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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현대 미술 단기 속성 과외, 게임으로 면허 취득까지 가능"

북서울미술관, 전시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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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하(그리던) 2023-06-05 11:42:15
게임으로 현대 미술을 배울 수 있는 전시가 노원구에 위치한 북서울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7월 10일까지 진행되는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가 그것이다.

7월 10일까지 진행되는 전시는 국내외의 비디오 아트를 다룬다. 동시대 비디오 아트를 대표하는 김재원, 윤지원, 인터넷산악회, 테오 트리안타필리디스, 리아리잘디, 샘 발로우가 참여했다. 이들은 각각 매체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와 게임 실황, 단편 영화, 라이브시뮬레이션 등을 출품했다.

그런데, 이 전시 일반적이지 않다. 다른 비디오 아트 전시처럼 비디오만 상영되는 게 아니다. 비디오 아트 전시라면서 본격적인 전시는 2층에서 시작되고, 입구가 있는 1층에는 가이드라인도 없이 여러 체험 도구만 흩어져 있다. 이곳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웅현, 김영수 초대기획자, 유한나 학예연구사, 허태영 코디네이터의 안내에 따라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를 톺아보았다. 게이머들을 위한 '현대 미술 단기 속성 과외'가 되어줄 것이다. / 디스이즈게임 신동하 기자


# 게임처럼 접근해서 어려운 현대 미술 마주하기

 

전시장은 북서울미술관 본관의 1층과 2층에 마련되었다. 2층에는 상영관이 마련되어 여섯 작가의 각기 다른 영상작업이 시간표에 따라 상영된다. 1층은 여섯 작가의 영상작업을 바탕으로 구성된 참여 활동 공간이 마련되었다. 관람객들은 1층에 있는 입구로 입장해서, 활동지에 따라 체험을 마친 후 2층으로 올라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전시'보다는 '게임'에 가깝다. 비디오 아트를 관람할 때, 관람객들은 역산의 과정을 거쳐 그 의미를 이해한다. '필름'이라는 결과물을 바탕으로 그것에 담긴 의미를 유추하는 것이다. 조금 더 정리해 보면, 예술가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필름에 담으면, 관람객은 그것을 보고 나름의 방법으로 숨겨진 의미를 파악한다. 그러나 게임의 경우는 그보다 능동적이다. 때에 따라서는 그 두 과정이 완전히 역전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영수 공동 기획자는 핵앤슬래시 장르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게임<디아블로>에서 플레이어는 보스를 잡을 때까지 어떤 보상을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적들을 하나씩 무찔러 나가고 결국은 결과물을 보게 된다. 이러한 게임의 특성을 반영하여 사람들이 어려운 현대미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고.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시장

인터넷 산악회 팀의 작품은 일반적인 전시와 이번 전시의 차이점을 잘 보여준다. 팀은 다큐멘터리<진경산수>로 이번 전시에 참여했다. 영상에서 팀은 일제시대 유입된 등산 문화를 조명하고, 급격한 기후 변화와 난개발로 시선을 돌려 한국 사회와 산을 잇는다. 영상은 2층 상영관에서 만날 수 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이기에 여러 사전활동이 준비되었다. 관람객들은 활동지의 지시에 따라 1층에서 '등산'과 '산불' 그리고 '케이블카'를 연상시키는 활동을 마련했다. 그 과정에서 관람객들은 산불로 사라진 숲의 면적을 지도 위에 나타내고, 등산복 전문 잡지에서 등산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그리고 2층에서는 다큐멘터리인 <진경산수>를 관람하며 메인 보상인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는다.

인터넷산악회 <진경산수>의 사전활동
인터넷산악회, 진경산수, 2023, 단채널 비디오, 컬러,  58분

 

#  '혼자 관람'하는 미술관에서 '함께 플레이'하는 미술관으로

기획자들의 의도에 따라 전시의 관람은 게임처럼 진행된다. 마치 한 편의 포인트 앤 클릭 장르의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같다. 관람객들은 비디오게임인 <역전재판>이나 보드게임인 <클루>를 할 때처럼 여러 감각을 곤두세우고 각각의 비디오 아트에 대한 힌트를 신체적으로 탐색한다.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비디오 아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체득하게 된다. 전시가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대형 방탈출 게임'이라고 종종 오해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관람객들에게는 활동지 꾸러미가 주어진다. 구성품은 크게 네 가지. 전시실 지도, 전시 관람 안내 종이, 1회차를 진행하기 위한 책자 그리고 2층에서 비디오 작품까지 모두 관람한 후 열게 되는 봉투가 그것이다. 이 안에 들어있는 모든 콘텐츠를 마치면 관람객들은 '진 엔딩'을 보게 된다. 잠깐의 꿀팁을 주자면, 활동지의 말을 잘 듣다 보면 엔딩을 빨리 볼 수도 있다.

좌표평면처럼 구성된 전시실의 지도
전시 활동을 진행하기 위해 마련된 활동 책자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다회차 플레이'를 권한다. ​책자 속 모든 활동을 마친 관람객은 1층으로 돌아와서 활동지의 봉투를 열어 보게 된다. '메인 퀘스트'를 진행할 때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퀘스트들이 해금된다. 활동지에서 2층도 올라가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특히, 1회차를 진행한 각각 다른 트랙의 이야기들을 2회차의 활동을 통해 교차시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서, 전시장의 한켠에는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곳은 리아 리잘디 작가의 1회차 활동과 김재원 작가의 2회차 활동이 이루어진다.

