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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해외로 먼저 나간 국산 게임들의 ‘속사정’

국내 퍼블리셔 잡기 힘들고, 개발비 필요해 해외로

현남일(깨쓰통) 2010-08-12 12:46:41

A개발사의 B대표는 요즘 개발 중인 MMORPG의 국내 서비스를 일단 포기하고 해외에 먼저 나가기로 결심했다.

 

물론 국내에서도 서비스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요즘 퍼블리셔들은 웬만한 대작이 아니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설사 관심을 보여도 다양한 이유를 들면서 계약을 할지 말지 결정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경우가 많다.

 

자체 서비스는 사실상 힘들고, 매달 개발비가 들어가는 상황에서 기약 없는 퍼블리셔들의 확답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해외에서 먼저 서비스를 시작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만약 운이 좋아서 해외에서 성공한다면 굳이 국내에 들어올 필요도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 해외로 나간 신작들, 아예 해외로 넘어가기도

 

다소 극단적인 사례를 먼저 들기는 했지만, 실제로 최근 온라인 게임업계에서는 엄연한 국산 게임’이 해외에서 먼저 서비스를 시작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인포바인이 개발한 격투액션 게임 < 4구역>은 지난해 태국에서 오픈 베타(OBT)와 상용화를 시작했다. 조만간 북미와 유럽에서도 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이 게임의 국내 서비스 일정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제 4구역>의 국내 퍼블리셔인 넥슨은 개발사와 일정을 협의하고 있으며, 조만간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만을 밝히고 있다.

 

온네트의 자회사 BOB스튜디오가 만든 탱크슈팅 게임 <탱크 에이스>도 올해 말, 국내가 아닌 북미와 독일, 또는 일본에서 먼저 서비스를 시작한다. 개발사는 해외에서 안정화를 다잡고 국내 서비스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지난 2008 8월 이후 국내 서비스나 테스트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는 <4구역>. 현재 태국에서는 정식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게임시장에는 국내 퍼블리셔를 잡지 못하고 해외에 먼저 진출하는 신작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중에는 퍼블리셔를 잡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개발을 포기하고, 게임의 권리를 해외에 넘기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이런 현상은 자금 동원 능력이 떨어지고, 자체 서비스 여력이 없는 중소 개발사들을 중심으로 심해지고 있다.

 

최근 차이나조이 2010에서 <무형무수>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중국의 댄스 게임은 원래 <클럽 러브홀릭>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되던 국산 게임이었다.

 

 

■ 국내 퍼블리셔가 신작을 꺼린다?

 

신작의 국내 서비스가 힘들어진 것은 현재의 시장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성공보다 실패하는 신작이 많아졌고, 수십억 원의 개발비와 홍보비가 투입된 소위 대작급 신작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당장 퍼블리셔부터 웬만큼 검증된 신작이 아니면 계약하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도전적인 요소가 많거나, 성공사례가 드문 장르의 게임은 정말 퍼블리셔를 잡기 힘들다는 것이 개발사들의 하소연이다.

 

새로운 MMORPG를 만들고 있는 한 개발사의 관계자는 요즘 국내 퍼블리셔를 만나보면 적극적이지 않고 방어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웬만큼 눈에 띄는 신작이 아니면 계약하기를 꺼려하며, 최근의 트렌드에 맞지 않은 장르나 요소를 가진 게임이라면 아예 무시하는 경향까지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 관계자는 그렇다고 해서 경험이 없는 중소 개발사들이 직접 게임을 서비스하기란 쉽지 않다. 시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소 개발사들이 신작을 국내에서 서비스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장 <블레이드앤소울> <테라> <아키에이지> 같은 대작과 경쟁해야 하는 것도 중소 개발사와 퍼블리셔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 해외로 먼저 진출? 철저한 준비가 필요

 

중소 개발사의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빨리 신작의 퍼블리싱 계약을 맺는 것이 좋다. 퍼블리셔의 지원이 없다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개발비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수록 국내에서 퍼블리싱 계약을 맺기는 힘들어지는 상황. 여기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쪽이 바로 해외 시장이다.

 

동남아시아, 북미, 유럽에서는 아직까지 한국 온라인 게임에 대한 수요와 관심이 높다. 가능성을 보고 국산 게임을 확보하려는 해외 퍼블리셔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에 따라 국내 개발사들은 해외로 먼저 나가서 자금 문제를 해결하고, 개발 과정에서 필요한 테스트와 서비스도 진행해 보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엔플루토의 MMORTS <소울마스터>는 12일(현지시간) 북미에서 오픈 베타를 시작한다.

 

캐주얼 게임을 만드는 한 개발사의 관계자는 국내 온라인 게임시장은 성장이 둔해졌고 포화상태라는 말도 자주 나온다. 하지만 해외 시장은 아직도 규모가 커지고 있어 한국 게임을 찾는 수요가 있다. 최근 국내에서는 외면 받는 캐주얼 장르의 신작도 해외에서는 환영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 관계자는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해외에 먼저 진출한다고 해도 손해 볼 것이 없다. 오히려 신작의 밸런스와 콘텐츠의 재미, 상업성 등을 사전에 검증 받을 수 있어 좋다. 상황에 따라서는 선점효과를 통한 대박을 노려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선점효과로 ‘국민 게임’이 된 <포인트 블랭크>. 이렇듯 해외 시장은 상황에 따라 대박을 노려볼 수도 있다.

 

다만, 해외 시장이라고 해서 무조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견도 있다.

 

북미·유럽을 대상으로 글로벌 서비스 플랫폼(GSP)을 운영하는 한 개발사의 관계자는 3~4년 전만 해도 부분유료화(Free 2(to) Play)라는 모델 자체가 신선해서 기본을 갖춘 게임이면 어느 정도 통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제법 많은 게임들이 진출해 있고, 해외 유저도 이 방식에 많이 익숙해졌기 때문에 쉽지 않은 도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개발사의 관계자는 해외 시장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인프라가 아직 열악하다. 그리고 현지 사정을 잘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게임이라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무조건 해외가 답이다라는 생각은 위험하고, 국내 서비스 못지않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BOB스튜디오가 만들고 해외에서 먼저 서비스를 시작하는 <탱크 에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