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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출시도 안했는데 ‘난장판’된 호그와트 레거시, 이유는?

원작자 조앤 K. 롤링 둘러싼 논란 정리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3-01-13 18:36:44

2월 10일 출시를 앞둔 <호그와트 레거시>는 지난 10일 기준, 스팀에서 유료 구매 게임 중 매출 1위를 달성하는 등 2023년 상반기 최대 기대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게임을 둘러싼 논란이 해외 유저들을 중심으로 뜨겁게 펼쳐지는 중이다.


구매자를 비난하는 유저, 옹호하는 유저, 모든 논의를 중단하길 바라는 유저 등등이 얽혀 온라인 공간에서 분쟁을 벌인다. 포브스를 비롯한 다양한 외신이 ‘<호그와트 레거시> 논란’을 분석하는 기사를 앞다투어 내놓기도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 조앤 K. 롤링이 쏘아 올린 매우 커다란 공

이번 논란은 게임 출시 계획이 처음 발표된 2020년부터 이미 불거졌다. 

정확히는 원작자 조앤 K. 롤링을 둘러싼 논란의 불길이 게임으로 옮겨붙은 것에 가깝다. 문제는 2018년경 롤링이 ‘반 트랜스젠더 정서’, 보다 구체적으로는 이른바 터프(TERF·트랜스젠더 배제 급진 여성주의자) 적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시작됐다.

터프는 생물학적 여성만을 여성으로 인정하고, 트랜스 여성(생물학적으로 남성으로 지정됐지만 여성 성정체성을 지닌 사람)을 여성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 여성주의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2008년경 중립적인 의미의 용어로서 등장했으나 점차 이러한 인물들을 비판하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해당 사상을 지지하는 여성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젠더 비판적 여성주의자(GCF)’라고 부르는 것을 더 선호한다.

롤링이 처음 ‘터프 논란’을 일으킨 것은 2018년 트랜스 여성을 ‘드레스 입은 남자들’로 언급한 글에 ‘좋아요’를 누르면서부터다. 비판이 일자 롤링은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2019년에 문제는 다시 불거졌다. 이번에는 “남성은 여성이 될 수 없다”, “성은 불변한다.” 등의 발언을 했다가 직장을 잃은 여성 ‘마야 포스테이터’를 지지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혐오 발언으로 직장을 잃은 포스테이터를 옹호한 JK 롤링의 트윗

포스테이터는 자신의 의사 표현이 2010년 영국 평등법(Equality Act 2010) 아래 개인의 신념으로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영국 법원은 그와의 계약 연장을 거부한 고용주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021년과 2022년에 이어진 항소에서는 포스테이터가 모두 승소했다.

 

한편, 롤링의 포스테이터 옹호 발언은 ‘좋아요’를 누르는 이전의 소극적 행동과 달리 명확한 문장으로 자기 생각을 밝힌 것이기에 파장이 더욱 컸다. 결국 이를 계기로 롤링은 본인의 성향을 분명히 드러내며 비판을 사기 시작했다.

 

롤링이 점차 발언 수위를 높여 감에 따라 2020년에는 <해리포터> 영화 시리즈에 출연했던 대부분의 배우가 롤링을 성토하며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롤링은 “모든 트랜스젠더가 자기에게 편안한 방식으로 살 권리를 존중한다”면서도 트랜스 여성 반대 기조를 꺾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해 여성 복장의 연쇄살인마 남성을 소재로 한 소설을 출간하면서 혐오 논란에 추가로 불을 지피기도 했다. 이 소설이 문제시 된 이유는 롤링이 평소 트랜스 여성의 배제를 주장하면서 내세운 논리를 연상시키는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롤링은 트랜스 여성을 여성으로 인정할 경우, 이들이 여자 화장실 등 여성 전용 공간에 ‘침투’해 생물학적 여성을 공격할 위험성이 크다는 주장을 전개해왔다. 이는 터프(혹은 GCF) 활동가 전반이 주력하여 내세우는 논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어 2022년에는 스코틀랜드 의회에 제출된 ‘젠더 인식 개선 법안’에 반대하는 여성주의 시위자들에 연대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해당 법안은 젠더 변경을 법적으로 인정받는 절차를 간소화하고, 트랜스젠더 용어의 범주를 넓히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여성 복장을 한 남자 살인마의 이야기를 다룬 롤링의 책 <트러블드 블러드>. 다른 필명을 사용했다.

