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10,000명 이상이 오가는 서울 도심의 한 지하철역. 평범해 보이는 이 공간에서 어느 날부터 괴현상 제보가 쏟아진다. 역사 한 구석의 은밀한 장소에서 비밀스러운 종교 의례가 목격되고, 아무도 없어야 할 철로 위에선 인간을 닮은 형상이 출몰한다. 사태에 호기심을 품은 당신은 조사에 나서고, 관련 기관의 도움 아래 문제의 현장에 직접 발을 들일 기회를 얻는데…
새로 나온 공포 게임의 시놉시스가 아닙니다. 블리자드 코리아가 <디아블로 4> 출시를 맞이해 마련한 체험 행사 ‘헬스테이션’의 설정을 각색한 내용입니다. 서울교통공사와의 협력으로 준비했다는 이 특별한 이벤트를 조금 먼저 체험해 보았습니다.
(*기사에 가짜 혈흔, 시신 모형 등 불쾌할 수 있는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소는 서울 영등포시장역에 실존하는, 버려진 지하 4층 승강장입니다. 외환위기 여파로 취소된 서울 지하철 10호선의 일부로서, 민간에 출입이 허용되는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입니다. 워낙 비밀스러운 공간이었던 탓에 여러 괴담의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행사에는 한정된 인원만 참여하게 됩니다. 온라인으로 신청자를 모집한 뒤 선별을 거치는데, 신청 단계에서 ‘사건’을 접하면서 행사 체험이 이미 시작된다는 설명입니다. 온라인으로 단서를 발견하고 현실에서 조사를 벌이는 방식에서 ARG(대체현실게임)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현장에 도착하면 참가자들은 '임시수사본부'에 모여 조사 대상과 목적에 대한 브리핑을 받게 됩니다. 사건을 담당한 가상의 ‘특수본’에 따르면 이 폐 승강장 내에서는 일종의 오컬트 의식이 치러진 듯하며, 그 때문인지 초자연 현상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30여 분의 시간 동안 관련하여 몇 가지 주요 의문의 답을 찾으면 됩니다.
잘 꾸며진 현황판, 수트와 제복 차림 진행요원들의 긴장된 연기가 몰입감을 끌어올립니다. 브리핑이 끝나면 참가자들은 승강장으로 향합니다. 90년대에 버려진 낡은 시설의 외양은 그 자체로 묘한 오싹함이 느껴집니다.
이제 참가자들은 지급된 랜턴과 각자의 스마트폰에만 의지한 채 칠흑 같은 어둠으로 들어서야 합니다. 지하 승강장이 주는 위화감과 위압감은 압도적입니다. 전통의 공포 유발 장소인 폐병원이나 학교 정도는 되어야 여기 견줄 수 있을 듯합니다.
내부는 <디아블로 4>의 구체적 장면이나 세계관을 표현한 총 8개 체험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핏빛 도살장'에서는 자루에 담긴 희생자들과 함께 도살, 발골에 쓰일 만한 우악스러운 도구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디아블로> 시리즈 팬이라면 익숙할 오브제들, 그러니까 핏자국, 제단, 심볼, 시신 등이 곳곳에 충실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모두 퀄리티가 높아 하나하나 감상하는 맛이 있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표현 수위인데, 평소 고어물에 대한 면역이 많이 약한 분이라면 관람에 다소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설명을 대신하겠습니다. 일부 전시물은 기사에 포함시키기 어려울 만큼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정적인 경험만으로 채워놓은 행사는 아닙니다. 원작을 연상시키는 몇몇 흥미로운 연출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피의 마법진' 구역에서는 인간 제물로 마법진이 작동하는 모습을, 그리고 '지옥의 포털' 구역에서는 시리즈의 상징적 붉은 포털이 타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블리자드 코리아에 따르면 이번 행사는 <디아블로> 시리즈 초기의 어둡고 고어한 테마로 돌아간 <디아블로 4>의 전반적 연출 기조를 전달하기 위한 기획입니다. 지상에 다시 강림하려는 악마 ‘릴리트’와 그 추종자들을 추적하는 4편의 메인 스토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구성이 재치 있게 다가옵니다.
<디아블로>에 관심이나 애정이 많은 게이머라면 체험을 권해볼 만합니다. 보통은 접근 불가능한 공간을 구경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꽤 가치 있는 경험입니다. ‘헬스테이션’은 5월 19일 오늘부터 6월 11일까지 매주 금, 토, 일 열립니다. 참가자 선정은 주 단위로 이뤄지며, 탈락한 유저도 다시 시도할 수 있습니다. 끝까지 기회를 얻지 못한 유저에게는 소정의 인게임 아이템이 보상으로 제공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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