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모금을 시작한 인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솔티 하운즈>가 몸살을 앓고 있다. 프로젝트 스펙 변경과 거듭된 연기에 불만을 품은 일부 후원자들이 환불을 요구하면서부터다.
투자의 성격을 띠고 있는 크라우드펀딩은 프로젝트 완수 여부와 상관 없이 후원금 회수가 어렵다. 대부분의 프로젝트 진행자가 ‘무산 가능성’을 후원 단계에서 고지하기 때문에 환불 책임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중계 플랫폼 역시 대부분 환불에 관해서는 ‘프로젝트 자체 규정’을 따르는 것으로 고지하기에 별도의 환불 의무가 없으며, 텀블벅도 이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자체 환불 규정을 마련하는 프로젝트도 존재하며, <솔티 하운즈> 역시 그러한 사례 중 하나다. 개발사 토핑 팔레트는 실제로 일부 신청자를 대상으로 환불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이중 환불을 못 받은 후원자가 남은 것은 물론, 이미 환불이 완료된 후원자들까지 공분하는 상황이다. 무슨 일일까?
※ 들어가기에 앞서, 핵심 쟁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통상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는 프로젝트 무산에 따른 환불 규정 미비.
2. 그러나 <솔티드 하운즈>의 개발사 토핑 팔레트는 다음의 '자체 환불 규정'을 마련한 채 모금 진행.
"예상 전달일로부터 90일 이상 선물(리워드) 전달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환불을 원하는 후원자에게 수수료를 제한 후원금을 환불."
3. 핵심 리워드인 게임 본편(PC판)은 '예상 전달일'(2022년 10월)로부터 약 반년 후인 2023년 6월 전달. 메이킹 영상 등 기타 리워드 약 6종은 현재 누락 상태.
4. 리워드 전달 미흡, 개발 스펙(일러스트) 변경 등에 불만 느낀 일부 후원자, 2번 근거로 환불 요구.
5. 개발사는 일부 리워드(CBT 클라이언트, 오디오 파일) 전달을 근거로 환불 책임 무효 주장. 대신 일정 지연, 개발 스펙 변경 사과 의미로 신청자에 한해 환불 진행.
6. 그러나 신청자 중 일부만 환불 이뤄진 것으로 밝혀지며 논란 발생.
7. 개발사는 환불 금액 일부 즉시 감당 어려워(해당 사실 사전 공지) 무작위로 진행했다고 발표.
<솔티 하운즈> 후원자 일각의 환불 요구는 약 4개월 전부터 본격화되었다. 일러스트레이터 변경, 지속되는 출시 연기, 그리고 소통 부재로 인한 불만이 누적된 결과다.
<솔티 하운즈>는 경호업체의 임시대표를 맡게 된 주인공이 회사를 운영하며 직원들과 관계를 쌓아나가는 내용의 여성향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그런 만큼 캐릭터 삽화는 구매 여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핵심 콘텐츠 중 하나다. 따라서 후원 단계에서의 일러스트레이터 변경은 치명적인 변화로 여겨진다.
그런데 <솔티 하운즈>의 경우 두 차례에 걸쳐 일러스트레이터 변경이 이뤄졌다. 지난 2022년 5월, 2차 모금 완료 한 달 뒤에 제작진은 출시 연기와 함께 일러스트레이터 변경을 공지했다. 이때부터 환불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이미 형성되었다고 TIG가 접촉한 환불 요구 후원자들은 전했다.
이후로 게임 출시는 여러 차례 미뤄졌다. 2022년 5월 최초 연기에 이어 2022년 8월, 2022년 11월, 2023년 1월까지 네 차례 출시 연기가 통보됐다.
누적되던 불만이 임계를 넘긴 것은 올해 2월 28일, 출시 일정이 다섯 번째로 연기됨과 동시에 또 한 번의 일러스트레이터 교체가 공지되면서다. 또한 원래 ‘완제품’ 형태로 출시 예정이었던 게임이 콘텐츠를 여러 단계로 나눠 제공하는 ‘시즌제’로 변경되기도 했다.
이에 환불을 요구하는 후원자들의 여론이 이전보다 거세진 것으로 전한다. 결국 토핑 팔레트 측은 해당 공지로부터 1개월가량이 지난 3월, 환불 신청을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신청 접수 방식에서도 잡음이 일었다. 3월 6일경 텀블벅 페이지에 환불 진행 공지를 올린 뒤, 11일 자정까지만 환불 양식을 접수받으면서 사실상 시간제한을 두었기 때문. 이에 대해 제작진은 환불 절차에 드는 시간과 노동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한다.
또한 토핑 팔레트는 환불이 빠르게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시사했다. 환불 총액이 ‘감당 가능 수준’을 넘긴다면 정식 버전 판매 수익을 통해 환불 절차를 마저 진행하겠다고 밝힌 것. 제작진이 밝힌 사유는 재정적 한계다. 후원 금액이 모두 제작비로 투입된 상황이기에 ‘환불 요구는 폐업 요구와 다름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환불 요구 후원자들은 이것이 과도한 주장이라는 반응이다. 처음 목표 모금액은 1,000만 원이었고, 국내에서만 그 17배에 달하는 1억 7,000만 원 이상의 금액이 모였기 때문. 더 나아가 험블번들, 킥스타터 등에서 해외 펀딩도 추가로 진행했다. 따라서 개발 스펙이 비약적으로 확대된 것이 아니라면 후원 금액 상당 부분을 환불하더라도 여전히 제작 일정은 맞출 수 있어야 한다는 중론이다.
