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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독과점 행위를 규율하는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노골적으로 MS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시도에 저지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
빅테크의 산실인 미국에서 FTC는 빅테크 기업들과 긴 악연을 만들어 왔다. 1969년부터 1980년에 걸쳐 IBM의 반독점 혐의를 조사했고, 1991년부터 2001까지는 MS와의 소송을 통해 회사 분할을 시도했다. 2011년에는 무선통신 시장의 독과점 우려를 이유로 AT&T와 T-모바일의 인수합병을 무산시켰다.
보다 최근 사례를 보면 2018년 페이스북(현 메타)의 왓츠앱 인수를 반대한 데 이어 2019년에는 구글의 핏빗 인수, 2020년에는 아마존의 MGM 스튜디오 인수 등에 차례로 태클을 걸고 나섰다. 다만 이들 세 기업의 인수는 결국 성공으로 돌아갔다.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글로벌 빅테크들을 향한 견제는 2021년 조 바이든 정부 들어서도 더욱 강화했다.
바이든 미 대통령에 의해 2021년 역대 최연소 FTC 위원장으로 임명된 리나 칸은 바이든 정부의 빅테크 견제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예일대학교 로스쿨에서 독점금지법, 경쟁법을 연구한 리나 칸은 2017년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을 발표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논문에서 칸은 미국의 독과점 방지 제도가 아마존과 같은 테크 기업의 새로운 독점 방식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기존 독과점 규제는 기업의 ‘손실회복’(recoupment) 가능성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손실회복이란 거대기업이 우선 파격적 가격정책으로 경쟁자를 물리치고 시장 지배적 입지를 확보한 뒤, 가격을 다시 인상해 손해를 충당하는 것을 말한다. 그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소비자 후생은 결국 악화한다.
그러나 아마존과 같이 다양한 사업 영역에 걸쳐 있는 빅테크 기업은 이와는 다른 형태로 독과점을 자행할 수 있다는 것이 논문의 대략적 골자다.
우선 아마존은 웹 커머스, 온라인 방송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지배적 플랫폼을 가지고 있으며, 플랫폼 운영에 있어 자사 서비스/제품 노출을 늘리고 가격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등 수단을 동원해 타사를 손쉽게 배제할 수 있다. 이런 우위 선점 과정에서 아마존이 산하 플랫폼들을 통해 수집한 고객정보와 경쟁사 정보를 적극 활용한 것 또한 문제다.
그런데 아마존은 이렇게 특정 영역에서 타사를 몰아낸 뒤에도 가격 인상을 통한 ‘손실회복’을 시도하지 않으며, 덕분에 규제의 그물에도 걸리지 않아 왔다.
이런 전략을 펼 수 있는 것은 아마존이 여러 산업에 걸쳐 있는 거대 기업으로 한 산업 영역에서의 손해를 다른 산업에서 보완할 수 있는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마존은 다른 기업들이 반드시 이용해야만 하는 필수적 플랫폼을 여럿 거느리고 있다. 따라서 이들 플랫폼의 입점 기업 수수료를 인상하는 등 방법으로 전혀 다른 영역에서 손실회복을 노릴 수 있다는 의미다.
칸의 논문은 북미, 유럽 등지에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반독점 규제 기조에 변화를 불러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바이든 정부는 2021년 7월 9일 발표한 ‘미국 경쟁 촉진 행정명령’에서 지배적 플랫폼 기업에 의한 개인정보 악용과 경쟁 기업 배제를 비판했다. 앞서 알아본 EU의 DMA(디지털 시장법)도 마찬가지의 관점을 담고 있다.
칸 위원장의 이론에 바탕해 FTC는 기존 진행된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기업의 타기업 인수 사례를 조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빅테크를 향한 칼날을 빼 들었다.
논문에서 문제 삼았던 아마존의 경쟁 저해 행위에 대해서도 저격에 나섰다. 클라우드 서버 사업 아마존웹서비스(AWS)를 이용하는 기업에 타사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권유하고, 여기에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경쟁자 배제를 시도했는지 조사 중이다.
MS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에서도 2022년 12월 경쟁 저해 혐의로 행정 소송을 제기하면서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로 MS는 자사 Xbox 콘솔사업, 그리고 급성장 중인 구독 서비스 및 클라우드 게이밍 사업의 경쟁자들을 억누를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특히, MS가 기존에도 베데스다 소프트웨어 모회사 제니맥스 등 기업 인수를 통해 값어치 높은 게임 콘텐츠를 입수한 뒤 독점화함으로써 라이벌 콘솔들의 경쟁력을 저해한 전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FTC가 예상하는 MS의 경쟁 저해 전략으로는 ▲액티비전 블리자드 게임의 가격 정책 조정 ▲타 콘솔/서비스에서의 게임 퀄리티 및 게임 경험 저하 ▲액티비전 블리자드 게임 최초 플레이 시점 차별화 ▲경쟁자에 대한 콘텐츠 제공의 완전 배제 등이 제시됐다.
한편 FTC가 실제로 기술 기업의 인수 무산을 유도해 낸 적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2020년 시작된 엔비디아의 ARM 인수에 대해 FTC는 ‘불법적 수직 결합’으로 규정해 제소에 나섰다. FTC는 ARM이 인수될 경우 기존과 달리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 라이선스를 엔비디아 외 기업에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경쟁이 저해될 수 있다고 봤다.
이에 대해 엔비디아는 행동적 해결책으로 ‘라이선스 관행 유지’를 약속했지만, 결국 FTC, CMA, EU 집행위 모두의 반대에 부딪혀 인수를 포기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만하다.
MS 역시 액티비전 블리자드 게임을 독점하지 않겠다는 확언과 함께 실제 경쟁사들과 ‘게임 공급 10년 계약’ 체결에까지 나섰지만, CMA가 여기에 ‘역부족’ 판정을 내린 사실과 겹쳐 보이는 지점이다.
그러나 반대로 FTC는 메타를 상대로 한 인수 저지 시도에서 최근 참패를 맞이하기도 했다. 2022년 메타가 인수한 VR 피트니스 기업 ‘위딘’을 두고 FTC는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FTC는 이후 자체 법정에서 MS 사례와 마찬가지로 반독점 소송에 나설 계획이었다. 하지만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FTC는 가처분 항소 및 자체 행정 심판을 포기했다. 리나 칸 체제 돌입 이후 맞이한 첫 번째 대형 패배가 MS의 인수 시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