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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이쯤 되면 장르?…스팀 데모 축제 올라온 ‘뱀서류’ 게임 4선

장르 융합, 다양한 테마 보여주는 신작들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3-02-09 18:42:16

이 정도면 이제 하나의 장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스팀 플랫폼에서 수백 가지 게임 데모를 체험할 수 있는 ‘스팀 넥스트 페스트’ 행사가 진행 중입니다. 리스트를 훑어보는 중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우후죽순 생겨난 이른바 ‘뱀서류’ 게임들의 존재감입니다.

 

2021년 말 출시한 인디 액션 게임 <뱀파이어 서바이버>는 단순한 게임성으로 2022년을 휩쓸었습니다. 공격은 자동으로 이뤄지고, 플레이어가 하는 조작이라고는 적을 피하는 것이 전부이지만, 다양한 업그레이드/아이템 조합으로 ‘나만의 빌드’를 제작하는 로그라이트 시스템과의 시너지가 중독적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이 게임의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수많은 파생(아류)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인데, 핵심 게임 룰을 구현하기가 비교적 쉽고, 다양한 테마를 접목한 응용 작품을 만들기에도 적합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당장 <뱀파이어 서바이버> 또한 국산 작품 <매직 서바이버>의 기본 틀에 ‘뱀파이어’ 테마를 접목해 만든 게임인 것처럼요.

 

그 결과 우리는 고작 1년 만에 유사한 형태의 작품이 쏟아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긍정적인 부분은 <뱀파이어 서바이버>의 재미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적 아이디어를 접목한 사례가 이제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넥스트 페스트에서 발견한 몇 가지 흥미로운 예시를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 <옛 어나더 좀비 서바이버즈>

 

이름에서 익숙함을 느끼는 유저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4,500원의 매우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는 탑다운 코옵 좀비 디펜스 슈터 <옛 어나더 좀비 디펜스>를 만든 어섬 게임즈 스튜디오의 신작입니다.

 

‘옛 어나더’(yet another), 라는 표현은 맥락상 ‘또 하나의 뻔한’ 정도의 자조적 수식어인데, 그런 제목에 비해 이 게임은 다른 ‘뱀서류’와 구분되는 흥미로운 지점이 없지 않습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캐릭터 한 명이 아닌 최대 3명으로 한 팀을 구성해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팀’ 시스템의 장점은 여러 가지입니다. 우선, 캐릭터 각자가 사용하는 무기와 스킬이 모두 달라 다양한 조합을 꾸려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또한 1명의 캐릭터를 사용하는 다른 뱀서류 게임에 비해 각각의 신규 캐릭터를 해금할 때의 만족감도 더 커지고, 이를 통해 더해지는 전략의 심도 역시 더 깊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개별 캐릭터 육성 요소도 있습니다. 하나의 캐릭터로 특정 조건 (좀비 n 마리 처치 등)을 완수하면 단계별로 새로운 무기, 스킬이 언락됩니다. 전체 캐릭터에 일괄 적용되는 ‘훈련’ 시스템도 있습니다. 라운드 진행 중 획득하는 ‘달러’를 통해 ‘훈련 포인트’가 쌓이고, 이를 체력 향상, 대미지 증가 등 각 항목에 투자하는 방식입니다.

 

라운드 안에서는 장르 문법을 따라 레벨업시 캐릭터, 무기, 스킬 중 하나를 업그레이드합니다. 무기를 한계 레벨까지 업그레이드하면 아예 더 강력한 다른 총기로 전환됩니다.

 

적 다양성 역시 나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걷는 좀비’로 시작해 점차 돌진하는 유형, 폭발해서 독성 지대를 만드는 유형 등으로 확장되며, 중간 보스에 해당하는 거대 좀비도 주기적으로 나타납니다.

 

본편의 흥행 여부는 게임의 가격 대비 분량에 달려 있을 듯합니다. <뱀파이어 서바이버>처럼 캐릭터와 맵, 적을 추가하면 장기적으로 흥행할 가능성도 엿보입니다. 현재 이 게임은 넥스트 페스트에 출품한 ‘뱀서류’ 게임 중 가장 많이 ‘찜’ 되는 등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 <크래프티 서바이버즈>

 

<크래프티 서바이버즈>는 평가가 쉽지 않은 타이틀입니다. 깊이 있는 전투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장르 문법과 다소 어울리지 않아 어색한 느낌도 주기 때문입니다.

 

데모 버전에서 가장 먼저 제공되는 기본 캐릭터 ‘스토버릭’을 예시로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요리사인 스토버릭은 일종의 필살기에 해당하는 ‘서브!’ 스킬을 가지고 있는데, 서브를 발동시키려면 ‘비스트로’ 스택을 20개 쌓아야 하고, 비스트로 스택은 적에게 세 가지 상태 이상을 동시에 걸어야 축적됩니다.

 

발동시켜야 하는 상태 이상의 ‘조합’도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썰기’, ‘구이’, ‘양념’ 조합을 완성하거나, ‘썰기’, ‘얼림’, ‘설탕 조림’ 조합을 만들면 됩니다.

 

 

각각의 상태 이상은 스테이지를 진행하며 얻는 여러 스킬을 통해 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킬들은 작동 방식과 피해 범위, 대미지와 쿨다운이 모두 다릅니다. 그 결과 몬스터가 죽어버리기 전 상태 이상을 골고루 걸어 ‘비스트로’ 스택을 제대로 쌓는 것이 생각보다는 조금 더 까다롭습니다.

 

또한, 스킬은 모두 유저 선택에 따라 자동 혹은 수동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동으로 사용할 경우 스킬 슬롯에 배치된 순서에 따라 하나씩 작동되며, 수동으로 설정해 두면 슬롯별 할당 버튼을 누르는 식으로 작동됩니다.

