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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3 취소 사태로 살펴본 업계의 3가지 고민

ESA가 털어놓은 불발 원인은?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3-04-03 17:29:06

[2023 E3 취소 관련 기획기사 모음]


1. E3는 어떻게 시작됐고, 어떤 굴곡을 겪어왔나 (바로가기)

2. E3 취소 사태로 살펴본 업계의 3가지 고민 (현재 기사)

3. E3 취소, 앞으로 대형 게임쇼는 어떻게 될까? (바로가기)


2023년 6월로 예정되어 있던 E3가 취소됐다. 대형 게임사들의 이어진 이탈 선언 끝에 내려진 불가피한 결정이다.

 

MS, 소니, 닌텐도, EA, 유비소프트, 텐센트 등 전 세계의 내로라할 게임사가 모두 불참을 결정하면서 업계에서는 이미 얼마간 E3 취소 가능성을 높게 점치던 상황이다. ESA는 내부 인원들에게 전달한 서신에서 “게임 산업의 규모, 힘, 임팩트를 보여줄 수 있을 만큼의 (업계) 관심을 끌어모으지 못했다”고 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 3대 게임쇼 중 하나로 불리던 유력 행사가 무산됨에 따라, 그 원인을 파악하려는 움직임도 분주하다. 코로나 판데믹, 불황, 마케팅 트렌드 변화 등 업계가 두루 고민하는 우려 사항들이 중첩해 E3 불발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 가시화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 마케팅 트렌드가 변했다

 

행사를 주최하는 ESA(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연합)는 이러한 관점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ESA는 저명 이벤트 운영 기업 리드팝(ReedPop)과 손잡았다. 리드팝은 PAX 이스트와 웨스트, 코믹콘, 마인크래프트 페스티벌 등 유수의 엔터테인먼트 이벤트를 주도하고 있는 기업이다. 그러나 리드팝의 합세에도 E3 취소는 막을 수 없었다.

 

취소 발표 당일 3월 30일 리드팝 산하 게임매체 게임즈인더스트리는 ESA 사장 겸 CEO 스탠리 피에루 인터뷰 기사를 통해, E3 불발 원인을 직접적으로 전달했다. 인터뷰에서 피에루 CEO는 비교적 가감 없이 이번 사태의 원인을 털어놓고 있다. 그중 하나는 마케팅 트렌드의 변화다.

 

그간 E3는 게임 상품과 서비스를 발표하기 위한 창구로 활용되었고, 일반 게이머들의 관람이 허용되면서 주요한 마케팅 무대로도 활용되어온 바 있다.그러나 업계 마케팅 트렌드에 무시할 수 없는 변화가 찾아왔다. 피에루 CEO는 “(게임사들의) 마케팅 니즈는 진화했고, 이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했다

 

피에루 CEO가 말하는 마케팅 니즈의 ‘진화’란 온라인 매체 강화에 따른 기업별 마케팅 창구의 다변화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대기업들은 신작 발표에 있어 E3와 같은 대형 오프라인 이벤트 참가에 크게 의존했으나, 온라인 방송 보편화로 이들이 각자 고유 채널을 통해 유저를 직접 만날 수 있게 되면서 오프라인 행사 참여 필요성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실제로 E3 행사의 메인 참가 기업이었던 MS, PS, 닌텐도 등 3사는 각자의 신작을 발표할 수 있는 고유 디지털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각각 닌텐도 다이렉트,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Xbox 게임 쇼케이스 등이다.

 

그리고 피에루 CEO의 말처럼 이는 비단 코로나19 이후의 트렌드가 아니다. 닌텐도 다이렉트의 경우 이미 2011년부터, 그리고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는 코로나 발발 직전인 2019년부터 지속하고 있다.

 

소니 등 주요 게임사들은 자체 디지털 게임쇼를 진행하고 있다.

