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의 지적재산권을 둘러싼 분쟁은 올해 게임계의 핫이슈 중 하나다. 지난 4월 블리자드의 마이크 모하임 대표가 협상중단을 선언한 후 블리자드와 한국e스포츠협회(이하 KeSPA)는 연이어 기자회견을 열고 설명을 발표하며 서로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공공재 발언과 NDA(비밀유지협약)를 무시한 협상내용 공개 등 초강수들이 오간 e스포츠 분쟁은 정부까지 중재에 나서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리그 강행과 소송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2010년 게임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사건’이었던 e스포츠 분쟁의 지난 이야기와 앞으로의 전망을 디스이즈게임에서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분쟁일지
2006년 11월 1일 KeSPA 연말 회의에서 중계권 공개입찰 방식 합의 2007년 2월 5일 KeSPA에서 IEG와 프로리그 중계권 계약. 방송사 반발 3월 16일 KeSPA 주도로 일부 게임단 MBC게임 개인리그 예선 보이콧 20일 온게임넷과 MBC게임, KeSPA 중계권 요구 수용 9월 중순 블리자드, 방송사 및 KeSPA와 스타리그 협상 시작 2008년 2월 17일 그래텍, 블리자드 공인 스타리그 ‘곰TV 인비테이셔널’ 개최 4월 13일 그래텍, 곰TV 클래식으로 리그 이름 바꾼 후 2009년까지 진행 2009년 9월 중순 그래텍, 게임단들의 잇단 불참으로 곰TV 클래식 개최 포기 2010년 4월 25일 블리자드 마이크 모하임 대표, KeSPA와 스타2 협상 중단 발표 5월 3일 KeSPA, 협상 내용 공개하며 블리자드 비판 26일 블리자드, 그래텍과 e스포츠 독점계약 스타리그는 8월까지만 묵인하겠다고 선언 이후 협상은 그래텍에서 담당 31일 KeSPA 기자회견, e스포츠 공공재 발언과 블리자드 비판 7월 20일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협상 중재자로 참가 8월 10일 온게임넷, 그래텍과 대한항공 스타리그 방송권 계약 (개인리그를 위한 단발 계약) 10월 7일 국회에서 e스포츠 콘텐츠 공청회 개최. e스포츠법 입법 시사 12일 그래텍, 프로리그 강행할 경우 협상은 없다고 최후 통첩 16일 KeSPA, 프로리그 10-11시즌 강행 그래텍 이에 맞서 중계료 1억 원 조건 공개 23일 블리자드 폴 샘즈 COO, 블리즈컨 2010에서 MBC게임 대상으로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발표 26일 MBC게임 개인리그 MSL 강행 27일 KeSPA, <스타크래프트> 외의 게임도 협상 대상이라고 주장 11월 1일 블리자드와 그래텍, MBC게임에 소송 제기 3일 온게임넷 개인리그 스타리그 2010 강행 4일 블리자드와 그래텍, 온게임넷에 소송 제기 12월 2일 폴 샘즈가 방한해 기자회견 진행 한국만 e스포츠 분쟁을 겪고 있다며 비판 10일 블리자드&그래텍 VS MBC게임 지적재산권 침해 소송 1차 공판 진행 2011년 1월 28일 2차 공판 진행 예정
■ 지금까지의 이야기
1. 논란의 발단
논란의 시작은 2006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KeSPA는 e스포츠 리그 활성화를 위한 회의 끝에 2006년까지 일괄적으로 배포하던 중계권을 공개입찰 방식으로 변경할 뜻을 밝힌다. e스포츠 분쟁의 시초가 된 중계료의 도입이다.
이듬해 게임방송사 MBC게임과 온게임넷이 중계권 입찰에 불참한 가운데 KeSPA는 인터내셔널이스포츠그룹(이하 IEG)과 중계권을 계약한다. IEG는 이후 2006년 이스트로 게임단을 설립하며 e스포츠 팀으로도 참가했다.