 

 

# <호그와트 레거시> 구매는 JK 롤링 지지 vs 게임 하고 싶을 뿐

 

<호그와트 레거시>는 2020년 9월 최초로 공개됐다. 이것은 롤링이 반 트랜스젠더 발언을 지속함에 따라 일각에서 ‘<해리 포터> 보이콧’ 정서가 강하게 형성된 이후의 일이다. <호그와트 레거시> 공개 직후부터 이를 다른 <해리 포터> 관련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불매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작품과 작가를 분리하여 바라볼 것인지 여부는 창작계의 오랜 논란거리로,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문제가 있는 인물의 작품 소비를 강력히 반대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이러한 작가들의 작품이 꾸준히 소비·교육되고 있다.

 

<호그와트 레거시>의 경우, 원작자인 롤링과의 ‘분리’는 한편으로 어렵지 않아 보인다. 개발사 아발란체 스튜디오에 따르면 롤링은 <호그와트 레거시>의 개발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그 줄거리 역시 원작 시리즈로부터 100년 전을 배경으로 전개되어 원작에 직접 연결되지 않기 때문.

 

그러나 해리포터 세계관에 관한 저작권 일체를 소유하고 있는 롤링이 <호그와트 레거시> 수익에서 어떤 유형으로든 자기 몫의 재정적 이익을 취하리라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다. <호그와트 레거시> 구매행위가 곧 롤링을 지지하는 행위, 더 나아가서는 롤링의 사상을 옹호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근거다.

 

더 나아가 롤링이 이미 터프(혹은 GCF)의 간판스타 및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호그와트 레거시>의 흥행은 그의 ‘영향력’에 또 한 번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지적도 주목할 만하다. 외신 게임스팟 소속 저널리스트이자 트랜스 여성인 제시 얼은 해당 논란을 다룬 장문의 칼럼에서 “나는 롤링이 적극적인 혐오 및 차별 운동의 선봉에 서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기 힘들다”며 이런 견해를 전했다.

 

롤링이 스코틀랜드 '젠더 인식 개선 법안' 반대 운동가들을 향한 응원과 함께 올린 사진. 티셔츠에는 스코틀랜드 행정수반 니컬라 스터전을 '여성 인권 파괴자'라고 비판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는 “일부 GCF 그룹은 캐나다에서 ‘나는 JK 롤링을 사랑해’라는 광고문구를 내걸어 트랜스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불편을 느끼게끔 만든 바 있다. 이 광고를 냈던 그룹은 이후 트랜스젠더들을 대상으로 적대적 행위를 하고 어떤 시민을 위협하다가 체포됐다”고 설명했다.

 

게이머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다. 일례로 글로벌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의 게임 관련 서브레딧(하위 포럼)에서는 해당 주제를 두고 수백, 수천의 유저가 토론 및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한 관리자가 롤링의 사진을 게재한 뒤 “이 여성은 ‘터프’이며, 그를 금전적으로 지원한다면 당신도 트랜스 혐오자”라고 선언하자 여기에 4,0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리며 논의가 벌어졌다. 댓글을 단 상당수 유저가 관리자의 주장을 거들었으나, 반대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저들도 있다.

 

<호그와트 레거시>를 즐기고 싶지만, 그렇다고 롤링의 주장이나 트랜스혐오 정서에는 호의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의견에 동조하는 게이머 수는 적지 않다.

 

일례로 한 트위터 유저는 “<호그와트 레거시> 구매와 트랜스젠더 혐오가 마치 동의어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태도를 그만둬야 한다. 나는 그저 어린시절의 추억을 다시 느끼고 싶을 뿐이다. 모든 것을 정치/윤리적 선언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주장해 2,000개 이상 '좋아요'를 받았다.

 

직접적으로 자신이 TERF임을 드러낸 내용의 트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