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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이 너무해', "갑자기 청불 등급?"...도대체 무슨 일이

맹독성 가챠는 괜찮고, 슬롯머신 소재 게임은 안 되고?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준(음주도치) 2024-05-31 16:02:58

덱빌딩 로그라이크 게임 <집주인이 너무해> 개발사 트램펄린테일즈가, 한국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의 결정으로 인해 게임 서비스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5월 29일, 개발사 공식 블로그에는 "<집주인이 너무해>가 한국에서 (다시) 금지(ban)됐다"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엄밀히 따지자면 스토어에서 판매할 수 없게 된 상황은 아니고, 청소년이용불가로 갑작스러운 등급 조정이 이뤄진 것이다. 실제로 등급분류 결정서를 살펴보면, "간소화 등급분류 설문에 의해 결정됐으나, 연령등급 상향 요소가 확인돼 위원회 직권으로 다시 등급분류를 결정했다"고 명시됐다.


그런데 개발사가 게임이 '금지'될 것이라 미루어 짐작한 이유가 있다. 지난 해, <집주인이 너무해>는 "도박 정책을 준수하지 않는 콘텐츠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한국을 포함한 13개국에서 구글플레이 스토어 지역 차단을 당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너무해> 모바일 수익의 20% 이상이 한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개발사는 한국에서의 게임 금지 해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를 위해 게임물관리위원회에 심의수수료를 지불하며 GRAC 등급 분류를 받았고, 2024년 1월 1일 당시 12세 이용가로 분류되면서, 구글플레이 스토어 지역 차단이 해제됐다고 한다. 그런데 상황이 또 바뀐 것이다. 개발사는 블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최근 게임위로부터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으로 재평가됐다는 이메일을 받았으며, 이 결정에 동의하지 않으면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런데 이는 무시됐고, 이번 주에 애플 앱스토어에서 게임이 금지될 예정이며, 구글플레이 스토어에서도 다시 금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결정이 스팀 버전의 게임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라지만,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겠다."


앞서 설명했지만 한 번 더 명확히 밝히자면, 청불 등급으로 분류된다고 해서 게임이 스토어에서 내려가는 구조는 아니다. 개발자는 앞선 지역 차단 경험 등을 토대로 앞으로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지금과 같이 걱정 어린 주장을 하는 중이다.


<집주인이 너무해>(Luck be a Landlord)에 대한 게임물관리위원회 게임물등급분류 결정서
위원회 직권으로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으로 다시 등급분류를 결정했다.
 

지난 해, 지역 차단 이력이 있던 터라 개발사는 등급 분류에 민감한 상태다. (사진 출처: 트램펄린테일즈)

2024년 5월 23일, 개발사가 게임위에 보낸 메일 중 하나 (사진 출처: 트램펄린테일즈)

# 사행 행위 모사인가 아닌가

일단, <집주인이 너무해>라는 게임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집주인이 너무해>는 매 턴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슬롯머신에 등장하는 '심볼'의 종류가 달라지고, 그 심볼 효과에 따라 플레이 결과가 달라지는 덱빌딩 로그라이크 게임이다. 이때, 플레이 결과에 따라 '골드'를 얻는데, 집주인은 정해진 턴에 '집세' 명목으로 '골드'를 강탈한다. 실력과 운빨의 조합으로 집세를 갚는 게임이라고 보면 된다.


'로그라이크' 게임답게, 어떤 전략을 짜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상자' 모양의 심볼을 선택하면, 해당 심볼만으로는 어떠한 효과도 기대할 수 없으나, '열쇠' 심볼을 추가로 선택한 이후, 슬롯머신에서 두 심볼이 인접하게 배치되면, 평소보다 더 많은 엄청난 양의 골드를 얻을 수 있는 방식이다. 심볼의 효과는 '인접', '파괴', '스택' 등의 유기적인 관계로 얽혀있어 머리를 잘 써야 한다. 단순히 운에만 의존하는 게임이 아니라는 뜻이다.


