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의 아버지 하라다 카츠히로(오른쪽 사진)가 16년째 장수하고 있는 <철권>의 인기비결에 대해 입을 열었다. 다른 게임의 분석을 꺼리지 않고, 팀원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유도한다. 누구나 자신이 상상한 것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툴과 공정관리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 뒤처진다는 압박에서 만든 ‘철권’
반다이남코의 <철권>은 3D 게임 개발이 한창이던 1994년 등장했다. 당시 일본 개발사들은 3D 게임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텍스처를 입히는 기술이나 각종 쉐이드 처리, 3D 애니메이션과 공격·피격 판정 등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기술을 두고 개발사들이 경쟁을 벌였다.
남코는 3D 게임 중 자동차와 인체에 집중했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레이싱 게임과 인체를 활용하는 격투 게임은 다른 게임에 비해 필요한 프레임이 높고 요구되는 기술도 많다.
당시 남코는 그 정도는 하지 않으면 다른 개발사와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철권>과 <릿지 레이서>였다.
■ 다른 게임의 분석을 꺼리지 마라
하라다는 <철권>의 비결로 먼저 자유로운 상상과 철저한 분석을 내세웠다. <철권> 시리즈에는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 와중에서도 독특하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럿이 아이디어를 모으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철권> 개발팀에서는 농담에 가까운 아이디어도 결코 흘려 듣지 않는다. 당장 무리다 싶은 개발도 무조건 모아 놓으면 언젠가는 쓸 일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농담을 나누던 과정에서 태어난 캐릭터도 있다.
다른 게임에 대한 분석도 중요하다. <철권> 개발팀은 기존의 캐릭터 중 인기 있는 캐릭터를 보고 그 캐릭터가 왜 인기가 있는지 방정식처럼 답을 풀어 나간다. 많은 개발자들이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 같다’며 꺼리는 행위다.
하지만 하라다는 “아이디어는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다른 이의 정보를 분석하고 재조립해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것을 주문했다. 상상은 경험에서 나오고, 그 경험은 대부분 이전에 접한 책과 영화, 게임 등에서 나오는 이상 개발자로서 모방은 피할 수 없는 요소라는 것이다.
그럴 바에는 철저히 모델을 잡고 분석해서 이를 자신만의 것으로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게 하라다의 주장이다.
이렇게 만들어 낸 캐릭터는 공개 전에 개발팀 내부에서 인기순위를 매기고 순위에 따라 역할을 분배한다. 주연급 캐릭터와 조연급 캐릭터를 나누는 셈이다. 그리고 게임이 출시된 후 1년이 지나면 데이터를 수집해서 개발팀 내부의 인기순위가 정확했는지 확인한다.
자유로운 상상과 분석을 통해 점점 더 ‘원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다.
하라다는 모방 역시 캐릭터 생산의 방법 중 하나로 들었다.
<철권> 캐릭터와 이벤트의 메이킹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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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을 그대로 전하다, 헤더 스크립트의 활용
하라다는 자유로운 상상을 훼손하지 않고 실제 개발로 옮기기 위한 ‘개발 툴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개발자가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더라도 게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머에게 그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 “이 부분을 이렇게 때리고, 저렇게 이펙트가 나가면 멋있을 것이다”는 식으로 말이다.
대부분의 격투 게임에서는 이 과정이 아주 어렵다. 그렇다고 프로그래머가 격투 게임에 정통한 사람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철권> 개발팀이 “블랙박스”라고 부르는 ‘헤더 스크립트’다.
헤더 스크립트를 사용하면 몸의 각 부위와 얼굴의 애니메이션, 속도 전환과 동작 건너뛰기, 커맨드 설정, 충돌 판정, 소리와 이펙트 등을 직접 눈으로 보고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만들 수 있다.
<철권> 팀은 이를 관리하고 개발하는 인력을 따로 배치해서 언제나 ‘최대한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철권> 팀의 디자이너나 아트 디렉터는 자신이 만든 콘텐츠를 그 즉시 헤더 스크립트를 통해 적용한 후 이를 별도의 설명 없이 프로그래머에게 전달하고 있다. 상상 속의 무언가는 상상한 사람 자신이 직접 꺼내는 것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헤더 스크립트를 통해 이런 장난도 가능하다.
<철권> 헤더 스크립트 사용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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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션캡처는 ‘만능’이 아니다
하라다는 ‘<철권> = 모션캡처’라는 기존의 인식에도 반기를 들었다.