 

 

# 데모 만들 여력도, 이유도 없다

 

한편 기업의 E3 참가를 막은 불가항력적 원인으로 코로나19 이후 대다수 기업이 겪는 개발 일정 차질도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피에루 CEO는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판데믹 이후 여러 기업의 게임 개발 타임라인에 변화가 찾아왔다”고 언급한다. 실제로 판데믹으로 인해 서구권 상당수 국가가 봉쇄조치를 감행하면서 대형 개발사들의 업무환경에 불가피한 급변이 있었고, 이에 따라 적지 않은 게임들이 개발에 난항을 겪은 바 있다.

 

그 결과 대작 게임의 정식 출시가 수개월 혹은 수년에 걸쳐 지연되는 사례가 지난 몇 년간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렇듯 업계가 전반적으로 출시 일정에 허덕이는 상황 속에서, 대외적으로 공개할 만한 결과물을 게임쇼 용으로 먼저 완성하기가 쉬울 리 없다는 것.

 

ESA는 복수의 외신에 전달한 입장 발표에서 이 지점을 보다 명확히 언급했다. 이들은 “우리는 많은 기업이 플레이 가능 데모를 준비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신 비디오게임크로니클(VGC) 역시 E3 취소 확정 직전 진행된 팟캐스트에서 E3의 전망을 진단하며 이 점을 짚었다. VGC는 “판데믹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체험판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실제로 요즘 PS 계열 스튜디오 등 여러 게임사가 체험판을 안 만든다. (중략)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발사들이 E3에 출품할 만한 콘텐츠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최근 진행된 다른 게임쇼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되던 현상이다. 예를 들어 2022년 게임스컴에서 MS는 <스타필드>와 같은 주력 게임의 플레이어의 데모를 전혀 전시하지 못했다. 산하 개발사 옵시디언이 개발한 소규모 타이틀 <펜티먼트>를 제외하면 MS 부스에는 신작 관련 플레이어블 콘텐츠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게임스컴에 참가한 Xbox

 

# 살림이 빠듯하다

 

마지막으로 E3 행사 참여에 드는 적지 않은 비용에 대해 생각해볼 만하다. 업계는 3년간의 코로나 특수가 잦아드는 시점에 불황이 겹치면서 대규모 인원 해고 등 경영효율화에 돌입한 상태다.

 

자연스럽게 상당수 기업의 마케팅 예산 및 마케팅 조직들이 ‘효율화’ 포화에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예로 올해 전체 5%에 달하는 1만여 직원의 대규모 정리해고를 감행한 MS는 게임 마케팅 비용에서도 절감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외신 VGC는 사안에 정통한 취재원을 인용, E3 불참 결정 역시 마케팅 예산 삭감에 의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피에루 CEO 역시 이 사실을 주요한 원인으로 언급했다. 그는 “기업에 있어 E3는 디지털 쇼 참여뿐만 아니라 현장 인원 참가 측면에서도 부담이 상당하다. 판데믹 기간 이들 기업이 실험하고 활용해온 다른 유형의 마케팅 플랫폼(SNS 등)과는 상당히 다른 성격”이라고 전했다.

 

즉, 비대면 트렌드에 맞춰 마케팅을 진행해온 지난 3년의 관성으로 인해 전통적인 형태의 마케팅으로 즉시 회귀하기에 어려움이 따르리란 관측이다.

 

IGN 역시 E3의 취소 가능성을 예측한 3월 29일 기사에서 업계가 느끼는 부담을 언급했다. IGN이 여러 기업으로부터 종합한 내용에 따르면, 이들 중 상당수가 판데믹 기간에 '현장 이벤트' 관련 예산을 감축하고 인원을 정리했다. 그리고 이것이 아직 판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

이에 따라 E3나 기타 게임쇼 참가를 원하는 기업들이라 해도 예산이 없어 현지에 인원을 보내지 못하는 상태다. 더 나아가, 만약 쇼 참가 예산이 있더라도 E3보다는 불확실성이 훨씬 적은 PAX나 게임스컴과 같은 경쟁 행사들이 먼저 고려되는 상황이라고 IGN은 전했다.

 

 

게임스컴은 아직 불안한 소식이 없다

 

E3 행사의 전통적 '경쟁 구도' 역시 고려해볼 대상이다. 그간 E3는 대형 게임사들이 최대 화제를 모으기 위해 노력을 다하는 일종의 각축장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디지털 홍보가 활발해진 이제는 이들이 대규모 예산을 소모해가며 한정된 E3 현장에서 서로 다툴 필요가 현저히 줄었다.

