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소통과 발 빠른 대응. 라이브 서비스 게임 운영사의 두말할 나위 없는 필수 소양이다. 대형 라이브 게임 간 각축이 갈수록 격화되는 요즘의 시장환경 속에서 운영 역량의 중요성은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때로는 게임의 흥망을 뒤집을 만큼이다. 초기 혹평에 시달렸으나 반등한 게임(노맨즈 스카이, 사이버펑크 2077), 반대로 폭발적 인기를 장기화하지 못한 게임(오버워치 2) 모두 그 엇갈린 운명의 분수령에는 운영의 퀄리티가 자리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출사표를 던진 넥슨 신작 <퍼스트 디센던트>의 미래를 점치는 데 있어서도, 당장의 유저 만족도 만큼이나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개발진의 운영 기조다. 최근 단행된 핫픽스 1.0.2 패치는 이를 관찰할 중요한 기회였다. 패치 내용과 커뮤니티 반응을 살펴봤다.
단적으로 요약하면 국내외 유저들은 이번 패치에 긍정 반응을 보내는 중이다. 게임을 향한 개선 요구 상당 부분을 곧장 반영했거나 적어도 관련하여 개선을 약속했다는 점에서다.
패치노트 최상단에 언급된 ‘어려움 난이도 침투작전’의 ‘매치메이킹’ 기능 추가, 그리고 네임드 몬스터의 ‘면역 구체’ 개선사항 등에서부터 이러한 개발진의 태도는 잘 드러난다.
먼저 ‘어려움 난이도 침투작전’은 게임 후반에 지속적으로 이용하게 되는 주요한 아이템 획득처 중 하나다. 그러나 공개 매치(매치메이킹)를 지원하지 않아 팀메이트를 별도로 구하지 않는 한 혼자 즐겨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 경우 콘텐츠의 파밍 효율이 낮아진다. 캐릭터 육성을 심화해야 할 시점에 게임플레이를 가로막는 중요한 장애물이 등장하는 셈이어서 불만은 컸다. 앞으로는 매치메이킹이 지원되면서 반복 클리어를 통한 아이템 획득도 수월해질 예정이다.
두 번째 패치에 언급된 ‘면역 구체’는 네임드 몬스터 중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무적 메커니즘을 말한다. 네임드 몬스터 중 상당수는 체력이 일정량 소진되고 나면 머리 위에 구체 형태의 방어 드론을 띄우면서 무적 상태에 돌입한다. 공격을 이어가려면 구체 드론을 먼저 파괴해 무적 상태를 해제해야만 한다.
유저들은 ‘면역 구체’ 콘텐츠가 게임 전반에 걸쳐 계속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에 불만을 품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특정 몬스터의 경우 구체를 ‘등장 순서대로만’ 파괴할 수 있는 규칙까지 추가되어 있어 더 반발이 일었다. 해당 사실을 모르는 유저가 적지 않아 공개 매칭에서는 공략 실패가 잦아졌기 때문.
이에 개발팀은 가장 문제가 됐던 ‘순차 파괴’ 기믹을 최우선적으로 삭제했다고 밝혔다. 더 중요한 사실은 네임드 몬스터 공략 패턴이 전반적으로 단조롭다는 원론적 지적 또한 외면치 않고 개선을 약속했다는 점이다.
유저 반감이 심한 면역 구체 메커니즘
개발진은 “새로운 패턴이 개발되는 대로 기존 네임드 몬스터의 패턴을 차례로 변경하겠다. 네임드 몬스터는 어려움 난이도와 특수작전에서도 계속 등장하므로 패턴 다양성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마찬가지로 유저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암호화 보관함’ 콘텐츠 역시 수정됐다. 암호화 보관함은 필드의 고정된 위치 중 하나에서 무작위로 소환되는 일종의 아이템 상자다. ‘코드 분석기’라는 아이템을 소모해 미니게임을 수행한 뒤 열 수 있다. 후반부에 필요한 희귀 기초 재료가 제공되기 때문에 필수로 거쳐 가게 되는 콘텐츠이기도 하다.
문제는 ‘암호화 보관함’의 소환 위치가 일반적 게임플레이 도중에는 발견할 수 없을 만큼 외진 장소일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매번 여러 숨겨진 장소를 확인하려면 게임플레이의 흐름이 끊어지기 쉽다. 더군다나 핵심 콘텐츠인 전투와도 크게 동떨어져 있는 메커니즘이라는 점에서 많은 유저가 개선을 요구했던 상황이다.
개발팀은 암호화 보관함에서 한 번에 획득되는 재료 드롭 확률을 기존 대비 3배로 늘려 보관함 탐색의 필요성을 대폭 줄였다. 더 나아가 필드 임무 및 침투작전에 등장하는 ‘정예병 벌거스’ 몹 유형이 보관함에서 나오던 재료를 드롭할 수 있게끔 설정해 사냥을 더 선호하는 유저들의 불만을 완화했다.
