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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GDC 2024] 드디어 밝혀진 테트리스의 또 다른 비밀

사라졌다가 새로 발굴된 '아이큐 300을 위한 테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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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우티) 2024-03-23 10:44:07

<테트리스>. 블록을 조합해 줄을 없애는 이 단순한 게임은 <마인크래프트>의 등장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타이틀이었다. 디스켓 복사, 불법 유통, 해적판 등등 비공식 수치를 더하면 <테트리스>야 말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된 디지털게임에 이름을 올리지도 모른다.


<테트리스>의 역사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배틀로얄 룰을 돌입한 <테트리스 99>가 2019년 좋은 평가를 받았고, 지난해에는 게임의 저작권 쟁탈전을 각색한 전기영화 <테트리스>가 공개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1월에는 미국의 한 소년이 자기 실력으로 NES판 <테트리스>의 킬스크린을 띄우며 최초로 게임의 한계에 도달했다.


이번 GDC에는 <테트리스>를 주제로 한 특별한 강연이 열렸다. 원작자 세르게이 파지트노프(Alexey Pajitnov)가 잊고 있던 새로운 프로토타입의 <테트리스>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이 프로토타입의 이름은 '테트리스 리버스드'다. 하지만 원작자는 오랜 기간 이 게임에 대해서 잊고 있었고, 우연한 계기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GDC에서 최초로 공개된 이야기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테트리스의 새로운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한 세 사람. 가운데가 원작자 알렉세이 파지트노프. 왼쪽은 블라드 미쿠, 오른쪽은 베드란 클라낙.




# '테트리스 리버스드'의 시작


때는 2011년. 크로아티아 국적의 프로그래머 베드란 클라낙(Vedran Klanac)은 네덜란드에서 열린 한 게임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그는 지금은 <호라이즌> 시리즈로 유명한 게릴라게임즈의 공동창립자 마틴 드 롱드(Martin de Ronde)는 이 자리에서 흥미로운 제안을 꺼냈다. 원작자 파지트노프와 새로운 <테트리스>를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수익금의 대부분을 기부할 것이다. 여기에 참여할 프로그래머를 찾고 있다.


그리고 클라낙은 이 프로젝트에 자원했다. 그렇게 그는 파지트노프와 함께 프로토타입을 작업했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테트리스 리버스드'였다. 당시 파지트노프에게는 새로운 <테트리스>에 대한 특별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리버스'라는 제목처럼, 블록을 쌓아서 줄을 없애는 게임을 뒤집은 것으로 퍼즐 조각을 움직여 코인을 먹게 하는 것이 기본 아이디어였다. 


가장 바닥에 퍼즐 조각을 놓는 게임이 아니다. 배치한 공간에는 조각을 둘 수 없게 된다.


코인을 먹는 것이 핵심 과제로 맵이 꽉 차면 초기화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테트리스 리버스드'는 조각을 가장 아래에 쌓아서 줄을 없애는 종류의 게임이 아니었다. 반대로, 플레이 필드에 공간이 맞기만 한다면 그곳에 맞게 배치해서 공간 뒤의 셀이 제거되는 형태의 게임이었다. 공간 뒤의 셀은 퍼즐이 움직일 수 있는 경로로 이 셀이 사라지면, 그 공간에는 조각을 둘 수 없다. 플레이어는 자기가 없앤 공간을 피해가며 코인을 먹는 플레이를 해야 한다.


클라낙은 파지트노프의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작업에 착수했다. 두 사람은 실제로 만난 적 없었지만, 2012년 3월부터 11월까지 파지트노프의 기획대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마틴 드 롱드의 주선으로 '테트리스 리버스드' 개발은 이루어지고 있었고, 파지트노프는 프로토타입을 몇 차례 플레이하며 자신의 아이디어가 게임으로 실현되는 모습을 확인했다.


기본적으로 <테트리스>에서 제공되던 방향 바꾸기, 빠르게 떨어뜨리기 같은 기능이 내장됐다. 아울러 어려워진 게임을 위해서 몇 가지 보조 기능을 추가했다. (몇몇 버전에서만 한정적으로 제공됐던) 일시정지를 살렸다.  승리 조건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이스코어를 도전하는 형태의 게임으로 셀에 더 이상 조각을 넣을 수 없으면 '되돌리기' 버튼을 눌러서 필드를 새로 불러오기로 했다. 


클라낙에겐 몇 가지 추가적인 아이디어가 있었다. 폭탄을 배치해서 그 폭탄을 피하는 플레이를 유도할 것인지 고민했다. '리버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물리기 기능을 넣을지 말지도 판단해야만 했다.


클라낙이 파지트노프의 아이디어를 문서화한 프로토타입 일부


# 서칭 포 '테트리스 리버스드'


그러나 2012년 가을 들어 방향은 전혀 다른 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주선자 마틴 드 롱드의 회사 게릴라게임즈가 소니와 인수를 논의하게 된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M&A는 성공하지만, '테트리스 리버스드'는 잠정적으로 중단되게 된다. 파지트노프와 직접적인 연이 없었던 클라낙은 주선자를 통해서 프로젝트의 향방을 물었지만, 끝내 긍정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다. 결국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하릴없이 클라낙은 훗날을 기약하며 그때까지 만들었던 '테트리스 리버스드'를 자신의 아카이브 깊숙한 곳에 보관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7년이 되었다. 클라낙은 비즈니스 전문가 블라드 미쿠(Blad Micu)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미쿠는 우리가 모르고 있던 새로운 버전의 <테트리스>에 대한 기획이 존재했다는 것, 그리고 그 게임을 함께 만든 두 사람이 일면식도 없다는 것에 놀랐다. 미쿠는 두 사람에 대한 만남을 주선하게 되고, 그것이 바로 이날 강연으로 이어진 것이다.


GDC는 위대한 게임의 새로운 프토토타입을 보존하자는 차원에서 해당 강연을 진행했다. 두 사람은 '테트리스 리저브드'를 공식적으로 출시할 것인지에 대해서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GDC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논의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10여 년 만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시 확인한 파지트노프​는 "이 게임은 마치 아이큐 300을 위한 게임 같다"고 농담했다. 클라낙은 "모쪼록 '테트리스 리버스드'의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있어 참 잘 됐다"고 화답했다.


'테트리스 리버스드'가 "아이큐 300을 위한 테트리스 같다"는 원작자 파지트노프

이날 <테트리스>의 새로운 비밀에 대한 내용은 GDC의 대미를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