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뿐만은 아닙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게임 사업을 이야기할 때 게임패스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축입니다. MS의 길고 지루했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전 역시 결국엔 게임패스의 가치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게임패스는 반드시 주시해야 하는 서비스가 되었습니다.
한편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가 사실상 성공으로 귀결되면서 게임패스 라인업 강화를 향한 기대는 커졌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그 효용을 소비자로서 체감하기에는 이른 시점입니다. 그리고 MS는 2023년에도 게임패스의 약점으로 꼽히는 ‘킬러 타이틀’ 확보에 또다시 실패했다는 평가입니다. 그렇다면 올 한해 게임패스는 그저 실망스러운 서비스이기만 했을까요? 한 번 돌아봤습니다.
먼저 2023년 게임패스가 기록한 몇 가지 주요 수치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끊임없이 확장되는 라이브러리’는 MS가 홍보하는 게임패스의 주요 가치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올해 1월부터 12월 21일 현재까지 PC와 콘솔, 그리고 클라우드용 게임이 매달 평균 12.5개, 도합 150개 추가되었습니다. 현재 PC 버전에서는 전체 393개, 콘솔 버전에서는 413개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주목할 사실 중 하나는 신규 게임 중 50개가 ‘데이원’ 타이틀이었다는 것입니다. 데이원 타이틀이란 정식 출시일에 바로 게임패스에 동시 입점하는 게임을 말합니다.
해당하는 2023년의 대표적 게임으로는 네오위즈의 <P의 거짓>이 있습니다. <P의 거짓>은 데이원 입점에도 불구하고 다른 판매처에서 통합 100만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수천만 명에 달하는 게임패스 구독자 규모를 생각할 때, 이를 제외하고도 100만 이상을 판매한 것은 상당히 인상적인 성적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게임패스의 구독자 수 이야기도 한 번 해봅시다. 2022년 1월 필 스펜서는 게임패스 구독자가 2,500만 명을 넘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는 공식적인 언급이 없는 상황인데, 재미있게도 지난해 10월 MS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결사반대하는 소니에 의해 새로운 수치가 드러난 적 있습니다.
당시 영국 경쟁시장청(CMA)은 MS의 인수 허가를 검토하기 위해 경쟁 기업들의 의견을 물었는데요. 소니가 CMA에 보낸 답변에서 “게임패스 구독자는 2,900만 명에 달하며,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발언이 확인된 것입니다.
이는 물론 외부의 경쟁 기업인 소니 측의 주장이었고, 당시 부정확한 언사가 서로 많이 오가던 상황이기 때문에 완전히 신뢰하긴 힘듭니다. 다만 올해 9월에는 Xbox 측 인사를 통해 비슷한 정보가 누설된 바 있습니다.
Xbox에서 글로벌 브랜딩과 통합 마케팅 부서 선임 디렉터를 맡고 있는 크레이그 맥나리가 비즈니스 SNS ‘링크드인’에 입력한 자기소개가 문제가 됐습니다. 맥나리는 자기소개에 “3,000만 구독자를 가진 세계 1위 게임 구독 서비스 게임패스를 런칭하고 성장시켰다”고 적어뒀던 것입니다.
MS는 공식적으로 이 정보를 시인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았으며, 이후 맥나리의 자기소개 문구는 다시 이전 발표 수치인 ‘2,500만’으로 수정되었습니다. 그런데 3,000만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2022년 1월부터 2023년 3분기까지 게임패스 구독자는 약 500만 명 성장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는 기존 대비 분명한 성장 둔화입니다.
한편 올해는 소비자 입장에서 봤을 때도 엑스박스 운영에 몇 가지 중요한 변화가 찾아온 해입니다. 먼저, 서비스 지역이 대폭 늘어났는데요. 지난 4월 12일을 기점으로 유럽, 북아프리카, 중동 등지 40개 국가가 서비스 대상에 포함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게임패스는 총 86개 나라에서 이용 가능해졌습니다.
한편 구독료 인상도 이루어졌습니다. 지난 7월을 기준으로 게임패스 얼티밋은 기존 11,900원에서 13,500원으로, 콘솔 버전 게임패스는 기존 7,100원에서 8,500원으로 인상되었으며, PC 게임패스의 경우 가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많은 게이머를 포섭해야 하는 게임패스의 입지를 생각할 때, 라이브러리 다양성은 필수로 갖춰야 하는 소양입니다. 이에 걸맞게 2023년에도 게임패스에는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게임들이 새롭게 추가됐습니다.
시티 빌더 <시티즈 스카이라인> 시리즈, 레이싱계 대표작 <포르자 모터스포츠>, 스테디셀러 JRPG <페르소나> 시리즈, 캐주얼 대전 게임 <파티 애니멀즈>, 힐링 비주얼 노벨 <커피토크 2>, 협동 제작 생존 <발하임>, 심지어 PvP 슈터의 영원한 고전 <골든아이 007> 까지, 여러 취향과 연령대를 공략할 수 있는 작품들이 선을 보였습니다.
