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그동안 번역이 이뤄지지 않아 국내 독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다행히 지난 2월 도서출판 스타비즈가 번역본 제작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하면서, 오늘(30일)부터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등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됐다.
2013년 출간된 책이 10년여 만에 국내 출간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개발자 출신 저술가이자 게임 개발 연구자인 역자 오영욱의 노력도 한몫했다. 실무자 출신의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신간 번역을 끝마친 그를 직접 만나, 프로젝트 참여의 계기, 국내 독자들에게 전하는 감상 포인트 및 도서 추천사를 청해 들었다.
* 역자 오영욱: 2006년 <던전 앤 파이터>를 시작으로 게임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며 PC, 소셜, 3D 게임 등 다양한 장르를 개발했다. 국내 게임 관련 자료의 아카이빙 구축에 매진하여 <한국 게임의 역사>, <81년생 마리오>, <우리가 사랑한 한국 PC 게임>, 등에 참여했다. 현재는 게임 개발을 공부하며 연구자들과 협업하고 있다. 번역서로서는 <게임 콘솔 2.0>, <소셜게임 디자인의 법칙>이 있다. (출처: <게임 기획의 정석> 역자 소개)
Q. 디스이즈게임: 간단한 소개부터 부탁드린다.
A. 오영욱: 2006년부터 프로그래머로 게임업계에서 일했다. 현재는 대학원생으로서 박사과정 수료 후 논문 준비 중이다. 가끔 외주 성격으로 게임 프로그래밍을 맡기도 한다. 그래서 흔히 스스로를 소개할 때 컴퓨터가 읽는 글(코드), 사람이 읽는 글을 모두 쓴다고 이야기 한다. 번역한 서적은 이번이 세 번째고, 게임 웹진 ‘게임제너레이션’에 필자로 있기도 하다.
Q. 어떤 계기로 이번 책을 번역하게 됐나?
A. 내가 직접 고른 것은 아니다. 평소 스타비즈와 일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성적을 낼 수 있을 만한 게임 전문 서적을 종종 함께 고른다. <게임 기획의 정석>은 <림월드>를 조금 플레이하며 흥미를 느낀 홍승범 스타비즈 대표가 관련 콘텐츠를 발굴해 들여오게 된 사례다.
<게임 기획의 정석> 원서 자체는 2013년에 출간됐다. 스타비즈가 국내 출판 계약 제안을 보낸 것은 2021년으로 비교적 최근이다.
최종 계약은 2022년 11월에 마무리됐지만 역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었다. 게임 전문 번역가는 서적보다는 단가가 더 높은 실제 게임 번역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어서다. 그래서 고민 끝에 홍 대표의 제안으로 직접 번역에 나서게 됐다.
Q. 주로 어떤 기준으로 책을 발굴하고 있는지?
A. 어쨌든 수익 사업이다 보니, 흥행성을 따지는 부분이 있다. 이번 책의 경우 히트작 개발자의 책이니까 약간 ‘묻어가려는’ 지점도 있었던 것 같다(웃음). 또한 저자가 유명하긴 하지만 인디 씬에 한정되다 보니, (출판계약) 경쟁이 비교적 적었던 것도 한 이유다.
그런데 출판 결정 뒤에 알고 봤더니 주변에 원서로 읽은 분들도 많으시더라. 아마존 별점도 4.8이나 되고, 평가자 수도 많다. 그런 만큼 믿고 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 펀딩에 참여해 준 분들도 많다.
<게임 기획의 정석> 크라우드 펀딩 페이지
Q. 펀딩이 500% 이상 초과 달성으로 끝났다. 게임 기획 서적에 대한 국내 개발자들의 목마름 때문일까?
A. 게임 기획 서적이 적지는 않은 듯하다. 다만 기획자들은 조금 더 자신의 상황에 딱 맞는 기획 책을 항상 원하는 것 같다.
게임 기획의 영역이 워낙 넓고 회사마다, 직군마다 하는 일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기획자를 가르치는 분들, 기획자를 뽑아서 쓰는 분들 모두 고민이 많다. 당사자들도 업무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늘 고민이다. 그래서 기획자마다 같은 상황도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고, 각자 필요한 지식도 달라진다.
또한 과거에 비해 요즘은 다른 기획자를 만나기가 힘들어진 부분이 있다. 그래서 다른 개발자의 얘기를 듣고 생각을 확인하고 싶은 목마름이 있는 것 같다.
