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유저라면 한번쯤 들어 보고 플레이해 봤을 <플랜트 VS. 좀비>의 팝캡(POPCAP)이 KGC 2010에서 ‘팝캡의 초대박 히트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습니다. <플랜트 VS. 좀비>가 얼마나 대박을 터뜨렸길래 초대박 히트라고 부르냐고요?
이 간단한(?) 게임은 지금까지 150만 개가 넘게 팔리고, 앱스토어에서 첫 주 만에 매출 100만 달러를 넘기고, 중국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1위, 아이패드 애플리케이션 TOP 10에 드는 등 재미와 중독성을 입증했습니다. <플랜트 VS. 좀비>를 만든 팝캡의 개발 마인드를 아시아·태평양 지역 부사장 제임스 그워츠만에게 들어 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아둥, 알트
강연을 시작하는 제임스 그워츠만 부사장.
■ 다른 게임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고, 발전시켜라
중국에서 <플랜트 VS. 좀비>는 게임을 패러디한 TV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개발자들조차 이토록 성공할지 몰랐던 이 모바일 게임은 놀랍게도 4명(게임 디자이너, 음악 담당, 프로그래머, 아트 담당)이 만들기 시작했다.
게임 디자이너와 음악 담당자는 무려 연인 관계!
메인 개발자인 조지 팬(George Fan)은 여러 게임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워크래프트 3>의 타워 디펜스 게임은 그가 블리자드에서 근무하던 시절 즐겨하던 게임이었는데, 타워의 성장을 보고 식물의 성장을 떠올렸다고 한다.
또한 일정한 속도로 접근해 오는 상대로부터 맥주를 지켜내는 한 고전 아케이드 게임에서 좀비와 플랜트의 대립 구도를 따왔고, 무인도에 남겨진 가족들과 섬을 약탈하려는 해적 간의 대결을 그린 디즈니 영화 <스위스 패밀리 로빈슨>(Swiss Family Robinson)에서는 여러 가지 함정을 설치하는 장면을 인용했다.
당시 팝캡에서 개발하고 있던 한 수족관 게임의 다양한 물고기 수집을 보고 개성 있는 플랜트들의 수집과 조합을 떠올렸다고 한다.
<워크래프트 3> 타워 디펜스에서 성장을, <스위스 패밀리 로빈슨>에서 함정을, 그리고 아케이드 게임에서 플레이 스타일을 따왔다.
■ 빨리 즐기고, 자주 즐겨라
이런 영감과 아이디어를 갖고 만든 첫 프로토타입은 식물의 씨앗을 심고 키워 다가오는 외계인(좀비가 아니다!) 몬스터를 물리치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몬스터를 물리칠 식물을 시간을 들여 키워야 한다는 것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고 판단해 심자마자 바로 싸울 수 있도록 변경했다.
<플랜트 VS. 좀비>의 프로토타입.
■ 재미는 더하고 짜증나는 건 없애라
<플랜트 VS. 좀비>의 플랜트 조합 시스템은 <매직 더 개더링>이라는 유명 TCG(트레이딩 카드 게임)를 여자친구에게 가르치는 도중 카드 덱 시스템을 게임에 추가하면 어떨까 해서 생겨났다고 한다. 아울러 제임스 그워츠만 부사장은 이미 존재하는 게임의 코드나 아트웍을 활용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플랜트 VS. 좀비>의 주요 게임 시스템은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처음에는 좀비가 아닌 벌레들이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비슷한 시기에 농장과 관련된 게임들이 나오더니 급기야 농장 타워 디펜스인 <가든 디펜스>가 나왔고, 이에 팝캡 개발진은 <플랜트 VS. 좀비>의 몬스터를 벌레에서 더 재미있고 괴팍한 좀비로 바꿨다.
<가든 디펜스>는 기존의 타워 디펜스 게임을 단순히 농장으로 옮겨 놓았다.
