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언론인 출신 쇼 호스트 ‘제프 케일리’가 주관하는 서머게임페스트(SGF)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SGF의 등장은 꽤 최근 일이다. 지난 2021년 코로나19 유행으로 대형 오프라인 게임쇼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축소 운영되는 틈을 타 실험적으로 개최되었던 것이 그 시작이다. 지난했던 업계 사정으로 출품작이 부족했던 만큼 첫해는 아쉬운 평가를 받았으나, 강력한 업계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자랑하는 케일리 개인의 재간(?) 덕에 어느덧 자리를 잡은 모양새다.
실제로 올해 SGF 라인업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는 유수의 게임사들이 높아진 행사의 위상을 입증한다. 2K, 안나푸르나, 반다이남코, 캡콤, EA, 엠바크, 에픽게임즈, 레벨인피니트, 메타퀘스트, 넷이즈게임즈, 넷플릭스, 나이언틱, PS, 라이엇게임즈, 세가, 스팀, 슈퍼셀, 유비소프트, 워너브라더스 등 56개 기업이 참가를 확정했다.
다른 한편으로 주목할 것은 국내 게임사들의 면면이다. 엔씨소프트, 넥슨, 아이언메이스 등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넥슨 자회사 ‘엠바크 스튜디오’, 엔씨소프트 <쓰론 앤 리버티>의 글로벌 퍼블리셔 아마존 게임즈 역시 함께 출품할 예정이다.
SGF 2024 출품 기업 목록
세 국내 기업(과 엠바크 스튜디오)의 공통분모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글로벌 시장 공략’을 공공연히 목표로 하는 주력 타이틀을 하나씩 손에 쥐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로 주목해 볼 만한 건 역시 엔씨소프트의 장래를 적잖이 좌우할 <쓰론 앤 리버티> 글로벌 버전이다. ‘한국형 MMORPG’, 혹은 ‘리지니라이크’의 천편일률을 피하면서도 엔씨 고유의 제작 경험을 녹이기 위해 공을 들였으나, 국내에선 ‘이도 저도 아니’라는 평가와 함께 초반 모객에 실패했다. 해당 경험을 반영해 해외에서는 첫발을 잘 내딛는 것이 중요한 시점.
한편 지난 4월 스팀에서 북미, 유럽, 아태 지역 대상으로 진행된 CBT 반응은 ‘반반’으로 갈렸던 분위기다. 비주얼적 마감이나 던전의 만듦새, 공성전 콘텐츠는 호평이었으나, 전투 조작감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길드 가입 등 ‘단체 활동’의 강제성은 불호가 많았다. SGF에서 글로벌 유저 입맛에 맞는 피쳐를 충분히 티징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인다.
넥슨의 <퍼스트 디센던트>는 장르적 태생부터 글로벌 시장에 더 어울리는 타이틀이다. <데스티니 가디언즈>, <보더랜드>, <워프레임>, <더 디비전> 등으로 대표되는 ‘루트슈터’ 장르는 아직도 국내에선 비주류로 여겨진다.
확고한 팬덤 규모에 비해, 주류 타이틀은 <데스티니 가디언즈>와 <워프레임> 정도로 크게 좁혀지는 것이 루트슈터 씬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파이를 나눠 가지려는 여러 글로벌 기업들이 도전장을 내밀어 온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EA, 스퀘어에닉스, 워너브라더스, 베데스다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 모두 모두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렇듯 장르 전반이 쓸만한 대체제에 목말라 있는 만큼, 넥슨은 게임 노출 기회를 가능한 한 챙겨야 할 상황이다. 실제로 넥슨은 지난해 게임스컴에 <퍼스트 디센던트>를 출품하는가 하면, 디렉터 라이브 방송으로 해외 팬들과 소통하고, 외신 ‘게임 인포머’를 초청해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다각적 홍보에 힘쓰는 중이다.
한편 아이언메이스가 글로벌 무대에 주력해야 하는 사정은 세간에 잘 알려져 있듯 다소 특수하다. 아이언메이스는 넥슨의 내부 프로젝트를 외부 무단 반출해 <다크 앤 다커>를 제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현재 영업비밀 및 저작권 침해금지무단도용 여부를 두고 넥슨과 법정 분쟁 중이며, 패소할 경우 <다크 앤 다커>의 국내 서비스를 금지당하게 된다.
그러나 논란이 대두하기 이전에도 아이언메이스는 주로 해외 시장을 대상으로만 운영과 소통을 계속해 궁금증을 키웠던 바 있다. 공식 홈페이지의 기업 이념 소개에서 ‘한국 게임사들의 약탈적 관행’을 비판한 사실이 알려져, 이것이 한국 시장 배제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넥슨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국제 게임쇼 출품은 얼마큼의 글로벌 노출과 흥행을 보장해 줄까? 정량적 분석은 어렵지만 그 효과를 대략 짐작해 볼 긍정·부정 사례는 최근 국내에서도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23년 <퍼스트 디센던트>와 함께 게임스컴에 출품한 <워헤이븐>의 사례를 살펴볼 만하다.
<워헤이븐> 역시 ‘루트슈터’와 마찬가지로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많은 인기를 누리는 ‘백병전 PvP’ 장르의 멀티플레이 게임으로서 글로벌 시장을 노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워헤이븐>은 스팀 플랫폼 기준 1,000명 안쪽의 동시 접속자 수를 유지하던 끝에 지난 4월 5일을 마지막으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실패 원인으로는 장르 선정 실패와 지나친 진입장벽 완화 시도가 꼽힌다. ‘루트슈터’와 비교해서도 더욱더 마니악한 장르인 점을 의식한 결과인지, 게임은 테스트를 거듭하며 점차 대중화 노선을 밟아 나갔다. 불행히도 이것이 마니아와 대중 모두를 놓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
반대 예시로는 게임스컴에서 화제를 모았던 <P의 거짓>을 꼽을 수 있다. 게임이 공개된 이후 해외 게이머 상당수가 개발사 네오위즈에는 ‘낯설다’는 반응을 보였던 점에서, 게임스컴 출품이 게임의 글로벌 홍보에 도움이 됐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다.
한편 <P의 거짓>은 100만 장 이상 판매, 누적 이용자 700만을 기록하는 등 흥행했는데, 여기에는 ‘국내 최초 게임스컴 어워드 3개 부문을 수상’이라는 변수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수상 사실 자체와 수상자(제작진) 인터뷰 덕분에 ‘소울라이크’ 팬덤에 게임의 매력을 어필할 기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두 사례의 상반된 결과에서 알 수 있듯, 국제 게임쇼 출품을 통한 홍보 효과를 ‘글로벌 흥행’으로 연결 짓는 열쇠는 결국 게임 자체의 시장성이다. 올해 충분한 매력을 지닌 국내 게임들이 <P의 거짓>의 뒤를 이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