Q. 저자는 주로 <림월드>로 알려져 있는 인물인데. 책과의 연관성은?
A. ‘림 월드 개발자의 책’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사실 <림월드> 출시 이전에 책이 나왔다. 그래서 게임 속에 림월드 얘기는 없다.
다만 책 후반부에 <림월드>와 비슷해 보이는 내용의 게임 기획 예제가 나오기는 한다. 농장 판타지 게임인데, 농장을 짓고 외부 위협을 막고, 여러 이벤트가 일어나는 등의 기획을 보며 ‘이건 림월드인데?’라고 생각했다.
직접적으로 <림월드>에 자기 개발철학을 적용시킨 방법 등은 책에서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책에 소개된 디자인 철학, ‘우아함’ 등의 개념들을 볼 때 <림월드>가 이 책의 정수를 고스란히 담아 만들어진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Q. 이 번이 세 번째 번역 서적이다.
A. 현재는 절판된 <소셜게임 디자인의 법칙>을 공역했고, <게임 콘솔 2.0>도 번역했다. <게임 콘솔 2.0>과 비교하면 이번 책은 텍스트가 많아서 쉽지 않았다. 그래서 번역이 지지부진해졌고 결국 홍 대표가 옆에서 작업을 감시하며 도와줘야 했다.
초기 제목은 (원제 그대로) <디자이닝 게임즈>였다. 그런데 스타비즈가 이전에 출간한 <모럴컴뱃>의 경우, 제가 원제의 언어유희를 좋아해 그렇게 번역했다가 결국 안 팔렸다(웃음).
그래서 그 후로 제목은 ‘일단 눈길을 끌어야 한다’는 원칙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일종의 ‘어그로’를 위해 <게임 기획의 정석>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관심을 끌고자 했을 뿐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정말 ‘정석 같은 책’이라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고. 실제에 부합하는 제목이었던 것 같다.
Q. 책을 번역하면서 느낀 인상적인 지점, 좋았던 지점을 설명해 준다면?
A. 처음 번역을 할 때는 ‘5년만 일찍 읽었다면 나도 이전에 포기했던 프로젝트를 출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만큼 책 내용은 좋은데, 다만 번역을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이 컸다.
책은 총 3부로 나뉜다. 매우 짧은 1부는 저자가 내린 게임의 정의, 2부는 게임 기획, 3부는 게임 프로덕션을 다룬다.
저자는 게임이란 곧 ‘경험을 만드는 기계’라는 핵심 철학을 바탕으로 전체 내용을 풀어나가는데, 이것은 기존 게임 기획 서적들에서는 많이 못 봤던 접근이다.
다른 책들은 게임 개발의 ‘기조’를 다루기보다는 주로 기획에 관련된 구체적인 지식을 다루는 편이다. 기존의 기획서들이 대부분 <아트 오브 게임 디자인>에서 <룰즈 오브 플레이>, <재미이론>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따르는 느낌이라면, 이번 책은 계보의 첫 번째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림월드>
Q. 정확히 어떤 개발 기조를 제시하고 있는 건가?
A. 1부에서 타이넌은 ‘우아한 게임 기획’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문명> 시리즈의 시드 마이어가 ‘게임은 의미 있는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한 것처럼 실베스터도 게임 기획이란 우아해야 한다는 얘길 하고 있다.
Q. 우아한 게임이란 뭔가?
A. 저자는 ‘가능성이 많은 게임’이라고 얘기한다. 적은 규칙으로도 다양한 플레이가 나올 수 있는 디자인의 게임이다. <마인크래프트>나 <림월드> 등의 게임이 예시가 된다. 게임 속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하는 여러 사건을 이용자들이 즐기는 형태다.
예컨대 저자가 또 다른 예시로 든 <드워프 포트리스>의 경우, 외부 요인에 의해 유저의 기지가 완전히 다 박살 나더라도 이것이 즐거운 경험이 된다. 기획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좋은 시너지를 내는, 적은 기획으로 다양한 결론이 나오는 게임인 것이다.
게임을 개발해 본 입장에서, 사실 기획은 덕지덕지 붙이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 책을 통해 어떻게 하면 우아한 게임 기획이 될까에 대해 고민을 해볼 수 있는 점이 상당히 좋았다.
이건 현업에 오래 계신 분들이라면 사실 다 몸으로 깨닫고 있을 만한 노하우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는 일이더라도 책에 텍스트로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좋아들 하시더라. 직접 겪었지만 언어로 옮기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이런 것이었구나’ 느끼게 됐다는 소감을 많이 들었다.