게임위 관계자는 "<집주인이 너무해>의 기존 12세 이용가 등급은 간소화 등급분류 설문으로 진행됐으나, 우연성에 의존하는 플레이, 슬롯머신과 같은 사행 행위 모사가 포함되어 있다고 판단해,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으로 재분류했다"고 전했다. 


<집주인이 너무해>는 슬롯머신으로 심볼의 조합을 활용하는 덱빌딩 로그라이크 게임이다.

그렇게 버는 골드로 집주인에게 월세를 갚아야 한다.

심볼을 선택하고, 그 조합을 고민해야 하는 게임이다.
사행 행위를 모사하고, 우연성에 의존하는 게임인가? 보는 관점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어 보인다.


기자는 최근 포커(트럼프 카드) 룰을 활용한 디펜스 게임 개발사 A와 대화를 나눴다. 해당 게임에는 배팅 기능이 없고, 카드 활용 방식도 일반 포커와는 다르다. 구글플레이 스토어 자체 등급 분류 심사를 거쳐 12세 이용가를 받았는데, 사행성 요소가 없는 디펜스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게임물관리위원회 직접 심사는 (두려워서) 못 맡겼다"는 말을 전했다. 포커라는 소재만으로도 청불 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개발사 A는 등급 분류 문제가 아니어도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구글 애즈를 사용해서 광고를 하는데, 광고 게재가 중단되곤 했다. 구글 AI가 판단했을 때, 이 게임을 소셜 카지노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이의 신청을 하면, 잠깐 받아주고, 또 다시 광고 게재 중단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귀엽고 재밌는 게임인데​, (소재 때문인지) 정부 지원 사업이나 공모전에서도 서류 통과도 안 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3월에는 전 세계 게이머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던 포커 로그라이크 게임 <발라트로>가 영국 닌텐도 스토어를 비롯한 일부 국가 콘솔 상점에서 제거된 적이 있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던 것이다. 


'도박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발라트로>의 게임 등급은​ 3세 이상에서 18세 이상으로 사전 경고 없이 급격히 조정됐다. 이 게임 또한 배팅 기능이 없으며, 당시 배급사 플레이스택은 "도박 메커니즘이 포함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등급 분류 변경에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발라트로>
슬롯머신이나 포커 소재를 차용하면 모두 사행 행위 모사 게임인가? 글쎄...
다만, 교묘한 소셜 카지노 게임도 셀 수 없이 많다는 걸 감안하면, 
다소 보수적인 국내외 등급 분류 심사가 이해되기도 한다.

# "맹독성 가챠는 괜찮고?"

<집주인이 너무해> 개발사 트램펄린테일즈는 한국 시장에서 '청불' 등급으로 변경된 상황을 레딧에​ 공유했고, 이에 대해 많은 해외 게이머들이 의견을 남겼다.


642개의 추천을 받은 베스트 댓글은 "가장 지독한 과금으로 구성된 프리 투 플레이 게임이 가득한 한국에서, 이 게임이 위기를 겪는 사실이 웃기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댓글들은 "맹독성 과금으로 가득한 가챠 게임은 괜찮고, 정가를 주고 한 번 구매하는 것에 불과한 슬롯머신 게임은 안 괜찮은 거냐", "이 게임은 실제 슬롯머신과는 전혀 다르다"는 주장을 했다.


매운 BM과 사행성 요소를 직접 비교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해외 게이머들이 바라 보는 한국 게임 시장은 어떤 이미지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다른 레딧 댓글을 인용하며 기사를 마친다.


"도박을 주제로 한 게임은 억압하고, 도박의 모든 부정적 요소를 포함하는 실제 도박이 포함된 게임들은 허용하는 것은, 우선 순위에 상당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집주인이 너무해>가 한국 시장에서 갑작스레 '청불' 등급으로 변경됐다는 트램펄린테이즈의 레딧 게시글에 대한 반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