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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배틀로얄에서 ‘확킬’ 안 하기”…국제적십자 이색 캠페인

“전쟁에도 규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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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언(톤톤) 2023-04-21 16:49:57

배틀로얄 장르에서 기절한 적을 완전히 제거하는 ‘확인 사살’은 승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전략 행동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시국제법(전쟁법)에 반하는 전쟁범죄로 간주된다.

 

전쟁법은 4차례의 제네바 협약 및 추가의정서를 통해 마련된 국제법으로, 국제인도법(IHL) 등으로 불린다. 집행을 강제할 실제적 방법이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전시 전쟁포로와 민간인 대상으로 벌어지는 야만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으로 중시되고 있다. 한국 역시 제네바 협약에 비준한 여러 국가 중 하나다.

 

만약 슈팅 게임 유저가 이러한 전쟁법을 준수해 플레이한다면 어떤 모습이 펼쳐질까? 조금 황당하게 들리기도 하는 이러한 상상이 실제로 벌어졌다. 다름 아닌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직접 주관한 이색 캠페인을 통해서다.

 

 

 

# 어떤 '룰' 적용했나?

 

지난 4월 15일 ICRC는 FPS 게임 스트리머 등과 협력하여 ‘규칙대로 플레이하기’(Play by the Rules) 온라인 이벤트를 진행했다. 행사는 <배틀그라운드>, <포트나이트>, <워존>, <레인보우식스 시즈>,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 등 유명 슈팅 게임 스트리머들이 전쟁법에 따라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방송을 송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ICRC가 해당 이벤트에서 규칙으로 내세운 인게임 룰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적이 쓰러진 채 저항하지 않는다면 사격을 중단해야 한다. 전쟁법에서는 전쟁포로에 대한 폭력, 위협, 학대를 금하고 있다. 둘째로, 선제 사격을 하지 않는 봇은 쏠 수 없다. 이 규칙은 물론 민간인 공격 금지 조항을 따른 것이다.

 

셋째로 어떤 맵에서든 민가, 병원, 학교는 안전지대로 인정되며, 공격할 수 없다. 만약 그 안에서 싸워야 한다면 시설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실제 전쟁법에서도 민간 기반 시설 보호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마지막 룰은 부상자에게 피아 구분 없이 치료 아이템을 제공하는 것이다. 전쟁법에 따르면 부상병 또는 질환자는 국적을 불문하고 구호해야 한다.

 

ICRC가 적용한 4가지 룰

 

ICRC의 이번 캠페인은 현실 속 전쟁 피해에 신음하고 있는 민간인, 전쟁포로 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캠페인을 소개하는 미니 홈페이지에서 ICRC는 “사람들은 매일 집에서 게임 속 분쟁지역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최근 무력 분쟁이 격심해지고 있고, 그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는 게임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무력 분쟁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훼손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여러분께 슈팅 게임을 실제 전쟁법에 따라 플레이해 볼 것을 제안한다. 전쟁에도 엄연히 지켜져야 할 규칙, 인도주의를 위한 규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의의를 전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제네바협약을 위반하는 전쟁범죄 행위를 다수 자행한 것으로 드러나 국제적 비난을 사고 있다. 여기에는 민간인 사살과 학대, 병원·민가·학교에 대한 무차별 포격, 포로 사살 등이 포함된다.

 

배틀로얄 장르에서 '확정 킬'은 필요한 행동 중 하나지만… (출처: PUBG 공식 유튜브 채널)

 

 

# ‘전쟁게임 반대’와는 다르다

 

한편, ICRC가 게임 속 전쟁 표현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짚고 넘어갈 만하다. 오히려 이들은 게임을 전쟁 범죄 문제를 알릴 좋은 수단으로 여기고 게임사들과 협력하는 등 게임 친화적 태도를 보여 왔다. 이번 이벤트 또한 기존 노력의 연장으로 바라볼 수 있다.

 

지난 2013년 ICRC는 자체 인터뷰를 진행, 게임을 향한 자신들의 시각을 드러냈다. ICRC는 “우리는 게임에서도 전쟁법을 지킬 경우 보상이 따르고, 반대로 심각한 전쟁범죄를 저지를 경우 불이익이 가해지는 등 전쟁법 준수 여부에 의한 인과(consequences)가 발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런 디자인을 강제할 수는 없다는 게 ICRC의 관점이다. 이들은 “그러나 그러한 행동을 게임에서 제거하는 건 현실적이지 못하다. 전쟁법 위반은 현실에서도 벌어지는 만큼, 게임에도 포함될 수 있다. 다만 보상과 불이익 시스템이 게임에 도입된다면, 유저들에게 ‘전쟁에서 받아들여지는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에 대해 알려줄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전쟁의 규칙> DLC는 유저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게임사와의 직접적 협업도 진행한다. 지난 2017년에는 보헤미아 인터랙티브와 함께 <아르마 3>용 DLC <전쟁의 규칙>(Laws of war)을 출시했다. 현실적 전쟁 묘사로 유명한 <아르마 3> 게임 시스템을 바탕으로 국제 인도주의단체 일원이 되어 구호에 힘쓰는 내용을 담았다.

 

전쟁으로 파괴된 마을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전달한 진중한 분위기와 탁월한 스토리 연출로 유저들에게도 크게 호평 받았고, 수익 중 17만 6,667달러(약 2억 3,470만 원)가 ICRC에 전달됐다.

 

이번 캠페인에서는 <포트나이트>의 커스텀 맵 제작 업체 ‘비욘드 크레이티브’와 손을 잡았다. 비욘드 크레이에티브는 <포트나이트>의 크리에이티브 모드를 이용, 기업들이 자사 브랜드를 홍보할 수 있는 ‘마케팅 전용 맵’을 만드는 기업이다. 이들이 만든 ‘플레이 바이 더 룰’ 맵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면, ICRC가 제안한 룰을 적용한 <포트나이트> 경기를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