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닌텐도 ‘게임큐브’와 ‘Wii’ 에뮬레이터인 <돌핀>의 스팀 배포가 중단됐다. <돌핀>이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MCA)을 위반하여 닌텐도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밸브가 유통을 중지시켰기 때문이다.
DMCA에 따르면 특정 콘텐츠에 대한 권리를 침해당한 권리자는 유통 서비스 제공자로 하여금 해당 침해 콘텐츠를 내리도록 요구할 수 있다. 스팀에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해당 상품 페이지는 일시적으로 숨김 처리되며 콘텐츠 생산자가 권리를 침해한 사실이 없음을 소명해야 한다. 이후 소명이 되지 않거나 법적인 문제가 발견되면 스팀 페이지가 완전히 삭제된다. 사법적 절차 이전에 서비스 제공자인 밸브가 콘텐츠 게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셈이다.
이번 <돌핀>의 경우 닌텐도 Wii의 암호화 키를 무단으로 사용해 닌텐도의 승인 없이 ‘저작물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는 기술적 조치를 우회’함으로서 DMCA의 우회 금지 및 불법 매매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주장이다. 밸브는 닌텐도의 주장을 받아들여 <돌핀>의 판매 페이지를 숨김 처리했다. 만약 <돌핀>이 DMCA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밸브 측에 소명할 경우 이번 쟁점은 재판에서 다투게 되는 상황.
닌텐도의 이같은 행보는 최근 <젤다의 전설: 왕국의 눈물> 유출 이후 일어난 닌텐도 스위치 에뮬레이터 DMCA 셧다운(게시 중단)의 연장으로 보인다. 지난 6일 안드로이드용 닌텐도 스위치 게임 에뮬레이터 ‘스카이라인’ 또한 닌텐도 스위치의 암호화 키를 추출하여 복사 방지 시스템을 우회한다는 이유로 깃허브 게시가 중단되었고, 개발진의 논의 끝에 소명 없이 사후 지원 종료를 발표한 바 있다.
미국에서 에뮬레이터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선 비상업적인 목적인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나, 미국에선 저작권이 있는 소스를 도용한 것이 아니라면 상업 목적 에뮬레이터 개발도 가능하다.
실제로 2000년 소니(당시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와 플레이스테이션 에뮬레이터 개발사 ‘코네틱스 코퍼레이션’ 사이의 법적 분쟁에서 소니의 권리 침해 주장이 기각되어 금지 명령이 해제된 케이스가 있다. 이듬해 두 회사는 법정 밖에서 합의했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위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소니가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고 해도 그로 인해 '공정 사용'(저작물을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DMCA 상 개념)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였다.
단 에뮬레이터를 판매하는 경우 그것으로 구동하는 게임 파일은 이용자 본인이 소유한 원본 매체에 있는 것을 직접 복사해서 구동해야 한다. 소프트웨어를 카피해서 판매하는 것은 명백한 저작권 침해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많은 에뮬레이터는 게임 파일 추출기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닌텐도는 공식 홈페이지에 ‘R4’, ‘DSTT’ 등을 예시로 들며 이러한 게임 추출도 ‘불법 우회’에 해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에뮬레이터를 개발하더라도 ‘독점작’까지 새로 개발할 수는 없는 노릇. 닌텐도의 ‘불법 우회’ 논리가 법적으로 인정된다면, 이외에도 많은 에뮬레이터가 DMCA 셧다운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돌핀> 측은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