<림월드>에 영향을 많이 준 것으로 알려진 <드워프 포트리스>
Q. 이 책을 읽으면 특히 좋을 독자는 누구일지?
A. 먼저 기획자분들은 1부를 보면서 자기 디자인을 말로 정리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실베스터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를 참고해서 각자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게임 디자인을 정제된 말로 표현해 봤으면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디자인이 ‘왜 좋은지’를 이야기해 보는 것이다. 좋은 기획,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서로 얘기를 나누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이 책이 그러한 기회를 제공했으면 한다.
책이 제시한 ‘좋은 게임’의 정의를 정답처럼 따르란 것은 아니다. 실베스터는 게임 경험과 히스토리를 만드는 ‘경험 엔진’과 같은 게임, 즉 <림월드>와 같은 게임을 이상으로 제시하는데, 세상에는 비주얼 노벨, 리듬게임 처럼 해당 공식에 안 맞는 좋은 게임들도 많다. 그러나 이런 게임들에 대해서도 각자의 미학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뒷부분, 정확히는 3부 내용은 모든 업계인이 읽어야 한다(웃음).
업계에서 10년 넘게 알고 지낸 분들에게 이번 책 추천사를 받았는데, 3부 내용을 보면서 자신의 과거 ‘삽질’이 떠오른다며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만큼 실무를 겪은 사람들이 크게 공감하는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다는 뜻이 된다.
예를 들어 ‘그레이박싱’(grayboxing)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레이박싱이란 엔진 상에서 그래픽 에셋을 추가하지 않은 채 회색의 기본 3D 개체 상태로 코어 게임 메카닉을 검증하는 단계를 말한다.
게임이 실제 동작하는지 알아보는 단계이기 때문에 단순한 회색 공, 타원, 실린더, 박스 등 개체가 왔다 갔다 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게임 실무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만 봐도 코어 게임플레이에 관해 깊이 논의할 수 있다.
그런데 잘 모르는 눈으로 보면, 아트 디자인이 없으니 게임이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다. 특히 결정권자 중에는 그런 경우가 더 많은 편이다. 이런 분들이 회의에 들어와서 그레이 박싱을 보면 ‘재미없어 보인다’는 의견을 낼 가능성이 높다.
바로 그렇기에 그레이 박싱 단계의 회의에는 ‘훈련된 사람들만 참여해야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과거 동료들과 책의 이 대목에 관해 이야기 나누면서 “모든 개발사 벽에 붙여놔야 하는 말이다”, “이걸 모르는 사람들이 왜 아직도 많을까”라며 웃었다.
Q. 책을 온전히 소화하기 위해서 독자가 시도해 보면 좋을 추가적 활동이 있을까?
A. 자신이 과거 플레이했던 게임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 혹은 목에 가시처럼 걸렸던 점 등을 떠올리고, 이것을 언어로 정리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다른 개발자들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좋겠다.
다만 책 본문에서는 정작 “게임 개발은 책으로 배울 수 없다”고 직접 이야기하고 있다(웃음). 그 말처럼, 가급적 자신이 배운 내용을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화려한 부분부터 동작시켜 보고 싶기 마련이지만, 그보다는 앞선 그레이 박싱 이야기처럼, 최소한으로 동작하는 것부터 만들어서 실험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효율적으로 겪고 공부할 방법을 고민하면서, 실제로 작업해 보셨으면 좋겠다.
Q.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이번 책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아한 게임’을 만드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예술 작품과 같은 깔끔하고 뾰족한 게임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이 책을 계기로 ‘우아한 디자인’, ‘우아한 기획’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실제 성과도 내는 사례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을 기반으로 다른 개발자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당장 그럴 사람이 없다면 혼자서 저자와 대화를 나눈다는 생각으로 고민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저 개인적으로는 프로그래밍을 가르치고, 학생들을 평가하기도 하는 입장인데, 이번 책을 읽고 나서부터 학생들의 기획을 평가할 때도 더 명확한 표현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기획을 구체적으로 피드백하고 이를 기반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됐다. 독자분들도 이번 책을 통해 정제된 언어로 기획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셨으면 한다.
물론 저자는 영어권의 개발자고, 그러한 유형의 게임을 통해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이 책을 접하는 분들 중에서는 시장에 맞지 않는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지 의문을 제기하는 분이 나올 수 있다.
틀린 지적은 아니다. 자선사업으로 게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 실제로 좋은 게임을 만들었는데도 돈을 벌지 못해 사라진 사례가 많다. 그런 면에서 게임의 BM(사업모델)과 관련해서도 이번 <게임 기획의 정석>과 비슷한 결의 작품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