■ 게임 이름을 너무 고민하지 마라
<플랜트 VS. 좀비>는 아주 단순하고 직관적인 이름이다. 또한 프로토타입을 개발할 때 쓰였던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솔직히 뭔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내부적으로도 여러 이름을 고민해 봤다고 한다.
수백 개의 후보들 중 쓰였던 것만 말하자면, <Dawn of the Dead(새벽의 저주)>를 패러디한 <Lawn of the Dead(잔디밭의 저주)>(법적 문제로 사용할 수 없었다), <Zom-Botany>, <Bloom&Doom>, <Zombies Ate My Beans!> 등 재미있고 다양한 이름들을 고민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알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이고, 가장 간단한 이름으로 되돌아왔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게임 이름들. 이 장면이 나오자 놀라움이 섞인 웃음이 나왔다.
■ 빨리 그리고 자주 시험해 보고 의견을 구하라!
게임을 완성한 다음 플레이하면서 의견을 구하면 너무 늦다. 그래서 처음부터 여러 사람에게 플레이하게 해 최대한 많은 의견을 얻었다. 한 개발자의 부인이 어떤 점이 어렵고, 개선했으면 하는지 의견을 줘 큰 도움이 됐다는 사례도 있었다.
처음에 어떤 플랜트부터 심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있자, 초기 소지금액 100원에 첫 2종류 플랜트 모두 100원씩이었던 것을 소지금액 50원에 해바라기(돈을 정기적으로 생산하는 플랜트) 가격을 50원으로 낮춰 자연스럽게 해바라기부터 심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0.92버전에서 100원이었던 해바라기가 0.94버전에서 50원으로 줄었다.
또한 체리폭탄(광역폭탄), 포테이토 등 고급 플랜트를 플레이하면서 하나씩 배울 수 있도록 해 플레이어가 처음부터 실수나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조정했다.
‘좋은 게임은 튜토리얼 없이도 유저가 쉽게 게임을 익힐 수 있어야 한다’는 <플랜트 VS. 좀비>의 게임 디자인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변화하는 아트 디자인.
■ 게임을 유저에게 맞춘다
팝캡은 유저들의 데이터를 모아 게임의 난이도를 조정한다. 레벨마다 소모 시간, 실패 횟수, 그리고 가장 많이 사용되는 플랜트 등의 데이터를 토대로 가장 알맞은 난이도를 만들었다.
레벨별 성공과 실패 확률 그래프.
■ 무엇보다 즐겁게 일하라!
미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4월 1일이 만우절(Fool’s day)이다. 팝캡의 개발자가 2008년 만우절에 만든 새로운 게임 버전을 공개했는데, 순간 강연장은 웃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좀비 봅슬레이 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게임에 얼음지역을 추가해 새로운 전략과 레벨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게임을 시작하면 좀비들은 모두 얼어붙어 있고, 플랜트들은 땅이 얼어 심을 수가 없었다.
플랜트도 좀비도 모두 울었다.
■ 다른 플랫폼 이식은 조심스럽게~
<플랜트 VS. 좀비>는 PC, 아이폰, 아이패드, 그리고 곧 나올 Xbox360으로 플레이가 가능하다. 일반 유저가 생각하기에는 같은 게임을 조금만 수정해서 내놓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겠지만, 팝캡은 아이폰 버전을 만드는 데 6개월이 걸렸고 Xbox360 버전은 1년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
한 번에 2개 이상의 플랜트를 심을 수도 있는 아이패드 버전.
단순히 각 플랫폼에 맞게 소스를 고치는 데 그치지 않고, 최적의 인터페이스(UI), 해상도와 플랫폼만의 재미와 조작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특히 9월에 공개될 Xbox360 버전은 2인용 플레이도 지원한다.
대결 모드가 기대되는 Xbox360 버전.
마지막으로 강연이 끝나고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게임 개발사와 비교해 팝캡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에 제임스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주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답변이지 않은가?
질문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가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팝캡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관중 수. 필자도 앉지 못하고 서서 취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