토핑 팔레트가 프로젝트 공약을 여러 차례 어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크라우드펀딩 업계에서 프로젝트 연기나 무산은 빈번히 벌어지는 일이며, 특성상 법적, 도의적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솔티 하운즈>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후원자들은 이러한 문화에 익숙지 않은 것일까?
TIG가 접촉한 환불 요구 후원자 중, 기존에 다양한 프로젝트 후원을 진행해 봤다는 ‘유경험자’들로부터 의견을 구했다. 이들은 기존 경험에 비춰봤을 때 토핑 팔레트의 태도와 대처는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먼저 태도 측면이다. 토핑 팔레트 역시 1차 일러스트레이터 교체 시점 등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소통 노력을 기울였다. 교체의 이유를 상세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사과의 뜻을 먼저 표했고, 교체된 일러스트가 최대한 원래 화풍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후원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하는 모습도 보였다. 새벽에도 텀블벅 플랫폼에 접속, 후원자 질문에 적극 답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개발기간에는 불통의 자세를 보였다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다. 특히 민감한 사안인 프로젝트 일정 변경에 관한 소통 방식이 다른 프로젝트 크리에이터들과 달랐다고 후원자들은 주장했다.
한 후원자는 “다른 프로젝트 창작자는 일정이 변경되면 사과하고, 그 원인과 경과, 사후 대처 방향 등을 상세히 알린다”고 전했다. 더 나아가 중요한 변경 사항이 있을 경우 사전에 의견을 수렴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나, 토핑 팔레트는 중대사안을 이미 결정한 뒤 사후 통보하는 식이었다는 것이 주된 불만이다.
미진한 리워드 전달도 불만 대상이 됐다. 토핑 팔레트는 최고 금액 후원자 기준으로 게임 본편, 오디오북, 성우 메이킹 영상 등 약 8가지의 콘텐츠 리워드를 약속했다. 이중 실제로 전달된 것은 ‘후원자 한정 스페셜 모닝콜’과 <솔티 하운즈> 본편 등 두 가지, 그리고 펀딩 1,000% 초과 달성 기념으로 추가 약속됐던 월페이퍼 등이다.
핵심 콘텐츠인 PC판 본편은 지난 6월 28일 출시했다. 다만 완성도 측면에서 비판을 사고 있다. 잦은 튕김 현상이 발생하고, 언어 설정이 영어로 자동 전환되는 등의 기초적 버그들이 문제시됐다. 핫픽스를 통해 수정이 이뤄졌지만 아직 많은 버그가 남아있다.
이러한 본편 버그 상당수가 CBT 단계에서 이미 보고되었던 항목들이라는 주장도 뒤따른다. 토핑 팔레트는 약 10분 분량을 플레이할 수 있는 두 차례 CBT를 진행했으며, 두 번째 테스트에서 특히 버그 리포트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출시 연기의 이유 중 하나였으나, 많은 부분 고쳐지지 않았다고 참여자들은 전했다.
또한 <솔티 하운즈>의 콘텐츠 상당수는 현재 ‘향후 업데이트 예정’이다. 실제로 플레이해 보면 인게임의 여러 장소에서 NPC와 대화 시 ‘향후 업데이트를 기대해달라’는 메시지가 출력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면 으레 기대할 법한 등장인물과의 ‘데이트’ 콘텐츠 역시 누락된 상태다
그러나 앞서 언급되었듯, 토핑 팔레트가 환불 요구에 완전히 침묵하지는 않았다. 3월에 들어 후원자들에게 공식으로 환불 신청을 받았고, 또 일부 후원자들에게는 실제로 환불이 이뤄졌다.
하지만 토핑 팔레트가 ‘약속 불이행’을 시인한 것 역시 아니다. 토핑 팔레트는 후원자들에게 ‘게임 완성’이 아닌 ‘선물 전달’을 기준으로 자체 규정을 정했기에 환불 의무가 없다고 공지했다. 즉 게임 본편은 출시 연기되었으나, CBT 버전, 그리고 ‘모닝콜’ 오디오 파일 등 일부 선물이 기간 내에 전달되었으므로 자체 규정을 어기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환불을 진행한 이유에 대해서는 ‘일러스트 2차 교체’와 ‘지속된 게임 출시 지연’에 사과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명확한 기준 없이 무작위로 환불 대상이 결정되면서 다시금 잡음이 일었다. 환불 신청 시점이나 신청자의 후원 금액 등과는 관계 없이 특정 후원자에게는 환불이 이뤄지고, 다른 후원자에게는 그러지 않았던 상황이 포착된 것. 이에 의아함을 느낀 후원자들이 문의하자 개발진은 “공정성을 위해 무작위로 환불을 진행했다”고 공지한 것으로 전한다.
한편 후원자 일각에서는 중계자인 텀블벅에게도 관리 책임을 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텀블벅은 토핑 팔레트의 환불 절차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텀블벅 규정이 아닌 창작자 자체 규정에 따른 절차인 만큼 개입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텀블벅은 “크리에이터(토핑 팔레트)가 환불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원활한 환불이 이뤄질 수 있도록 크리에이터에게 계속 연락을 취하며 중계자 입장에서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