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6일 공개된 유비소프트의 게임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이하 섀도우스)가 때아닌 논란과 마주했다. 바로 주인공의 인종에 관한 논란이 생긴 것이다.
<섀도우스>에는 두 주인공이 등장한다. 사무라이이자 실제 역사 속 인물을 가공한 흑인 '야스케'와 시노비이자 가상의 인물인 '나오에'가 이야기를 이끌어갈 예정이다. 여기서 일본인이 아닌 '야스케'가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발탁됐다는 점에서 여러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일본 현지에서의 반응이 부정적이다.
야스케는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삼았다. 실존 인물 야스케는 선교사의 노예로 일본에 왔다가 '오다 노부나가'의 아래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인이 아닌 사람이 오다 노부나가 밑에서 활동했다는 점에서 야스케는 여러 창작 매체에서 종종 등장했던 바 있다. 비중은 높지 않지만, 일본 전국 시대를 소재로 한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도 야스케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왜 <섀도우스>가 야스케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것에 대한 논란이 큰 것일까?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의 '야스케' (출처: 유비소프트)
먼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실제 역사와 가상의 이야기를 섞은 게임이다. 실제 역사 속에서 발생한 굵직한 사건에서, 가상의 단체인 암살단과 템플 기사단이 늘 암약했다는 설정을 기반으로 진행되어 왔다.
실제 역사를 소재로 한 만큼 여러 나라와 다양한 시간대를 배경으로 시리즈를 전개해 왔기도 하다. 주인공은 항상 그 나라 혹은 지역 출신의 '가상 인물'을 내세웠다. 중동을 배경으로 한 첫 작품 <어쌔신 크리드>를 시작으로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와 같은 게임에서 모두 현지 출신 주인공을 내세웠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수많은 주인공들 (출처: 유비소프트)
그러나, 이번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에는 해당 지역 출신이 아닌 주인공이 등장했다. 일본 출신 주인공이, 현지 주민의 입장 속에서 역사 속 사건들을 겪으며 풀어 나가는 이야기를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다소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야스케가 '실존 인물'이라는 것도 논란이 되는 문제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는 그간 실존 인물은 게임에 출연시키되, 주인공으로는 등장하시키지 않았다. 아무리 창작물이라 한 들, 실존 인물이 주인공으로 활동하며 실제 역사와 완연히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은 현지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야스케에 대한 실제 역사 속 기록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창작에 있어서는 유리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역사를 마음대로 묘사한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아무리 게임이고 픽션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이 <섀도우스>로 인해 정설처럼 알려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많은 일본인이 불편함을 표하고 있다. 야스케가 '사무라이'로 활동했다는 점도 명확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진은 동영상에서 "다른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가 그렇듯이, 실제 역사 측면을 우선적으로 검토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게임 내에서의 야스케 묘사가 게이머들에게 '역사적 사실'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는 말이 된다. (출처: 유비소프트)
한 일본인은 유튜브 댓글을 통해 "이번 작품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야스케라는 실존 인물이 나오면서, 여기저기서 야스케는 위대한 사무라이였다든가, 애초에 사무라이가 아니였다던가 하는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수정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며 "나는 일본인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역사를 흙발로 더럽히는 것 같다"고 했다.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실제 역사 속 인물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백인'이 등장하는 게임 <인왕>의 사례를 통해 반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왕>은 요괴가 등장하는 완전한 '판타지물'에 가깝다. 그리고 서구 개발사가 아닌, 자국의 문화를 늘 게임의 소재로 삼아 왔던 일본 개발사 '팀 닌자'가 개발했기에 이번 논란과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여기에 논란을 가속화한 것은 일본 매체 '패미통'과 개발진이 진행한 공식 독점 인터뷰다. 개발진은 인터뷰에서 "우리의 사무라이, 즉 일본인이 아닌 우리들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인물을 찾고 있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정황상 서구권 게이머에게 보다 받아들여지기 쉽도록, 서구 출신이면서 일본 역사에 잘 녹아들 만한 인물을 찾았기에 '야스케'가 주인공으로 가장 적합했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을 소재로 했음에도, 일본인 주인공은 채용하고 싶지 않았다는 차별적인 뉘앙스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기에 논란을 피하기는 어렵다. 참고로 해당 발언은 수정되어 현재 인터뷰 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인터뷰 내용 수정과 관련한 트위터 (출처: X)
해당 발언을 제외하더라도 남아 있는 내용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개발진은 "처음부터 포르투갈인의 도래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일본의 위기를 이야기할 때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라며 "팀원들은 야스케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고, 야스케를 통해 일본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언급했다.
일본인들에게 '서구권 개발자'의 시선에서 일방적으로 바라본 일본을 게임 내에 묘사했다고 해석될 여지가 크다.
이번 작품을 정식으로 공개할 때도 당대 일본의 모습을 잘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일본인이 아닌 우리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인물"을 원했다는 개발진의 인터뷰 발언을 통해 이런 모토는 크게 희석됐다. 여기에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고증을 중요시한다면서, 기록마저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외래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역사 왜곡 가능성까지 우려되고 있으니 일본인 입장에선 더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 일본 게이머는 "(섀도우스는) 일본을 묘사한다기보단, '서양에서 생각하는 일본'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고 이야기했다.
디스커버리 투어 (출처: 유비소프트)
이번 <섀도우스>를 둘러싼 논란에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다. 반대 여론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앞선 이유로 인해 유비소프트가 일본의 문화를 존중하고 있지 않다고 느끼며, 주인공 선정에 대해 불편함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 하나는 사실이다.
이전부터 게임계에서 촉발된 PC(정치적인 올바름)에 대한 논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한 일본인 게이머는 댓글을 통해 "PC에 대한 문제가 없었다면, 이런 거친 논쟁으로까지는 발전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했다.
결국, 논란에 대한 결론은 게임 본편에서 야스케에 대한 스토리를 얼마나 잘 녹여냈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쉽게 해결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정식 출시 후 본편에서 묘사된 야스케가 납득할 만한 서사를 보여준다면 논란은 어느 정도 사그라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섀도우스>는 2024년 11월 15일 출시될 예정이다.
유비소프트는 과연 본편에서 두 주인공을 어떻게 묘사할까? (출처: 유비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