리아 리잘디 작가는 인도네시아와 홍콩 등지에서 소외된 집단에 주목했다. 라디오 형식의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에서는 일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사는 이주 가사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았으며, <카사이터리트>라는 제목의 비디오는 인도네시아의 한 섬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을 담았다.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1층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하품하기'를 제안한다. 하품을 하다가 정말 잠이 오면 바로 옆에 마련된 캠핑용 침낭에서 잠을 청할 수도 있다. 또한 '가사 노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모래 체험장 정리하기'와 같은 이색적인 체험이 마련되었다.

리아 리잘디 작가의 체험 활동 공간
리아 리잘디, 카사이터리트, 단채널 비디오, 컬러, 19분 22초

김재원 작가는 두 편의 영상을 중심으로 퀴어와 HIV 확진 환자들의 삶을 돌아본다. <구속의 섬, 낙원의 섬>은 침대를 섬으로 표현하여 로맨틱한 순간의 모텔 침대와 확진 이후 고립된 병원 1인실의 침대를 교차한다. <뉘앙스>는 HIV 감염인과 감염되지 않은 그의 연인 사이에의 미묘한 감정선을 42장의 사진으로 표현한다. 

관람객은 작품을 보기 전에, 1층에서 이 작품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전 활동을 한다. 관람객들은 풍선을 불어 가지고 놀고, 갑자기 큰 소리로 울리는 전화를 찾아 받는다. 여덟 가지의 이미지를 찾기 위해 전시실 곳곳에서 숨은그림찾기를 진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활동을 마친 후, 2층에서 상영되는 작품을 보고, 풍선과 전화벨 소리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된다. 이후 전시는 2회차 활동지를 통해 전시장에 모래놀이를 위해 마련된 공간에서 사진을 찍도록 한다.

김재원, 구속의 섬, 낙원의 섬, 2020, 단채널 비디오, 5분 30초
김재원 작가의 2차 활동지

 

물론, 각종 '히든 엔딩'도 존재한다. 전시장 곳곳에는 여러 유인물이 배치되어 있다. 일부에는 기획자들이 메모의 형식을 빌어 몇 가지 길을 제시해 두었다. 그중 하나는 '전시를 애니미즘으로 바라보는 방법'. 애니미즘이란 만물에 영적인 존재가 깃들어 있다고 보는 원시 신앙이다. 관람객은 기획자들이 미리 마련한 동선에 따라 애니미즘과 관련된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테오 트리안타필리디스의 작품이 있다. 1층에는 테라리엄에 보존된 미생물 생태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인 <버그심(페로몬 스파>가 전시되었으며, 2층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집에 갇혀 사는 오크 가족을 그린 <오크 하우스>가 상영된다.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프레첼을 쪼아먹는 비둘기를 다룬 작품 또한 숨어있다.

'전시를 애니미즘으로 보는 방법' 활동 중

 

 

# 게임과 비디오 아트를 이어주는 '컷씬'의 힘

현대미술을 이해시키기 위해 게임의 요소를 도입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게임'과 '비디오 아트' 사이를 큰 장벽이 막고 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한 꺼풀 내려놓고 다시 곰곰하게 생각해 보면 엄청 다르지도 않다.

비디오 아트와 게임은 모두 영상 문법을 따른다. 특히 '컷'은 둘에게 중요한 개념이다. 그래서일까 전시장의 곳곳에서는 <전함 포템킨>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세르게이 예이젠시타인'의 이름을 종종 찾을 수 있다.

'세르게이 예이젠시타인' 감독은 영화에 몽타주 기법을 처음 도입한 영화감독이다. 그는 서로 이어지지 않는 컷과 컷을 병렬적으로 연결하여 관객들이 그 행간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는 관객들을 수동적으로 '관람'하는 존재에서 능동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평을 받으며 현재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샘 발로우는 게임 업계에서 이 기법을 매우 잘 활용하기로 정평이 난 제작자이다. FBI의 수사관이 살인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진술 영상들을 돌려본다는 내용의 게임 <허스토리>와 데스크톱의 데이터베이스에 담긴 영상을 분석하는 게임 <텔링 라이즈>가 그의 대표작이다.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그의 신작 <이모탈리티>는 플레이어에게 이 기법을 직접 체험하도록 한다. 게임은 가상의 배우인 마리사 마르셀이 찍은 세 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엠브리시오>, <민스키>, <투 오브 에브리씽>이라는 세 편의 영화를 찍지만, 모두 개봉되지 못한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후 그 촬영본이 아주 짧은 커트 단위로 공개되고, 플레이어는 그것을 편집하여 각각의 영화를 완성해야 한다.

샘 발로우, 이모탈리티,2022, 비디오 게임 소프트웨어

윤지원 작가는 작품의 설명에 '세르게이 예이젠시타인'의 이름을 직접 언급한다. 그는 이번 전시에 세 편의 단편 영화를 출품했다. <무제 (관객에 대한 상대적인 작용>과 <관객에 대한 절대적인 작용>, <무제(홈비디오>가 그것이다.

이 중 <무제 (관객에 대한 상대적인 작용)>과 <관객에 대한 절대적인 작용>은 서로 짝을 이루는 작품으로, 세르게이 예이젠시타인의 연구 논문인 '작품의 구조에 대하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동선 상 관객은 일상을 촬영한 <무제 (관객에 대한 상대적인 작용)>을 본 후 빈 화면이 계속되는 <관객에 대한 절대적인 작용>을 보게 되는데, 활동지에서는 머릿속으로 자기만의 전시장을 구체적으로 떠올린 후 관람한 작품을 재배치하도록 지시한다. 관람객들은 이를 통해 ‘몽타주’의 의미를 몸소 체험하게 된다.

윤지원, 관객에 대한 절대적인 작용, 2023,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5분
윤지원, 무제(관객에 대한 상대적인 작용), 2023,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