어드벤처 등 일부 장르에서는 모션캡처 데이터를 100%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격투 게임에서 말하는 사실성과 야구·축구 게임의 사실성은 모두 다르다. 현실보다 더 빠르거나 동작이 과장돼야만 ‘사실성이 있어 보이는’ 경우도 많다.
결국 격투 게임에서 모션캡처는 ‘밑그림’의 역할만 맡을 뿐, 적게는 70%에서 많게는 100%의 움직임을 수작업으로 다시 만든다는 것이다.
하라다는 “사실적인 격투 게임을 위해서는 프레임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며 그것이 유명 격투 게임이 대부분 일본에서 나오는 이유라고 밝혔다.
다만 얼굴이나 표정 인식 등 수작업보다 모션캡처의 효율이 월등하게 뛰어난 일부 콘텐츠에서는 모션캡처를 적극 활용 중이다.
<철권> 모션캡쳐 활용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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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의 e스포츠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은 없나?
<스타크래프트>도 마찬가지지만 격투 게임은 경기라는 성질이 강한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이미 몇 번이나 세계적으로 <철권> 토너먼트를 열고, 그것을 통해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게이머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이다. 게임 개발은 활발하지만 게이머에 대한 시선은 굉장히 낮다. 인식을 쉽게 바꾸기 어려운 이상 마케팅을 통해 전 세계적인 공감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 쉬운 과제는 아니다.
스크립트가 복잡해지면 결국은 스크립팅도 프로그래머 몫이 되지 않나.
말한대로다. 복잡해지고 작업이 많아지면 점점 스크립트를 짜는 사람이 프로그래머처럼 되어 버린다. 하지만 <철권>은 두 달 정도면 교육할 수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시스템 중 하나로 아까 조직도에서 나온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 사이에 스크립트 관리를 위한 사람이 끼어 있는 것이다.
프로그래머지만 플레이어에 가까운 사람이 스크립트를 직접 사용하면서 늘 업데이트한다. OS와 같은 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뒤에 보이는 작업은 굉장히 복잡하지만, 사용법은 쉽지 않은가? 그래서 <철권> 팀에서는 프로그래밍을 잘하는 사람보다 격투 게임을 발전시킬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을 위주로 뽑는다.
<철권> 팀은 헤더 스크립트를 따로 관리하는 팀을 구성했다.
시리즈가 오래되면서 게임이 점점 복잡해진다.
<철권>은 체력 이외의 게이지가 나오지 않고 버튼 수가 늘어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FPS도 플레이 자체가 진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격투도 마찬가지다. 핵심은 최대한 복잡하지 않게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
다만, 어떤 게임이든 시스템이 축적되면 복잡해지고 중간 시리즈를 건너뛴 유저가 고민하는 건 마찬가지다. 개선하고 싶지만 이것만은 아직 방법을 못 찾았다.
강연 도중 한국 개발자도 뽑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일본인과 발상이 다른 한국식 게임 플레이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군더더기 없는 한국식 게임과 인재상을 원하고 있다.
16년 동안 <철권>만 만들었다. 지겹지는 않나?
실제로는 4~5년 전부터 다양한 게임에 관여하고 있다. 8년 전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컴퓨터 그래픽 관련 일을 한 적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철권>만 해 본 듯하지만 같은 팀에서 <건담>도 만들고 있다. 알려지느냐 안 알려지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꾸준한 축적으로밖에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누군가를 통해 그런 것이 이어지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격투 게임 한 장면에 들어간 기술의 숫자.
한국에서는 어떤 피드백이 있었나?
태껸에 대한 비디오를 보여주거나 한국 콘테츠를 더 넣어 달라는 이야기가 있다. 역시나 밸런스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재미있는 점은 한국에서 화랑의 인기가 낮았다는 점이다. 앞서 캐릭터의 인기순위를 예상한다고 했는데 화랑도 우리의 예상이 전혀 빗나간 경우 중 하나였다.
만약 <철권> 이외의 격투 게임을 개발한다면 어떤 걸 만들고 싶나?
혼자서 천천히 놀 수 있는 전략성이 높은 실시간 시뮬레이션 같은 격투 게임을 만들고 싶다. PC를 상대로 천천히 머리를 굴리며 싸울 수 있는 격투 게임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을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