 

이렇듯 전투 시스템은 물론 다양한 전투 시나리오를 만들어 준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이 결국 ‘뱀서류’라는 점이 발목을 잡습니다. 전략의 다양성이 빛을 발하려면 그만큼 주어지는 난관도 복잡할 필요가 있지만, <크래프티 서바이버즈>의 전투는 뱀서류답게 탁 트인 전장에서 몰려오는 적을 상대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결과적으로 <크래프티 서바이버즈>의 전투 시스템은 과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그 자체로서 어려움을 선사하는 구속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적을 피하고 무찌르는 과정보다 제대로 된 스킬셋을 구상해 내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게임의 초반 감상이라는 점을 꼭 염두에 둬야 하겠습니다. 해당 시스템에 익숙해지고, 초기 콘텐츠를 벗어나 더 다양한 도전거리를 마주했을 때는, 기존 ‘뱀서류’에서는 찾지 못했던 새로운 재미를 만나볼 가능성이 충분히 열려있습니다.

 

 

 

 

# <사이클로 체임버스>

 

산뜻하고 화려한 색감의 아트 스타일이 눈에 띄는 <사이클로 체임버스>는 <뱀파이어 서바이버>와 <아이작의 번제>가 함께 생각나는 타이틀입니다.

 

몰려드는 적을 상대로 다양한 무기를 써서 살아남는 게임플레이는 다른 뱀서류 게임들과 비슷하지만, 상하좌우로 방향을 정해 무기를 발사하는 기능(옵션에서 자동 조준/발사를 활성화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150개에 달하는 다양한 아이템 선택지에서는 <아이작의 번제>가 연상됩니다.

 

적이 떨어뜨리는 경험치 구슬을 수집해 레벨업을 하는 다른 뱀서류와는 다르게, <사이클로 체임버스>는 ‘씬’이라고 불리는 웨이브를 한 번 클리어 할 때마다 아이템을 선택해 강화할 수  있습니다. 적이 떨어뜨리는 동전은 랜덤하게 등장하는 상점에서 아이템을 살 때 사용합니다.

 


아이템 종류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앞서 선택한 아이템들과의 시너지를 고려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탄환을 두 갈래로 나누는 아이템, 일정 범위 안에서 되튀게 만드는 아이템 등을 조합해 무기 특성을 바꿔나가면, 그때마다 전투의 느낌이 크게 달라집니다.

 

단점으로는 아이템의 종류가 너무 많아 유의미한 조합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는 점이 있습니다. 또한, 천편일률적인 적 행동 패턴도 아쉬운 지점입니다. 시간 흐름에 따라 적 종류가 하나씩 추가되면서 게임플레이 양상이 조금씩이나마 바뀌는 다른 여러 뱀서류 게임들과 비교해 아쉬운 점입니다.

 

하지만 적이 아닌 주인공 캐릭터의 변화에 방점을 찍는다면 매 라운드의 게임 경험에서 다른 재미를 느끼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또한, 적의 종류는 적을지언정 그 숫자는 빠르게 늘어나는 데다 움직임도 빠르기 때문에 난도를 올려 생존에 집중하면 지루함도 많이 덜어낼 수 있습니다.

 


 

# <매드샷: 로드 투 매드니스>

 

<매드샷: 로드 투 매드니스>(이하 ‘매드샷’)은 어떻게 보면 오늘 살펴본 게임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타이틀입니다. 우선 시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뱀서류 게임들이 탑다운 뷰였던 것과 달리, <매드샷>은 사이드뷰로 진행됩니다.

 

시점뿐만 아니라 실제 게임플레이에서도 유사한 점만큼이나 다른 점이 많습니다. 우선, 사방에서 좁혀오는 적들을 해치우며 살아남고, 이들에게서 얻은 경험치를 이용해 강해지는 시스템은 다른 게임들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피하기’나 ‘조준’ 정도의 조작만 필요한 일반적 뱀서류 게임들과 달리, <매드샷>에서는 해야 할 게 많습니다. 일단 이동 기술이 많습니다. 더블 점프, 벽타기, 뛰어내리기, 구르기 등 다양한 움직임을 사용해 복잡하게 구성된 플랫포머 스타일의 맵을 화려하게 돌아다니며 적을 피해야 합니다.

 

 

전투도 훨씬 본격적입니다. 겨냥하는 방향으로 총기가 자동 발사되기는 하지만 편의성은 거기까지일 뿐, 타이밍에 맞춰 보조무기를 휘두르거나 바닥에 놓인 픽업 아이템들을 집어 든 뒤 적재적소에 던져 작동시켜야 하는 등 많은 판단과 조작을 요구합니다.

 

총과 검을 번갈아 쓰는 주인공의 전투 스타일이나 펄럭이는 코트, 화려한 움직임 등을 보면 <데빌 메이 크라이>를 적당히 참고한 느낌도 있습니다. 실제로 화려한 콤보에 점수를 줬던 <데빌 메이 크라이>와 유사하게 <매드샷>에서도 ‘연속 처치’ 개념이 꽤 중요합니다. 연속 처치가 일정 수치를 넘겼을 때 특정 스킬이나 보너스가 작동하는 등의 메커니즘을 통해 액션의 쾌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살펴보니, <매드샷>은 ‘뱀서류’의 문법을 차용했을 뿐, 엄밀한 의미에서 위에 언급된 게임들과 같은 분류로 놓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듯 경계에 연연치 않고 자유롭게 재미를 혼합하는 것이 인디 씬의 매력일 것입니다. 이번 ‘넥스트 페스트’에는 이렇듯 장르를 넘나드는 기발한 타이틀이 여럿, 출품되어 있습니다. 행사는 2월 14일 새벽 3시까지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