퍼즐 게임. 선로전환기와 철로 장애물 등 요소를 적절히 배치해 각 열차 칸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운행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게임 내용이다.
편안하게 시작해 적절한 템포로 어려워지는 난이도 곡선과 편안한 느낌의 셀셰이딩 그래픽, 귀여운 두 강아지 주인공의 모습 등이 인기 요인. 퍼즐은 후반부로 갈수록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만, 시간제한 등 추가적인 제약 요소가 없어 계속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90년대 고전 서바이벌 호러 게임 스타일을 충실히 계승한 레트로 타이틀. 인류가 태양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미래 시점, 전체주의 정부의 시민 통제가 빈틈없이 이뤄지는 디스토피아 사회를 다뤘다. 플레이어는 안드로이드 ‘엘스터’가 되어 버려진 정부 시설을 탐방하며 괴생명체에 맞서 시설에 얽힌 비밀을 파악해나간다.
로우폴리곤 그래픽과 픽셀아트를 통해 연출한 몽환적인 분위기, <레지던트 이블> 초기작을 벤치마킹한 고전적 게임플레이는 호평을 받는다. 그러나 파편적 텍스트와 컷씬을 통한 간접적인 이야기 전달, 고전 게임들의 단점을 그대로 닮은 불편한 조작감 및 인벤토리 시스템에서 평가가 갈린다.
<크로노 트리거> 등 고전 JRPG의 현대적 해석으로 각광받고 있는 최신 작품. ‘발란디스 대륙’의 세 왕국이 벌이는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주인공 일행의 여정을 담았다. 검, 마법, 용, 메카 등 레트로 JRPG 팬들 사이에 사랑받았던 소재가 ‘종합선물’처럼 등장할 뿐만 아니라 전투 밸런스와 난이도, 콘텐츠의 페이싱 등 여러 측면에서 두루 모자람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평가.
고전 JRPG의 시스템 중 현대 게이머들에게는 단점으로 꼽힐 만한 랜덤 인카운터 등 요소를 대폭 개선하거나 없애는 한편, 복잡한 스킬 시스템, 장비제작 등 모던한 RPG에 기대되는 요소들을 적절히 융화시켜 올드팬과 신규 팬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전체 플레이시간이 30~40시간에 달하는 대신, 초반부의 이야기 흡인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비판도 함께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