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IP를 이용해 다양한 플랫폼의 콘텐츠를 만드는 ‘원 소스 멀티 유즈’는 이제 흔한 일이 됐다.
게임도 마찬가지. 엊그제 콘솔로 나온 게임이 휴대용 게임기와 스마트폰으로 외전을 발매하고 관련 만화와 소설을 만들며 부가가치 창출을 노린다. 트랜스미디어(TransMedia)의 시대다.
바이오웨어의 케이시 허드슨(Casey Hudson, 오른쪽 사진)은 이런 트랜스미디어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스토리텔링 기법을 소개했다. 그의 주장은 간단하다. “모든 미디어를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묶을 것”이다.
참고로 케이시 허드슨은 바이오웨어에서 10년 이상 일해 왔으며, <매스 이펙트> 시리즈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현재 그는 <매스 이펙트 3>의 개발을 이끌고 있다.
■ 소비자가 접하는 건 언제나 ‘메인 스토리’여야 한다
트랜스미디어를 선택하는 대부분의 게임은 메인 타이틀과 서브 타이틀을 분리해서 생각한다. ‘메인 타이틀의 흥행이 잘 되는 것 같으니 NDS로 외전 하나쯤을 내보자’는 식이다.
이 경우 서브 타이틀은 많은 제약을 받는다. 중요한 인물을 죽일 수도 없고,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갈 수도 없다. 메인 타이틀의 세계관을 침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서브 타이틀의 이야기는 메인 타이틀과 완벽히 분리되고, 게임을 즐기는 유저 역시 자신이 ‘주변의 이야기’를 접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케이시 허드슨은 이런 방식에 반기를 들었다. 같은 IP를 사용하는 모든 타이틀은 하나의 큰 이야기 안에 묶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이오웨어의 <매스 이펙트>에는 외전 성격으로 나온 만화나 소설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정통) 후속편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론 그 반대의 상황도 있다. 타이틀 하나 하나가 모두 메인 타이틀인 셈이다.
그는 결과적으로 이런 ‘통합된 이야기’가 더 많은 유저를 자신의 IP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각각의 사건을 접한 유저들이 자연스럽게 ‘다음 이야기’에 주목하고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조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트랜스미디어에 맞는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케이시 허드슨은 바이오웨어에서 세운 3가지 원칙을 이야기했다. 우선 처음부터 확장하기 쉬운 세계관을 골라야 한다. 주인공이 한 명이고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이야기도 그만큼 한정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판타지가 필요하다. 물론 뉴욕에 사는 경찰관 하나를 소재로도 훌륭한 타이틀을 만들 수 있다. 원한다면 시리즈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를 둘러싼 나머지 현실은 ‘뻔한 이야기’밖에 안 된다.
세 번째로 미리 스토리를 짜 놓아야 한다. 세부적인 부분까지 모두 설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해당 세계관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정도는 확실히 정해 둬야 한다. 그래야 계속 타이틀을 늘려 나가더라도 헤매는 일이 없다.
■ <매스 이펙트>로 보는 ‘거대한 이야기 만들기’
케이시 허드슨은 <매스 이펙트>를 구체적인 예로 들었다. <매스 이펙트>를 만들면서 개발팀은 먼저 세계관을 지탱할 규칙을 정했다. 그리고 이 세계관을 다룬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은 <매스 이펙트>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매스 이펙트>가 발매된 후에는 다운로드 콘텐츠(DLC)를 발매했다. 후속편을 대비해 1편과 2편 사이의 공백을 채워 주는 두 번째 소설도 출판했다. 동시에 아이폰용 <매스 이펙트 갤럭시>도 개발했는데, 여기에는 후속작에 나오는 캐릭터 두 명의 과거를 담았다. 하나의 스토리 속에서 엮어 나가기 위해서다.
이후 <매스 이펙트 2>가 흥행에 성공했다. 여기서부터 바이오웨어는 상호작용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다른 타이틀에서 진행한 플레이어의 선택이나 행동이 다음 게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전작의 경험을 반영시킴으로써 스토리의 응집력을 강화한 전략이다.
바이오웨어는 이제 <매스 이펙트 3>를 대비한 소설과 다양한 만화, DLC 등을 내놓고 있다. 모두가 메인 타이틀과 깊숙히 관계된 이야기들이다. 1편에 나온 캐릭터가 만화에 다시 등장해 2편의 캐릭터를 위협하고, 플레이어는 DLC를 통해 그 캐릭터를 구하러 가는 식이다.
물론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으로도 뛰어나기 때문에 <매스 이펙트>의 거대한 이야기 중간에 끼어들더라도 무리없이 다음 이야기로 흘러갈 수 있다. 케이시 허드슨은 “얼핏 보면 복잡할 것 같지만 직접 플레이해 보면 쉽게 스토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 미래에는 트랜스미디어에 도전하는 모든 게임이 이처럼 거대한 하나의 스토리 속에 엮이게 될 것이다”고 기대했다.
아래는 질의응답 시간에 나온 케이시 허드슨과 청중의 일문일답이다.
새로운 시스템이 기존의 세계관을 파괴할 때는 어떻게 하나?
우리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기 전에 그것이 <매스 이펙트>의 세계관에 무리없이 적용되는 지부터 판단한다. <매스 이펙트> 세계관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MMORPG 등에서는 적용하기 어려운 방법이 아닐까?
우리 역시 <스타워즈: 구 공화국>을 개발 중이지만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마다 다른 이야기를 집어넣고, 해당 플레이어만의 경험을 만들어 줄뿐이다.
한국처럼 특정 소설이 나오지 않는 지역에서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스토리텔링을 여러 미디어에서 나눠서 진행하는 것과 관련해 이미 내비게이션이 어렵다는 피드백을 받고 있다. 그래서 모든 이야기를 가능한 독립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매스 이펙트 2>를 플레이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울 수 있는 독립적인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매스 이펙트를) 영화 혹은 MMORPG로 개발할 예정은 없나?
영화는 이미 준비 중이다. 최고의 영화팀과 진행 중이니 기대해도 좋다. <매스 이펙트>는 3부작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게임이다. 일단 엔딩이 엄청난 만큼 유저들이 그것을 본 후에도 MMORPG화를 꾸준히 바란다면 그때 생각해 보겠다. 남은 이야기는 충분히 많고, 세계관은 충분히 넓다.
강연장에는 300명 이상의 인파가 몰려 통역기와 좌석이 모자라는 소동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