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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게임스컴 2024] 배틀그라운드의 '원조격 모드'를 탄생시킨 게임의 노하우

ARMA가 20년 넘게 '게임 모드' 생태계를 키워나간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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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주(사랑해요4) 2024-08-20 04:45:13
'게임 모드' 생태계를 위해 중요한 것은?

최근 게임 업계의 화두 중 하나는 '유저 제작 콘텐츠'일 것이다. 게이머가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게임을 즐기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유저가 게임의 내용을 직접 수정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드'(MOD)가 대표적이다.

게임 모드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 됐다. 그러나, 사람들이 '게임 모드'를 만들고 공유하며 무언가 새로운 것을 끝없이 창조해 나가는 생태계를 조성하기란 쉽지 않다. 여러 게임이 모드 제작을 허용하고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며 참여하고 있는 게임 모드 생태계를 완벽하게 구성한 게임은 극소수다.

1999년 설립된 체코의 게임 개발사 '보헤메안 인터랙티브'는 유저가 직접 만들고 공유하는 게임 모드 생태계를 조성해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의 대표작은 현실적인 밀리터리 게임을 표방한 <암드 어썰트>다. 강연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하자 모드를 활용해 가짜 뉴스가 제작돼 유포됐을 정도다. (보헤미안은 이에 별도로 공지사항을 제작해 가짜 뉴스 판독법을 안내하기도 했다.)

참고로 <암드 어썰트>에서 탄생한 가장 유명한 모드는 <배틀그라운드>와 같은 배틀로얄 장르의 원류로 여겨지는 <DayZ>다. 유저 모드로 시작해 보헤미안 인터랙티브가 공식 스탠드얼론 게임으로 출시했다.

그렇다면 게임 모드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 관련해 데브컴 2024에서 보헤미안 인터랙티브의 모드 관련 책임자 '나틸라 아가포노바'가 강연했다. /독일 쾰른=김승주 기자


강연하는 나틸라 아가포노바


# 20년 넘게 모드를 지원해 온 <암드 어썰트>

보헤미안 인터랙티브는 약 25년 간 모드 생태계를 키워 왔다.

이들의 게임에 첫 모드가 생겨난 것은 약 2001년부터다. 당시 출시된 <ARMA: 콜드 워 어썰트>(변경 전 게임명은 '오퍼레이션 플래쉬 포인트')의 레벨 편집기와 시스템을 사용해, 유저들이 직접 게임을 리버스 엔지니어링해 모드를 만들어냈다. 

이에 보헤미안은 2003년 경부터 모드를 정식 승인했고, 이후의 게임 개발에는 항상 '유저 모드'에 대한 부분을 신경 써 왔다. 2013년 출시한 <아르마 3>는 워크샵 기능을 통해 유저가 더욱 손쉽게 모드를 만들고 배포할 수 있도록 했으며, 2017년에는 공식 모드 콘테스트를 열어 모더(모드 제작자)가 게임의 DLC 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담당자가 설명한 보헤미안의 모드 생태계

그렇다면 보헤미안은 '모드'의 개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강연자는 창의성, 호기심, 공동체가 모드의 핵심 속성이라고 했다.

게임 모드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비유로 조금 더 쉽게 풀어내면 이렇다. 그냥 게임이 '책'이라면, 모드는 '북 바인더'다. 책은 구매한 사람이 스스로 내용을 바꾸거나 할 수 없지만, 북 바인더는 페이지의 배치 순서, 색깔, 내용 등을 원하는 대로 자신이 꾸밀 수 있다. 게임 모드도 같다. 게이머 스스로, 원하는 대로 게임의 콘텐츠를 커스터마이징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레고'로 비유할 수도 있다. 레고 블록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듈화'된 레고 블록을 어떻게 조립하냐에 따라 나만의 디자인을 가진 조립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모드 커뮤니티는 '킨더 서프라이즈 에그'(랜덤한 장난감이 들어 있는 달걀 모양의 초콜릿)에 비유할 수 있다. 킨더 서프라이즈 에그가 잘 팔린 이유는, 에그를 사줌으로써 부모님들은 새로운 장난감을 아이들에게 사 제공할 수 있고, 아이들은 에그를 구입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드를 공유할 수 있는 워크샵이나 커뮤니티 역시 비슷한 개념이다. 게임 유저들은 모드 커뮤니티를 통해 매번 새로운 즐길 거리를 찾을 수 있다.




#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

핵심 원칙을 지키며 모드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방법은 이렇다.

