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도중, 의사소통 혼란으로 낭비와 비효율이 생기게 된다. 이런 부분을 파악하고 해결해야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
엔씨소프트에서 프로젝트 LUE를 진행 중인 최우성(오른쪽 사진) 프로듀서는 1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KGC 2010에서 ‘구별하여 사용하면 좋은 프로젝트 관련 용어’라는 주제로 강연하면서 위와 같이 말했다.
프로젝트 진행 도중, 비슷한 단어를 뒤섞이면서 발생하는 오류로 의사소통과 업무에 혼란을 주는 경우가 있다. 단어의 개념을 보다 확실히 정립해 이런 오류를 줄이자는 게 이 강연 주제다.
■ 퀄리티는 필요요소, 그레이드는 선택요소
퀄리티는 게임업계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다. 이와 관련해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가 바로 그레이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용어의 차이를 몰라, 퀄리티를 올린다고 말하면서 그레이드를 올리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퀄리티란 제품이 목적에 맞게 제작됐는지, 필요한 부분들이 얼마나 충족되는 지를 말한다. 즉 제품으로서 얼마나 기능을 충실하게 구현한 지를 말한다.
그레이드는 제품의 기능 수와 종류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다. 제품이 아닌 서비스의 경우, 무엇이 다른가를 말한다. 퀄리티와 가장 큰 차이점은 그레이드의 등급에 따라 가격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아이온>과 <카트라이더>를 예로 든다면 <아이온>이 <카트라이더>보다 그레이드가 높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퀄리티도 더 높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른 예로 메모장과 MS워드 97을 들 수 있다.
메모장은 단순하고 그레이드는 낮을 지 몰라도 빠르고 안정적이다는 점에서 사용자의 목적을 충족시켜 주므로 퀄리티가 높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MS워드 97은 메모장에 비해 기능이 많고 그레이드는 높을 지 모르지만 느리고 언제 오류가 날 지 모르고 문서가 깨지는 등 제품으로서 목적을 충족시켜주지 못한 부분이 있어 퀄리티가 낮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그레이드는 다른 제품과 비교했을 때 의미가 주어진다. 그리고 퀄리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카트라이더>가 <아이온>과 비교 했을 때는 그레이드가 낮았지만 <비쥬얼드>와 비교했을 경우엔 그레이드가 높은 것이다. 반면 퀄리티는 세 게임 모두 높다.
그레이드와 퀄리티는 항상 일치하는 게 아니다. 그레이드는 선택의 문제다. 자신에게 필요 없거나 선택할 수 없는 그레이드는 가치가 없는 것이다.
즉 그레이드의 장점을 어필한다 해도 그것은 기능일 뿐이므로 그 기능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아무런 어필 포인트가 되지 못한다. 또한 게임을 만들 때에도 현실에 맞춰 개발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회사가 100억 원의 개발비가 없다면 100억 원이 필요한 그레이드의 게임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기능을 자랑해도 사람들이 원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반면 낮은 퀄리티는 큰 문제가 된다. 그레이드에 상관없이 퀄리티가 따라주지 못한다면 아예 판매가 불가능해지므로 퀄리티는 항상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레이드와 퀄리티가 항상 같은 것은 아니지만 관계는 분명히 있다. 그레이드의 등급에 따라 부분별 최대 퀄리티의 제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카트라이더>를 제작 중인 개발자가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 <그란투리스모>처럼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캐주얼 게임으로 그레이드를 낮게 만들었던 게임이 그래픽의 퀄리티가 높아지면서 초기 원했던 게임과 전혀 달라진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퀄리티가 아닌 그레이드를 높이는 작업이 진행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레이드가 높아지는 것을 방관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레이드나 퀄리티를 증가시키기 위해선 비용이 지불돼야 하는데, 정작 사용자들에게는 의미없는 높은 그레이드는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하고 있는 작업이 그레이드 내에서 퀄리티를 높이는 작업이 아닌 그레이드를 높여 퀄리티를 높이는 것이 아닌지 지속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트라이더>가 <그란투리스모>의 그래픽을 따라하면, 의미없이 그레이드만 높이는 경우다.
■ 일이 점점 쌓여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되는 크립(Creep)
크립이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요구로 인하여, 초기 목적을 상실하는 문제를 말한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생겨나는 문제를 모두 해결하려다가 결국은 만들려고 했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프로젝트의 특징상 처음부터 진행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따라서 새로운 변경사항이 기존의 목표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파악 결과에 따라 어떤 종류의 자원이 얼마나 더 필요한 지 파악하고 조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크립처럼 해야 할 일을 결정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쌓아두기만 한다면 결국 이 프로젝트는 망하고 만다.
또한 자발적인 개선과 혼동해서도 안 된다. 자발적인 개선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능력과 시간을 지출했다는 비용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개선을 장려하되 그 사람이 다른 일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 지 파악해야 한다.
■ 범위(Scope)와 품질에 대한 확인(Verification)
범위란 초기 수립한 계획대로 게임을 개발하면서 구현하려 한 콘텐츠의 양을 말하고 품질은 콘텐츠의 상태를 뜻한다. 이 두 가지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했는 지 검사하는 것이 확인이다.
범위와 품질은 확인하는 내용과 목적이 다를 뿐만 아니라 출시에 미치는 영향도 다르다. 범위는 통과하고 품질은 통과하지 못한 상태에서 억지로 출시하는 경우, 퀄리티에 대한 엄청난 불만이 폭주하는 일이 일어난다. 반대로 퀄리티는 높지만 범위가 낮을 경우에는 완성도는 있지만 할 것이 없어서 유저들이 점차 떠나간다.
범위의 마감과 퀄리티의 마감은 다르다. 작업 결과물을 가지고 퀄리티를 높이는 작업 기간을 반드시 있어야 한다. 범위 뿐만이 아닌 퀄리티에 대한 약속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범위는 통과하고 품질은 통과하지 못한 경우.
범위는 통과하지 못했지만 품질은 통과한 경우.
■ 실제 값에 근접한 정확도(accuracy)와 추정하는 값의 단위인 정밀성(precision)
정확도는 게임의 전체적인 방향성이라고 말한다면 정밀성은 한 분야를 얼마나 깊고 디테일하게 다루는지를 말한다.
그런데 많은 개발자가 방향성보다 디테일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3D 모델러에게 컨셉 모델링을 맡겼을 경우 디테일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과 유사하다. 단순히 기본적인 틀을 보기 위한 것인데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정밀한 데이터가 많다고 정확한 데이터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기획서를 작성할 때 중요한 부분이다. 게임의 내용을 모두 집어넣으려 하기보다는 게임의 구조를 알려주는 방향으로 기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문서에 숫자를 일일이 써 넣기 보다는 구조를 파악시키고 숫자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줘서 더 정확하게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우성 프로듀서는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결성(확실성)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당연히 변경 사항이 생긴다. 변경이 생겼다면 근시안적으로 감추고 숨기거나 과시한다면 무결성이 깨져 버린다. 그러므로 건강한 무결성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강연을 마쳤다.
게임의 방향성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