유저들은 암호화 보관함의 소환 위치를 공유하고 있다. (출처: 퍼스트 디센던트 레딧)
패치노트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마지막에 적힌 ‘디렉터의 추가 코멘트’다. 국내외 <퍼스트 디센던트> 커뮤니티에서 오가고 있는 부정적 전망, 의혹 등에 대해 답변을 남기면서 유저 동향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넥슨은 자사 게임에 대한 유저 반응을 확인하는 인공지능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 운영해 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코멘트에서는 크게 두 가지 이슈를 다루고 있다. 첫째는 인게임 무기 ‘조련사’와 캐릭터 ‘글레이’의 ‘무한 탄창 빌드’에 대한 유저들의 부정적 전망이다. 먼저 ‘조련사’는 사용 캐릭터 불문 후반부 필수 무기로 꼽힐 정도로 좋은 성능과 범용성을 자랑한다. 한편 ‘무한 탄창 빌드’는 강력한 ‘런처’류 무기를 무한으로 발사할 수 있어 활약도가 매우 높은 빌드다.
<퍼스트 디센던트>와 같은 루터 슈터 혹은 ARPG에서 ‘메타 다양성’은 게임 재미에 직결되는 요소로 통한다. 따라서 이들 장르 운영진은 특정 메타가 득세하는 상황을 경계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상당수 게임이 그 해법으로 메타 빌드/무기의 너프를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퍼스트 디센던트> 패치노트에서 개발진은 ‘너프 지양’ 노선을 드러내 이목을 끈다. 디렉터는 “해당 메타는 매우 강력하지만 개발팀의 계획 범위 안에 있으므로 너프 계획은 없다. 또한 조련사보다 강한 무기와 글레이의 무한 탄창에 버금가는 빌드는 더 많이 존재하니 마음껏 즐겨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게임 운영에 대한 의혹에 정면 대응한 점도 눈길을 끈다. 디렉터는 게임의 아이템 드롭 확률에 대해 “다양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의혹과 달리) <퍼스트 디센던트>에는 변동 확률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게임에 표시된 확률을 정직하게 사용하고 있다. 개발팀이 서버 전체 획득량을 검토한 결과, 표시된 확률대로 드롭되는 것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유저들을 안심시킬 방안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디렉터는 “현재 콘텐츠별 아이템 드롭량 공개 등 개발팀의 진정성을 커뮤니티가 공감할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게임 플레이에서 파밍 경험을 개선할 방안도 준비 중이다. 앞으로도 <퍼스트 디센던트>는 투명하고 솔직하게 소통하겠다”고 다짐했다.
'다른 강력한 빌드도 많다'며 유저들을 도발(?)하는 개발진이 인상 깊다는 레딧 유저
<퍼스트 디센던트> 레딧, 그리고 국내 관련 커뮤니티는 모두 이번 패치에 대해 ‘기분 좋게 놀랐다’는 분위기다. 정규 업데이트가 아닌 비교적 소규모의 핫픽스 패치인데도 많은 문제가 해결된 것에 감탄하는 반응이다. ‘내가 알던 넥슨이 맞냐’는 반응이 동일하게 나타나는 점도 흥미롭다.
예를 들어 관련 소식을 전한 게시글에 한 레딧 유저는 “이게 정말 넥슨이 맞나? 아직 조심스럽지만 감명받았다”고 이야기하며 955개의 업보트(추천)를 받았다. 다른 유저는 “솔직히 출시 초기 피드백에 있어 유저가 희망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줬다”고 촌평해 700개의 업보트를 받았다.
무적 구체의 순차 파괴 메커니즘 삭제 소식에 “우리(유저들)가 해냈다”고 이야기한 유저도 있다. 커뮤니티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된 데에 대한 기쁨의 표현이다. 게임 전반에 대한 희망적 관측도 나온다. 한 유저는 “개발진이 유저들 말을 들어서 매우 기쁘다. 이렇게 계속 잘 한다면 넥슨은 이 게임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유저들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관련 커뮤니티에서 유저들은 “넥슨 맞냐”, “패치 방향이 올바르다”, “왜 패치를 잘하냐”, “이야기 나온 문제들을 왠만큼 다 고쳤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이번 핫픽스에 대한 유저 전반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다만 넥슨게임즈가 이를 장기적 신뢰로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기민한 움직임을 계속해 보여줘야 하는 숙제가 있다. 이번 패치 전까지 상당수 유저들은 출시 이전 플레이테스트에서 지적된 일부 문제가 수정되지 않고 출시된 점을 들어 게임에 의심의 눈길을 보냈던 바 있다.
"솔직히 넥슨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퍼스트 디센던트>에 있어선 아직까지 긍정적이고 투명한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 한 레딧 유저의 평가. 개발진이 앞으로 노력해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 잘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