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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맛은 어디에서 나오나, 5년 동안 1인 개발한 '루시의 일기'

알만툴로 만든 로그라이트 액션 게임, 개발자 파란게 프로젝트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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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준(음주도치) 2023-03-10 17:57:14

산으로 바다로 나가 월척을 건지지 않아도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시대다. 낚시만큼이나 게임에서도 손맛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손맛에 5년을 들인 인디 게임이 있다. 로그라이트 액션 게임 <루시의 일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2월 24일 정식 출시 이후 2주가 지난 <루시의 일기>는 234개 스팀 평가 중 91%가 긍정적인 '매우 긍정적' 게임이다. 어떤 매력이 유저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냈는지, 5년 동안 1인 개발을 하며 힘든 점은 없었는지 들어보기 위해 개발자 파란게 프로젝트를 만나봤다.

 

5년 동안 1인 개발한 <루시의 일기>가 드디어 출시됐다.

 

 

# 내 알만툴이 이렇게 액션을 잘할 리가 없어

 

게임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루시의 일기>는 '일기'를 메인 소재로 한 게임이다. 주인공 루시는 자신의 기억을 찾고, 갇힌 방에서 탈출하기 위해 일기 속 던전을 한 층씩 올라간다. 플레이어는 루시를 조작해 랜덤한 맵, 무기, 성물이 나오는 일기 속 세상에서 몬스터들과 끝없이 싸우며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는 이야기를 진행한다.

 

조작법은 간단하다. WASD로 이동, 스페이스바로 회피, 마우스 클릭으로 공격을 하면 된다. 쉽게 적응할 수 있는 키 배치 안에서 꽤나 화려한 회피와 패링을 보여준다. <루시의 일기>에서 회피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회피가 마나 수급 및 스태미나 관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무기에 따른 공격 방식 또한 다채롭다.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루시 하나지만 무기 선택에 따라 플레이 경험이 완전히 바뀐다.

 

예를 들어 지팡이는 마우스를 꾹 누르고 있는 것으로 차징을 하며, 공격이 느린 대신 다단 히트가 적용된다. 활은 이동 중에도 공격이 가능하고, 회피에 성공했을 때 연사를 하는 특징이 있다. 검은 마우스를 꾹 누르고 있으면 연속공격이 들어가며, 첫 번째 공격이 적들의 탄막을 튕겨낸다. 공격 사거리가 짧은 대신 여러 적을 동시에 공격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마리와 함께 어딘지 모를 공간에 갇히게 된 루시
나갈 단서를 찾기 위해 일기 안의 던전으로 떠난다.

무기마다 완전히 다른 플레이 경험을 준다.
쏟아지는 공격을 잘 회피하는 것이 핵심!

 

독특한 점은 이런 손맛 좋은 액션 게임이 알만툴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RPG 메이커는 그 이름처럼 스토리 중심의 턴제 RPG에 최적화되어 있는데, 파란게 프로젝트는 알만툴 안에서 <루시의 일기>만의 액션을 만들어냈다. 

 

이런 손맛에 대해 질문했을 때 파란게 프로젝트 김태훈 대표는 "마음에 안 들었던 게임들을 기억해보면 할 수 있는 기능이 너무 과하게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경험을 기반으로 <루시의 일기>는 회피 하나에 모든 것을 다 집어넣었다. 회피만 해도 자동으로 무언가 잘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원활한 플레이로 느낄 수 있게 하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고 대답했다. 복잡함이 깊이가 되어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무기 시스템을 포함한 여러 액션 로직에 대해서는 "스태미나와 자원관리는 <다크소울>에서, 다채로운 무기는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 특히 몬헌은 무기를 바꿀 때마다 플레이 경험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회피가 모든 액션의 베이스가 되는 것은 어떤 작품을 참고했다기보다는 <루시의 일기>의 고유 아이덴티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알만툴로 만들었지만 역동적인 액션을 느낄 수 있는 <루시의 일기>

