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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게임, VFX, VR 등에 대한 최신 그래픽 기술과 이론의 시작점 '시그래프'

역사와 전통, 최신 기술에 대한 최고 권위를 가진 그래픽 컨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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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준(음주도치) 2023-07-06 17:13:58

"게임은 일단 그래픽이 좋고 봐야지!"라고 생각하는 게이머가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게임 그래픽'이라는 말에는 심미적인 디자인, 어떤 엔진이 사용됐는지, 환경 구현이나 스킬 이펙트 등 시각 효과는 어떻게 표현됐는지, 움직임에는 어떤 디테일이 있는지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최신의 기술과 이론이 모두 한 곳에 모이는 세계 최대의 글로벌 그래픽 컨퍼런스가 있으니, 바로 '시그래프'(Siggraph)다.

북미에서 진행되는 시그래프는 학술 발표와 산업 무역 박람회를 모두 포함하는 대형 컨퍼런스로 올해로 벌써 50주년을 맞은 역사 깊은 행사다. 시그래프 2023에는 캠브리지, 스탠포드, MIT 등 유수의 대학에서 논문을 기고하고, 엔비디아, 어도비, 유니티,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소니 픽처스, 에픽게임즈, 블리자드, 라이엇 게임즈, 텐센트, 구글, 오픈AI, 메타와 같은 기업의 인물들이 강연, 토론, 논문 저자 등으로 참여한다. 

시그래프는 어떤 내용을 다루는 행사이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50년의 역사를 간략히 짚어본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시그래프 2023 홈페이지. 엔비디아 설립자 겸 CEO 젠슨 황도 키노트 연사로 참여할 예정이다.

  

# 시그래프는 어떤 컨퍼런스인가?

  

시그래프를 설명하려면 먼저 ACM이라는 비영리 단체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ACM(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은 컴퓨터 과학 분야의 학술과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학회들의 연합체로, 1947년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초로 설립된 단체다. 세계 최대 규모의 ACM에서는 구체적인 연구 분야마다 분과회를 구성하고 있는데, 37개 이상의 분과 중에 컴퓨터 그래픽을 다루는 학회 'ACM 시그래프'가 있다. 이곳에서 주최하는 동명의 연례 컴퓨터 그래픽 컨퍼런스가 시그래프다.

 

정확한 수치는 매년 변동이 있지만, 시그래프의 평균 논문 합격률은 20% 내외로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편집위원 및 심사위원의 평가를 거쳐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만 합격되고 있다. 시그래프는 1974년 개최된 첫 번째 컨퍼런스 이후로 50년의 세월 동안 컴퓨터 그래픽 및 인터랙티브 기술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컨퍼런스는 논문 발표, 강연, 세미나, 기업 부스 및 기기 전시, 영화, 비디오 쇼(VR 시어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2008년부터는 본행사와는 별개로 '시그래프 아시아'를 매년 개최하면서 아시아 지역에서의 영향력 또한 커졌다. 시그래프 아시아는 한국과의 인연도 깊은데, 2010년 행사는 서울에서, 2020년에는 한국이 개최지로 선정되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됐고, 2022년에는 대구에서 행사가 열렸다. 


1947년: ACM 설립

1969년: 컴퓨터 그래픽스 분과인 ACM 시그래프 학회 설립

1974년: 시그래프 첫 번째 컨퍼런스 개최

1982년: 시그래프에서 일렉트로닉 시어터 첫 시작.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 시각 효과 영상 등을 활용해 새로운 기술과 예술적 표현을 선보이는 자리

1989년: 픽사 3D 렌더링 소프트웨어 '렌더맨'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Knickknack> 시그래프에서 초연, 이후 렌더맨은 <토이스토리>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에서 사용됨.

1997년: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시그래프 행사에 48,000명 이상이 모여 최대 흥행을 기록

2008년: 시그래프 아시아 첫 개최

2017년: 시그래프 내 VR 빌리지에서 VR 시어터 첫 시작. VR 기술은 시그래프에서 오래 전부터 다뤄졌으나 별도의 콘텐츠 공유의 장을 생성

2023년: 50번째 시그래프 컨퍼런스 

 

시그래프 아시아 2022 행사는 대구에서 개최됐다. 
과학, 예술, 애니메이션, 게임, 상호작용, CGI, VFX, 애니메이션 분야의 전문가들이 6,000명 이상 참여했다.

현장에서는 VR 영화, 게임을 비롯한 체험형 콘텐츠도 다수 소개된다. (사진 출처: 시그래프 아시아 홈페이지)

  

CG 업계의 거장 중 한 명인 폴 데베벡(Paul Debevec)의 사례가 시그래프 컨퍼런스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폴 데베벡이 시그래프 1996에 출품한 박사 논문은 이미지 기반 모델링 및 렌더링 시스템 'Facade'를 다뤘다. 해당 기술을 적용한 그의 단편 영화 ​<The Campanile Movie>는 시그래프 1997 일렉트로닉 시어터에서 상영됐고, 모형 탑과 실제의 탑, 그래픽과 현실 사이를 움직이는 카메라 앵글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한 장면을 연출했다. 

시그래프 현장에서 이 영상에 매료된 VFX 감독 존 가에타(John Gaeta)는 영화 <매트릭스>의 상징적인 장면인 네오가 총알을 피하며 뒤로 눕는 씬에 폴 데베벡의 아이디어를 적용했다. 폴 데베벡의 기술은 <매트릭스> 시리즈, <스파이더맨 2>, <아바타> 등의 영화에 적용되어 할리우드 시각 효과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 시그래프에서 소개되고 적용되어 그래픽의 발전을 보여준 기술들

  

VR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가 현실에서도 걷기 위해선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런닝머신처럼 움직이는 바닥을 만드는 방법도 있겠지만,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공간의 제약을 없앤 실험적 기술이 있었다. 동경대와 유니티 테크놀로지가 시그래프 2016에서 선보인 '무한한 복도'는 곡면의 벽을 짚고 걷는 플레이어가 직선의 복도를 걷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독특한 트릭을 선보였다.