 

각자 채널을 통해서도 충분히 많은 관심을 끌 수 있을 만큼 공고한 팬덤을 확보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소니에 따르면 자체 게임쇼인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의 조회수가 2020년 490만 회, 2021년 390만 회 등으로, E3 소니 발표 영상 중 최대 조회수인 251만 회(2016년)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드러났다.

 

거꾸로 E3가 다른 게임쇼와의 경쟁에서 밀린 정황도 엿보인다. 앞서 언급된 IGN 보도에 따르면, 반다이 남코, 텐센트 등 기업이 E3와 동일 기간 진행되는 게임 전시회 '플레이 데이즈'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플레이 데이즈'는 '더 게임 어워드'를 주관하는 게임쇼 호스트 제프 케일리가 이번해 최초로 시도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이다. 케일리는 판데믹 시기에 신설한 디지털 중심 게임쇼 '서머 게임 페스트'를 통해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는데, 이번에는 엔데믹에 맞춰 그 부대행사인 오프라인 핸즈온 행사 '플레이 데이즈'를 출범시킨 것.

 

보도에 따르면 '플레이 데이즈'는 E3에 비해 그 규모가 작고 참가 비용 또한 적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더 게임 어워드'와 '서머 게임 페스트'로 명성을 쌓은 케일리의 이름값 덕분에 마케팅 효율 역시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E3에 비해 리스크가 적고 기대효용이 높은 이벤트인 셈. 케일리가 E3를 '물 먹일'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E3보다 조금 앞선 시기, 같은 지역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가뜩이나 위기 상황이던 E3를 간단히 낭떠러지로 몰아세우는 형국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 번외: 국내 업계는 E3 참여 왜 시들했나?

 

한편 E3 취소 사태가 국내 업계에 가지는 의미는 해외 대비 적어 보인다. 그간 국내 업계의 E3 참여율은 그 규모에 비해 저조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일차적으로 E3는 ESA에 가입된 기업들에 한해 열려 있는 행사인 만큼, 참여가 제한되기에 다른 게임쇼 대비 국내 기업들의 진출 기회가 원천적으로 적었다. 그렇다고 국내 업계가 E3를 완전히 외면한 것은 아닌데, 2000년대 중반까지는 게임 매체나 게임쇼 등 레거시 미디어가 게임 홍보의 주요 창구였던 까닭이다.

 

즉, 국내 게임이 직접 해외 소비자에 소개될 기회가 현재에 비해 적었다. 해외 시장, 특히 북미권 대상 글로벌 서비스를 노리는 국내 MMORPG 기업이라면 E3는 드문 홍보 기회였다. 이에 '뜻이 있는' 국내 MMORPG 게임사들은 E3에 적극 참여했던 바 있다.

 

대표적으로 엔씨소프트, 웹젠 등 글로벌 진출을 노리는 기업들이 대규모로 E3를 찾았다. 좀 더 가까운 사례로는 타 MMORPG 대비 해외 팬덤 비율이 높은 <검은사막>의 펄어비스가 E3에 종종 참여해왔다. 2014년 한국 공동관으로 현장을 찾았고, 2018년에는 E3 Xbox 컨퍼런스에서 <검은사막> Xbox 버전을 공개했다. 2019년에는 기업 상담부스로 참여하는 한편, E3 기간 동안 같은 L.A.에서 자체 게임 행사 ‘인투 디 어비스'를 진행했다.

 

그러나 최근 있었던 국산 게임들의 글로벌 진출 사례를 볼 때, E3 의존도는 앞으로 더욱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게이머들이 새 게임을 발견하고 진입하는 데 있어 전통 매체보다 인플루언서, SNS 등 개인화된 매체 영향력이 더 크고, 이것이 코로나19 판데믹 기간에 한층 더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글로벌 히트를 기록한<로스트아크>도 E3에 출품하지 않은 채 <검은사막>의 스팀 접속자 기록을 추월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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