파란게 프로젝트 김태훈 대표는 "<루시의 일기>의 액션을 회피만 활용해도 쉽게 적응할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로그라이트

 

주인공 루시와 친구 마리가 갇혀 있는 방 안에는 모험을 통해 얻은 '크레딧'과 특정 조건을 달성해 얻는 '업적'을 활용해 누적 성장을 관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플레이어는 방에서 모험을 떠날 준비를 하고 일기 속으로 들어가 전투를 진행하며, 사망하면 다시 일기 속 던전의 1층부터 다시 오르게 된다.

 

<루시의 일기>의 스테이지는 3개의 층을 한 묶음으로 한다. 스테이지가 바뀔 때마다 테마와 적들의 속성, 난이도 등이 크게 변하고, 각각의 층과 스테이지 끝에는 보스전이 준비되어 있다. 일반 몬스터나 보스 몬스터 모두 플레이어에게 탄막 공격을 퍼붓기 때문에 전투를 여러 차례 거치다 보면 어느새 루시는 체력을 모두 잃고 사망해있다. 얼리 액세스 때부터 매우 높았던 난이도는 정식 출시 버전에서도 여전하다.

 

스팀 리뷰에서도 유저들은 모두 "어렵지만 재밌어서 놓을 수가 없다", "맛있는데 맵다", "난 회피를 눌렀는데!"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려운 반복 플레이를 왜 다시 하게 되는 것일까. 다양한 스킬과 무기, 성물이 만드는 변수가 조금만 더 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믿게 하는 희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스테이지는 얼음 테마
세 번째 스테이지는 용암 테마다. 보스도 다양하다.

자주 보는 게임오버 화면. 한 유저는 "괜찮아. 나쁜 꿈을 꿨을 뿐이야"라는 말이 반복 플레이의 스트레스를 줄여줬다고 표현했다.

 

예를 들어 아이템과 장비는 수백 개가 넘고, 랜덤하게 얻는 스킬 또한 다양해 반복 플레이가 지겹지 않다. 또한 아이템에는 유한한 내구도가 있어서, 플레이어가 계속 다양한 아이템을 쓰도록 유도한다. 아이템에는 접두, 접미어 개념이 있어서 부가 효과가 붙는데, 이 또한 플레이 경험에 큰 차이를 가져온다.

 

유저들이 끝없이 도전하게 만들기 위해 어떤 점을 신경 썼는지 물었을 때 김태훈 대표는 "로그라이트 게임은 죽을 때마다 초기화되니까, 이미 봤던 아이템을 또 보지 않게끔 최대한 종류를 많이 늘렸다"며 "게임의 난이도 자체가 높으니, OP(OverPowered) 아이템도 배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양한 방식의 OP템을 만들어서 더 수집욕과 재미를 느끼게 의도했다"고 했다.

 

일부 유저들은 스태미나 및 내구도 무한 아이템, 성물이 게임의 정체성과 충돌하지 않느냐고 리뷰를 남겼는데, 이에 대해서는 "내구도, 스태미나, 마나 무한 모두 게임성을 해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아이템이 있음으로서 얻는 이점이 없는 것보다 크다. 게임의 난이도가 높은 만큼 그에 맞는 강한 아이템이 필요하기 때문에 만든 것"이라고 전했다.

 

<루시의 일기>에는 굉장히 많은 아이템, 성물, 장비, 스킬 등이 있다. 그 중에는 리스크 자체를 없애는 강력한 아이템들도 있다.

 

 

# 던전에서 음악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루시의 일기>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게임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음악을 개발자가 직접 작곡, 편곡을 했다는 것이다. 게임의 콘셉트와 개별 스테이지 및 스토리에 맞는 음악을 직접 제작해 게임의 몰입 효과를 극대화했다. 특히 루시의 방 안에는 피아노가 놓여있어 그 앞에서 연주하기를 누르면 수록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능도 있다.

