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box의 경쟁자는?"
아마 많은 게이머가 플레이스테이션(PS)이라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5일간 진행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액티비전 블리자드(액블) 인수 중단 가처분 심리 재판(청문회)에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의외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언급된 기기가 있다.
바로 닌텐도 스위치다. 기술 전문 외신 '더 버지'(The Verge)의 톰 워렌(Tom Warren)이 법원에서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하며 "다시 닌텐도 스위치 얘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 제발 멈춰주세요."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닌텐도 스위치는 변론 과정에 자주 등장했다. 언뜻 Xbox와 PS의 시장 점유가 핵심으로 보이는 재판에 닌텐도 스위치가 계속해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양 당사자인 MS와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법원의 판결만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5일에 걸친 법정 공방의 핵심 쟁점을 요약했다. 꾸준히 닌텐도 스위치가 언급된 이유도 함께 정리했다.
FTC는 미국 내 독과점과 불공정거래를 규제하는 경쟁당국이다. 영국 경쟁시장청(CMA)에 이어 MS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에 두 번째로 제동을 걸었다.
FTC는 8월로 예정된 자체 행정심판에 앞서 연방법원에 MS의 인수 중단 가처분을 신청했다. 거대한 사안인 만큼 22일~23일, 27~29일 총 5일에 걸쳐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됐다.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 MS는 8월 FTC 행정심판까지 인수 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 8월 FTC 행정심판에서 인수 여부를 결정짓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인수 중단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다고 해도 미국 내 인수를 허가하는 것은 결국 FTC이므로 즉시 인수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MS는 7월 영국 경쟁시장청(CMA) 항고심이 남아있기도 하다. 하지만 FTC는 연방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 행정심판을 포기하고 인수를 승인한 사례가 자주 있었다.
이번 재판이 중요한 이유는 MS의 인수에 있어 실질적인 분수령이기 때문이다. 일단 양 사의 본사가 위치한 미국 내 반독점 재판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또한, 항고심을 앞둔 CMA의 인수 반대 논리가 FTC의 논리와 유사하다는 점도 주요하다. FTC가 인수 반대 의사를 철회한다면, CMA 입장에서는 유사 논리로 반대를 고집하기에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FTC는 MS의 액블 인수가 Xbox와 플레이스테이션(이하 PS)으로 이루어진 고성능 콘솔 시장의 경쟁을 저해할 것이라 주장했다. 액블에는 다양한 프랜차이즈(주로 <콜 오브 듀티>)가 있으며, MS는 이전에도 베데스다의 모회사인 제니맥스 미디어 인수 후 <레드폴>, <스타필드>를 PS에 출시하지 않은 전력이 있다는 것을 주요 논거로 제시했다.
이 지점에서 닌텐도 스위치에 대한 논점이 생긴다. 닌텐도 스위치도 Xbox의 경쟁 상대냐는 것이다. FTC는 법정에 PS5를 직접 가져와 설치까지 해 가며 Xbox와의 유사성을 역설했다. 닌텐도 스위치는 별개의 시장에 존재하는 콘솔이라는 것이다.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한 Xbox 게이밍 부서 책임자 필 스펜서는 "PS5와 Xbox 시리즈 X는 동시에 출시됐다. 폼팩터에 있어 두 제품은 기능적으로 동등해 보인다."라고 하면서도, "닌텐도를 (Xbox의) 경쟁자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가격 정책에서도 경쟁자인 닌텐도 스위치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현재 Xbox의 보급형 모델인 시리즈 S는 닌텐도 스위치 OLED 모델보다 50달러(한국 발매 가격 기준 17,000원) 저렴하며, 플레이스테이션 5 디스크 에디션에 비하면 100달러(한국 발매 가격 기준 160,000원) 저렴하다는 것이 이유다.
<레드폴>과 <스타필드>의 PS 미출시로 대표되는 FTC의 시장 독점 우려에 대해서도 게임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 지적이라고 반박했다. 대표 타이틀로 여겨지는 <콜 오브 듀티>는 네트워크 효과가 있는 멀티플레이 게임이므로 출시 제한은 오히려 손해라는 것이다. 유사한 사례로 <마인크래프트>를 제시하기도 했다.
더욱이 MS는 앞선 4월 CMA의 독과점 우려에 대해 닌텐도, 소니, 엔비디아 등 타사의 온라인 스토어에 <콜 오브 듀티>를 위시한 게임을 공급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특히 핵심으로 여겨지는 <콜 오브 듀티>의 경우 10년 간 공급하겠다는 계약을 제안했다.
그런데 왜 하필 <콜 오브 듀티>일까?
FPS가 약세인 국내에선 그 존재감이 덜하지만, <콜 오브 듀티>는 경쟁당국이 '독점'을 걱정할 만큼 거대한 프랜차이즈다. 2022년 6월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발표에 따르면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누적 판매량은 4억 2,500만 장이다. 총 300억 달러(약 39조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닌텐도 스위치는 <콜 오브 듀티> 시리즈 없이 콘솔 시장 점유율을 35% 상승시켰기 때문이다. 더욱이 닌텐도 스위치는 강력한 IP를 다수 보유하고 있어 Xbox와 PS 양측의 타이틀 독점 여부에 대해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편이다.
MS의 액블 인수로 인한 시장 독점을 주장해야 하는 FTC 입장에서 닌텐도 스위치가 눈엣가시인 이유다. 이는 액블 CEO 바비 코틱(Bobby Kotick)이 증언석에 올라 닌텐도 스위치 버전 <콜 오브 듀티> 개발을 암시한 배경이기도 하다.
CMA가 <콜 오브 듀티> 등 게임을 타사에 유통하겠다는 MS의 '행동적(behavioral)' 해결책을 수용하지 않은 논리는 게임 패스의 클라우드 게이밍과 같은 유형의 구독 서비스에 대한 공급 의무를 누락해 모든 사업 모델을 아우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국내에선 서비스되고 있지 않지만 닌텐도 스위치는 클라우드 스트리밍을 지원한다. 2017년 <판타시 스타 온라인 2>를 시작으로, <바이오하자드 7>, <어새신 크리드: 오디세이>의 클라우드 버전이 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