- 사용하기 쉬운 모드 제작 툴 제공

모드를 만들기 위해선, 당연히 모드를 개발할 수 있는 툴이 필요하다. <암드 어썰트> 시리즈는 사용하기 쉽게 약간의 개조를 거친 모드 제작 툴을 유저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제 3자 플러그인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모드 제작자는 '개발자'까진 아니기에 3D 제작에 무료 프로그램인 '블렌더'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개발자가 사용하는 전문적인 유료 프로그램을 구매하면서까지 모드를 제작하지는 않는다. <암드 어썰트>의 모드 제작 툴은 이런 프로그램에서 만든 것들을 게임이 사용하는 엔진에 쉽게 전송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모드 제작자가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유로 프로그램을 찾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모드 제작자가 원하는 것,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

툴을 '모듈화'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모드 제작자가 "게임에서 캐릭터가 점프하는 높이를 3배 늘리고 싶다"거나 "단순히 텍스쳐를 교체"하기 위해 C++등의 프로그래밍 언어와 개발 툴에 대한 전문적인 사용법을 알아야 한다면 모드 제작이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툴을 모듈화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유저가 다루고 싶은 부분을 최대한 손쉽게 만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모드 제작에 대한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 조성이나, 모드 제작 방법을 안내하는 지원 같은 것도 중요하다.

- 모드 커뮤니티를 조성하기 위해 중요한 것

​커뮤니티를 조성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모더는 당연히 자신의 모드가 널리 알려지고, 많이 사용되고,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길 바란다. 게임 모드는 돈을 벌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더가 자신의 모드를 공유하고 알릴 수 있는 워크샵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워크샵에서는 세심한 UI 제작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모드를 쉽게 필터링하고 찾을 수 있도록 하고, 모더가 만든 것들이 얼마나 많이 추천을 받았는지 등을 잘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모더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다. 모더의 적은 '게임 업데이트'다 모드는 유저가 직접 게임 파일을 수정해 즐기는 콘텐츠인 만큼, 게임에 대규모 업데이트가 진행되면 모드를 다시 만들거나 수정해 줘야 하는 경우가 항상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헤미안은 업데이트가 있을 때마다 게임의 '어떤 것'이 바뀌는지, '왜' 수정을 하는지 모더들에게 세심하게 공유하고 있다. 한 예시로 차량의 물리와 관련한 업데이트가 진행될 때 모더들에게 업데이트의 이유를 세심하게 설명하는 과정이 있었고, 모더들 역시 수긍함으로써 게임이 보다 개선될 수 있었다. 모더들에게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아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의견 수렴도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드라면, 이를 고려해 업데이트를 진행할 필요도 있다. 수많은 서버에서 사용하는 모드라면, 여기에 대한 통계와 특정한 것들을 수정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충돌에 대해 분명히 알아 둬야 한다.




# 주의해야 할 점 

게임 모드가 비단 긍정적인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상되는 문제점도 있으며, 이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 모드에 대한 모니터링

때로는 불법적이거나 악의적으로 만들어진 모드를 곧바로 삭제할 수 있는 기능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한 명문화된 규정도 필요하다. 모두가 긍정적인 마음으로 게임 모드를 제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드는 유저가 직접 만드는 만큼, 개발사가 선을 그어 주어야 한다. 선을 긋지 않으면 모드는 저작권 문제 등을 무시한 채로 "생각한 것을 모두 할 수 있으면 정말 쿨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끝없이 뻗어나간다. 커뮤니티에서 '트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만 행동한다.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게임 모드에 대한 명문화된 규정을 명시해 놓고, 이를 명확히 따라야 문제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


규정은 저작권 문제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명확한 규정이 없다면 모드 창작자끼리 서로의 콘텐츠를 무단으로 가져가 사용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보헤미안 인터랙티브도 모드는 '유저의 창작물'이라는 규정을 명시해 놓고, 유저가 만든 모드의 콘텐츠를 게임 본편에 상의도 없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사람들이 콘텐츠에 대한 권리와 소유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게임 모드에는 콘텐츠를 추가하는 것 말고도 직접 자신들의 여유 시간을 모드 제작에 활용해 '버그 수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 커뮤니티와의 충돌 방지

개발사가 커뮤니티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면, 모드 커뮤니티는 지속성을 잃고 사라질 수 있다. 모드 생태계가 꾸준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커뮤니티와의 지속적인 소통이 중요하다. 보헤미안은 종종 커뮤니티와 라운드 테이블 비슷한 자리를 마련해 이들의 의견에 대해 직접 답변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발사가 '노력' 하고 있다는 점을 커뮤니티가 알도록 해야 한다. 강연자와 같이 게임 모드를 담당하는 책임자를 별도로 지정해 놓은 이유다.

담당자가 커뮤니티와 개발자 간에 트러블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율하는 것도 중요하다. <암드 어썰트> 시리즈는 25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만큼 게임에 깊은 통찰력을 가진 유저들도 상당하다.

반대로 개발자는 게임 개발에 대한 전문가인 만큼,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의견에 대해 "왜 이것도 몰라?"라고 생각할 수 있다. 커뮤니티와 소통할 개발자에게 교육을 통해, 커뮤니티의 특성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좋은 스승'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미리 인지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 않는다면 언젠가 커뮤니티에 큰 파장이 생기고 유저들이 등을 돌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강연자는, 게임 모드가 유저들의 순수한 창작성과 헌신에 의존하는 만큼, 그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했다. 그렇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고, 관계가 틀어지지 않도록 서로 존중하고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