 

이에 대해 김태훈 대표는 "대학 때 작곡 동아리를 했다. 그 당시 사람들이랑 이런저런 게임 음악이 있으면 재밌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축적해뒀다. 당시 작곡한 곡들이 <루시의 일기>에 들어가게 됐다"며 "<테일즈위버>의 남구민 작곡가를 제일 좋아한다. <메이플스토리>나 <마비노기 영웅전>을 보면 음악이 참 좋은데, 다양한 음악 중에서도 게임 음악을 특히 좋아했다"고 전했다.

 

음악 외에도 게임의 핵심 소재인 일기 또한 김태훈 대표의 삶과 맞닿아 있었다. 일기를 소재로 가져온 이유에 대해 그는 "군대에서 일기를 썼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며 "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서 게임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구조를 <루시의 일기>에서 주인공이 자아와 마주하는 모습으로 담았다. 인트로에서 주인공이 기억을 잃는 설정과 일기라는 소재가 잘 이어진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루시와 마리가 갇힌 방에는 일기와 옷장 등 물건이 별로 없다. 그 몇 안 되는 물건 중 하나인 피아노를 치는 루시

김태훈 대표는 게임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음악을 직접 작곡했다. 대학생 시절 만든 음악도 <루시의 일기>에 들어갔다고 한다.

 

# 1인 개발했더니 라면만 먹게 된 건에 대하여

 

5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쳐 드디어 정식 출시를 했는데 이에 대한 소감으로 그는 "얼리 액세스와는 달리 뭔가 한 건 끝났다는 느낌"이라며 "자식을 낳은 것 같다. 이 게임이 평생 나와 함께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서는 "텀블벅 후원과, 지원받은 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았던 돈을 모두 투자했다"며 "조금만 더 늦춰지면 자금이 떨어질 시점에 다행히 출시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파란게 프로젝트 김태훈 대표는 3년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금이 다 떨어져서 라면 먹어가며 개발한다"는 말을 전했다. 이번 정식 출시 이후에 자금 사정이 조금 나아졌는지 묻자 그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게임성도 칭찬을 많이 받고, 유명 스트리머들도 많이 플레이해주었다"며 "하지만 손익 분기를 넘기는 건 상상하기도 어렵고, 기대도 안 하고 있다. 지금도 라면 먹으며 버티는 건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이번에 인터뷰를 진행한 장소는 그의 사무실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1년 전 대출을 받아 마련한 공간"이라며 "앞으로 게임을 계속 내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배수진을 친다는 마음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공간이 아주 좁진 않은데 앞으로는 다른 인원과 함께 작업할 계획인지 묻자 "혼자 작업하면 또 몇 년이 걸릴 테니, 함께 할 사람을 구하든 다른 팀과 협력하든​ 다시는 혼자 하지 않을 생각"이라 전했다.

 

무엇이든 적는대로 이루어지는 '루시의 일기'처럼 파란게 프로젝트의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소원도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는 "차기작은 엔진을 바꿔서 내려고 생각한다. 여러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 소재도 확정하지 않았다"며 "당장은 <루시의 일기>의 버그 수정에 집중하고, 그 후엔 <루시의 일기> DLC를 추가할 생각도 하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루시의 일기>가 완성된 건 유저들의 덕이 크다. 댓글과 응원이 올라올 때마다 너무 눈물이 나고 힘이 됐다. 멈추지 않고 달려올 수 있던 동력이다. 감사함을 게임의 재미로 보답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계속 개발할 것이다. 공지사항 밑에 항상 응원해주는 유저분들께 감사하다는 문구를 넣는데, 복붙이 아니라 매번 새로 다짐하며 적는 진심"이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매번 새로 다짐하며 마무리 인사 적었다던 그의 말처럼 지난 5년 동안 파란게 프로젝트가 남겼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