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사건사고에 게임이 관련되면서 게임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지난 11월 지스타 2010 개막 직전 부산에서 발생한 중학생 친모 살해 사건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게임이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2월 28일에는 PC방에서 10시간 넘게 슈팅게임을 즐기던 한 대학생이 사망했다.
사건사고의 원인을 게임으로만 몰아가는 일부 언론들의 보도는 논란의 대상이지미나, 일부 사건은 게임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여론이 점점 나빠지는 상황이다.
일련의 사건사고를 근거로 들면서 목소리를 높인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에 16세 미만 강제 셧다운(0시~6시 이용 제한) 제도를 추가했고, 국회 법사위 통과를 앞두고 있다. 게임업계는 청소년 보호에서 시작된 이슈가 점차 게임과몰입으로 확대되는 모습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 게임을 향한 시선, 짧은 시간에 악화
이런 가운데 KBS 2TV 시사고발 프로그램 <추적 60분>이 게임 과몰입 이슈를 취재하고 있어 게임업계가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추적 60분> 취재팀은 국내 주요 게임업체에 접촉해 게임 과몰입 관련 자료를 요청하면서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뉘앙스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추적60분> 홈페이지에는 자녀의 게임 과몰입 사례를 제보 받고 치료를 돕겠다는 공지문이 떠 있다.
게임업계는 셧다운 제도가 담긴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 통과를 위한 여가부의 움직임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실제로 여가부 백희영 장관은 지난 11월 29일 방송된 KBS 11시 뉴스에 출연해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이 지난 4월 통과됐다면 부산에서 일어난 중학생 친모 살인사건은 일어 나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후 백희영 장관은 국회 문방위 정병국 위원장이 주재한 ‘청보법을 통한 문화산업 규제 문제에 대한 토론회’에는 불참하면서 YTN, KBS 등에 출연해 게임에 관한 부정적인 의견을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법안을 상정하고 이를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와 대립했던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의 경우 여가부에서 여론의 힘을 얻기 위해 백희영 장관이 직접 언론에 나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최근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게임에 부정적인 사건사고가 계속 알려지는 가운데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에 추가될 인터넷게임 강제 셧다운의 국회 통과는 이미 결정된 분위기다.
■ 16세 미만은 여가부, 16세~18세는 문화부가 규제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문화부와 여가부는 16세 미만 강제 셧다운에 합의한 상태다. 당초 문화부는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에 담긴 게임 규제에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나 여가부 백희영 장관(오른쪽 사진)이 KBS에 출연해 부산 중학생 친모 살인사건을 언급하면서 여론이 악화되자 두 부처의 장관이 모여 16세 미만이라는 기준으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내년 초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3개월의 공표기간을 가진 후 모든 인터넷 게임은 16세 미만 강제 셧다운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이와 함께 문화부가 준비 중인 게임산업 진흥법 개정안의 새로운 규제에도 따라야 한다.
문화부는 지난 17일 ‘2011년 업무보고 브리핑’에서 게임산업 진흥법 개정안에 ‘게임 과몰입 예방조치 의무화’와 ‘선택적 셧다운 제도’를 넣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게임업체는 청소년이 회원에 가입할 경우 반드시 친권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아울러 친권자가 요청할 경우 자녀의 게임 이용시간과 결제내역 등을 알려줘야 한다(예방조치 의무화). 또, 친권자가 요청할 경우 16세 이상 18세 미만 청소년의 심야 게임 이용을 차단해야 한다(선택적 셧다운).
결국 16세 미만 청소년의 심야 게임 제한(강제 셧다운)은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에 들어가고, 16세 이상 18세 미만 청소년의 심야 게임 제한(선택 셧다운)은 게임산업 진흥법 개정안에 들어간다. 두 부처의 규제를 동시에 받게 되는 셈이다.
한편 법안에 ‘인터넷 게임’이라고 명시된 만큼 여가부는 형평성을 고려해 온라인게임 외에 인터넷과 연결되는 콘솔, 스마트폰 게임에 대해서도 강제 셧다운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그러나 온라인게임과 다른 시스템을 가진 콘솔 및 스마트폰 게임 등에 대해 어떻게 셧다운 제도를 도입할지 대책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특히 여가부의 게임 규제 정책은 당초 청소년 보호 목적에서 게임 유통 자체를 차단하자는 취지로 점차 변질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문화예술산업연합이 주관한 토론회도 큰 의미를 갖지는 못했다.
■ 게임업계의 대책은? “준비도, 근거도 부족”
이런 상황에서 게임업계는 속수무책으로 여론 악화와 이중 규제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게임업계도 다양한 자정 노력을 하고 있지만,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업계 차원에서 준비가 미흡했던 것은 사실이다. 게임 과몰입 예방 및 게임의 순기능을 입증할 연구나 자료도 너무 부족하다.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더 이상 수출 기여도 등 산업 역량을 내세우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동안 게임업계는 규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경제(수출) 기여도를 내세웠다. 유해매체가 아니라 하나의 역량 있는 산업으로 인정해 달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도 경제 기여도를 강조했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산업 기여도를 내세워 게임 과몰입 예방 시스템 적용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지 않았고, 한 해 4조 원에 이르는 산업이면서도 사회환원에는 소극적이라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여가부가 주요 언론 등을 통해 움직이는 동안 문화부는 한 일이 없다. 게임업체들도 언론 플레이 및 정부 로비의 역량이 없다. 이제 청소년 보호법의 이중규제를 받는 것을 넘어 게임이 유해매체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서 관계자는 “앞으로는 업계가 힘을 모아 보다 체계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게임 과몰입 사후 대책 및 다양한 연구로 게임의 순기능을 알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고칠 바에는 제대로 고쳐야 한다”고 밝혔다.
문화부는 2011년에 게임 과몰입 상담센터를 기존의 16개에서 80개 이상으로 늘리고, 게임문화 지도자 교육과정을 개설해 600명 이상의 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다. 게임문화재단도 2011년 상반기 전국 5개 권역에 게임 과몰입 예방치유 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다.
2009년 게임산업협회 주도로 오픈한 그린게임 캠페인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