영상에서는 사각형의 테두리 밖으로 나가면 경고음이 울리던 기존의 방식에서 나아가, 곡면을 포함한 반원의 복도를 만드는 것으로 시각적 체험뿐만 아니라, 복도의 벽을 짚고 걷는 감각까지 플레이어에게 제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위대한 발명은 사소하고 황당해 보이는 아이디어와 도전에서 시작하는 법이다.

VR 게임, VR 영화 등 시그래프는 VR, AR, MR과 같은 다양한 상호작용 기술을 오랫동안 다뤄왔다. 같은 시그래프 2016에서는 구글이 처음으로 만든 VR 영화 <펄>이 큰 주목을 받았다. 아래 첨부하는 유튜브 영상에서도 화면을 돌려가며 볼 수 있으니 한번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2023년 현재, 게임과 미술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단연 생성형 인공지능이다. 챗GPT-4는 자연어에 대답하는 것을 넘어 이미지까지 인식하고 있고, 일부 AI 그림들은 취약점인 손가락 표현이나 사물과 공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따져보지 않으면 실제 작가가 그린 그림과 구별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올라왔다. 


시그래프 2020에서 소개된 '스케치 투 아트'는 손으로 그린 스케치에서 시맨틱 라벨링(Semantic Labeling) 없이 곧바로 양식화된 화풍의 그림을 합성하고 생성해내는 인공지능 툴이다. 간단한 스케치를 그린 후 참고할 작품이나 아티스트, 화풍 등을 고르면 비슷한 양식의 그림을 만들어주는 시연을 보여줬다.

이보다 앞서 2015년 출시됐던 '딥 드림'처럼 이미지의 패턴을 찾아 변형, 왜곡시키는 알고리즘도 시그래프에서 여러 차례 다뤄지는 등 시그래프에서는 신기술이 적용되는 과정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엿볼 수 있다. 

 

시그래프 2020에서 소개된 '스케치 투 아트'


게릴라 게임즈의 자체 엔진 '데시마 엔진'은 게릴라 게임즈의 <호라이즌 제로 던> 외에도 코지마 프로덕션의 <데스 스트랜딩>에도 활용됐던 엔진이다. 시그래프 2022에서는 가장 최신 작품인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에 적용된 데시마 엔진의 여러 기술과 이에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힌 쇼케이스가 진행됐다. 

 

인물에 닿으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식물들이 가진 기술적인 뼈를 보여주기도 하고, 걸음에 맞춰 모래, 눈이 뭉개지는 모습들도 설명했다. 

 

특히 게릴라 게임즈의 선임 수석 프로그래머 휴 말란은 해안에서의 물 그래픽 표현에 대해 "파도가 부서지는 것이 가장 어려운 표현이었는데, 거품의 입자들은 셰이더로 만든 조각들로 구현했다. 수면 아래의 물방울들도 동일한 기술이 적용됐다."는 등의 디테일을 설명했다. 이어 날씨 설정을 바꾼 후에는 비바람이 치는 바다를 보여주며 이렇게 언급했다. 

 

"모든 사물들이 젖은 정도에 따라 표현이 바뀐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 파도의 움직임도 바뀌고, 금속, 나무, 피부 등 재질이 다른 개체들의 반짝임이나 어두운 표현이 변한다. 에일로이의 얼굴에 흐르는 빗방울들이 보이시는가? 더운 기후의 환경에서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볼 수도 있다."

 

시그래프 2022에서 진행된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에 적용된 데시마 엔진의 기술을 소개한 쇼케이스

# 시그래프 2023에서는 어떤 것들이 소개되나?


지난 1년 사이 극장에 걸린 작품 중에는 최신 그래픽 기술들이 적용된 영화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시그래프 2023에서 깊게 다뤄지는 작품들은 <아바타: 물의 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엘리멘탈> 등이 있다. 

 

영화에 적용된 다양한 시각 효과의 디테일뿐만 아니라 이를 구현하기 위해 극복한 기술적 과제, 얻어낸 서사적 이점 등을 소개한다. 특히 픽사의 <엘리멘탈> 세션에는 피터 손 감독이 발표자 중 한 명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게임 IP로 영상화에 성공한 작품들도 빼놓을 수 없다. 

 

HBO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아케인: 리그 오브 레전드> 등이 별도의 세션에서 다뤄진다. 게임 그래픽과 관련해서도 모션, 모델링, 렌더링 최신 기술에 대한 논문 및 소개가 진행된다. 특히 현실의 사물, 생물이 보여주는 특성과 그래픽으로 구현된 개체가 보여주는 특징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여러 아이디어나, 이를 구현하기 위한 툴에 대한 심층적인 접근 등 다양한 주제가 다뤄진다. 

 

대한민국 기업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 게임 및 메타버스 등에서 활용되는 가상 의상의 디자인과 적용 서비스 분야에서 유명한 버추얼 패션 업체 CLO, 선(Line) 입력 방식으로 펜 하나로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쉽게 3D 그래픽으로 그려낼 수 있는 '페더(Feather)'를 개발한 스케치소프트 외에도 메타빌드, 지이모션, 리콘랩스 등의 국내 기업을 부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시각 효과가 돋보였던 작품들의 제작진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될 시그래프 2023 현장에 온다.

  

영상화된 게임 외에도 게임 그래픽에 대한 주제도 다양한 세션에서 다뤄진다.

  

스케치소프트를 비롯한 국내 기업들도 시그래프 2023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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