그 외 소울라이크 팬덤의 호응을 얻은 <와룡: 폴른 다이너스티> 및 <P의 거짓>, <데드 바이 데드라이트>의 대항마로 떠오른 비대칭 PvP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올해 각종 시상식 인디 부문을 섭렵한 <시 오브 스타즈>, 시리즈의 인기를 계승하고 있는 <용과 같이 7 외전 이름을 지운 자>와 <램넌트 2>, 인디 히트작 <워테일즈>, <어겐스트 더 스톰>도 언급할 만합니다.
한편 데이원 작품 중에는 기대에 못 미치는 평가를 받았던 게임도 많습니다. <아토믹 하트>는 완성도와 분량에서 실망을 안겼습니다. <시티즈 스카이라인 2>는 풍성한 콘텐츠를 가리는 치명적 최적화 이슈가 문제시되고 있습니다.
<페이데이>와 <워해머 40,000 다크타이드>는 같은 4인 코옵 게임으로서, 장르 내 잔뼈가 굵은 개발사들의 후속작이어서 기대를 모았지만, 양쪽 다 완성도 측면의 혹평을 받았습니다. 다만 다행히 후자는 지속된 패치로 민심을 회복한 상태입니다.
데이원이 아닌 트리플A 게임들도 있는데, 평가가 애매합니다. 시리즈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지루함을 안겼던 <파크라이 6>, 그리고 반대로 개발사의 기존 작품들에서 축적한 유산을 거의 계승하지 못했다는 평가의 <고담 나이트> 등이 그 예시입니다.
한편 위에 나열된 게임들을 살펴보면, 게임패스의 주요 약점 중 하나가 극복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킬러 타이틀’의 부재입니다.
언급된 게임들은 대부분 좋은 타이틀이지만, 단일 작품으로서 시장 전반에 어필할 수 있는 대중적 매력의 대형 작품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트리플A’로 불리는 블록버스터 작품들이 맡는 역할이지만, 2023년 게임패스에 추가된 대부분의 트리플A 게임들은 아쉽게도 게임성에 문제가 있거나, 장르적으로 협소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은 게임패스의 근본적 한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게임패스에 입점한 게임들은 전체 판매량에서 타격을 입기 마련입니다(이것은 필 스펜서가 규제 당국 앞에서 직접 시인한 사실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개발사 입장에서는 게임의 성공 가능성과 게임패스 입점 계약의 금전적 유인 사이에서 상당히 까다로운 저울질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대중적 성공 가능성 쪽으로 천칭이 확실히 기우는 게임이라면, 굳이 게임패스에 입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게임패스에 입점한 대형 게임은 개발사의 시장 경험이 적거나(아토믹 하트), 장르가 마니악한(P의 거짓, 포르자 모터스포츠) 등의 리스크로 대중적 성공을 마냥 담보하기 어려운 사례가 많습니다. 혹은 이미 시장에서 다소의 실패를 겪은 뒤 추가적 판로를 찾는 사례(파크라이 6, 고담 나이트) 들도 있습니다.
MS도 나름 실패 최소화를 위해 이미 성공 경험이 있는 개발사들의 신작(시티즈 스카이라인 2, 페이데이 3, 워해머 다크타이드)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기울인 듯합니다. 그러나 이들 작품은 앞서 말했듯 저마다의 이유로 평이 갈리고 말았습니다.
MS에게 유력 개발사 인수는 이러한 게임패스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었습니다. 게임의 시장성과 상관 없이 ‘무조건’ 게임패스에 게임을 낼 인하우스 개발진을 확보하는 일이었으니까요.
2023년은 MS가 이를 위해 단행했던 거액 투자(베데스다 인수)의 성적표를 받아보는 해였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입니다. 혁신 부족과 게으른 기획을 보여준 <스타필드>는 기라성같은 다른 작품들에 묻혔고, 뱀파이어 테마의 <레드폴>은 2023년 출시한 여러 ‘망작’ 대열에 합류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MS와 베데스다의 체면을 살려준 작품은 탱고 게임웍스의 리듬 액션게임 <하이파이 러시>입니다. 유쾌한 카툰 스타일의 비주얼과 스토리, 그리고 신나는 락 넘버를 십분 활용한 호쾌한 액션은 2023년의 여러 명작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모자람 없다는 평가입니다. 한편 이 게임을 마지막으로 탱고 게임웍스를 이끌던 미카미 신지가 회사를 떠나버린 것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유독 MS에게 다사다난했을 2023년의 성과만으로 게임패스의 앞날을 점치는 데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게임계 역사상 최대 규모로 꼽히는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가 2024년부터 ‘결실’을 맺을 예정이니까요.
지난 10월 10일, 인수 마무리를 8일 앞둔 시점에서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SNS를 통해 자사 주요 타이틀의 게임패스 입점 계획을 알렸습니다.
이들은 “올해 <모던 워페어 3>와 <디아블로 4>를 게임 패스에 포함할 계획은 없다. 하지만 인수가 완료되면 Xbox와 협력해 전 세계 플레이어에게 더 많은 타이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내년 중으로 게임 패스에 게임을 추가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액티비전 블리자드 역시 주목할 만한 신작 소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와 더불어 PC 및 콘솔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IP인 <콜 오브 듀티>, 그리고 고정 팬층이 상당히 두꺼운 블리자드의 다양한 게임을 지붕 아래에 두게 된 만큼, 이전까지의 고민이었던 ‘대세감’을 충당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으리란 전망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