양대 방송사는 즉각 반발했다. 하지만 프로리그의 진행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고 KeSPA의 주도로 일부 게임단이 MBC게임 개인리그 예선현장에서 무단으로 퇴장하는 등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자 결국 두 방송사는 중계권 요구를 수용했다.
이후 KeSPA는 IEG를 통해 양대 방송사에게 중계료를 받아 왔으며, 그중에 일부를 방송 제작비 명목으로 방송사에 다시 지원하는 재투자 방식을 취한다. 블리자드가 중계료에 대한 협상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2. 그래텍의 첫 <스타크래프트> 공인리그 개최
2008년 그래텍은 ‘곰TV 인비테이셔널’이라는 이름으로 블리자드의 승인을 받은 첫 공인리그를 개최한다. 이후 그래텍은 리그 이름을 ‘곰TV 클래식’으로 바꾸고 정규리그를 열었지만 기존의 프로게임단 및 KeSPA와 마찰을 일으킨다.
결국 일정이 빡빡하다는 이유로 매년 곰TV 클래식에 참가하지 않는 팀이 늘어났고 2010년에는 모두 7개 팀이 불참을 선언하면서 그래텍은 곰TV 클래식 시즌4 개최를 포기한다.
3. 협상 결렬과 비판의 시작
2010년 4월 25일 마이크 모하임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KeSPA 사무국과 협상 중단을 발표한다. 3년 동안 지적재산권 협상을 위해 노력했지만 합의점을 찾을 수 없다는 게 이유다.
마이크 모하임의 발표는 e스포츠 분쟁의 도화선이 됐다. KeSPA는 일주일 뒤 블리자드와의 협상내용을 공개하며 블리자드를 비판했다. 블리자드의 무리한 요구 탓에 협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블리자드는 그래텍과 e스포츠 독점계약을 맺고 직접적인 협상에서 한 발 물러났지만, KeSPA는 기자회견을 열고 e스포츠 공공재 발언까지 꺼내며 블리자드에 대한 비판을 이어 갔다. 블리자드 역시 수 차례의 인터뷰와 기자간담회에서 KeSPA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바통을 넘겨받은 그래텍이 KeSPA와 계속 협상했지만, 의견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 사이 개인리그 개막을 앞둔 온게임넷이 그래텍과 방송권 계약을 맺기도 했지만 ‘대한항공 스타리그’ 한 시즌에 국한된 협상이었을 뿐이었다.
10월이 되도록 협상이 타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래텍은 10-11 프로리그가 강행될 경우 더 이상 협상하지 않겠다는 최후 통첩을 건넨다.
그러나 KeSPA는 프로리그 새 시즌을 강행했고, MBC게임의 개인리그도 시작됐다. 결국 블리자드와 그래텍은 MBC게임과 온게임넷에 지재권 침해 소송을 걸었다. 12월 10일 첫 공판은 큰 의미 없이 끝났고 2011년 1월 28일 두 번째 공판이 예정됐다.
3년 독점계약서를 주고받는 블리자드 한정원 북아시아 대표와 그래택 배인식 대표.
■ 쟁점은?
1. 금액
e스포츠 분쟁이 끝나지 않는 이유는 양측이 내세우는 조건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문제는 금액이다. 블리자드와 그래텍은 리그당 중계료 1억 원, 주최로 1 원을 요구했다.
KeSPA는 블리자드와 그래텍이 제시한 금액이 너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리그와 프로리그를 더하면 1년치 중계료가 최대 7억 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금까지 KeSPA가 거둔 중계료 중 대부분은 방송 지원비로 재투자된 반면 블리자드와 그래텍에는 이런 지원을 바라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다.
이에 대해 블리자드와 그래텍은 1억 원의 금액이 프로리그에만 국한된 것인 만큼 KeSPA의 주장은 맞지 않으며, 중계료 역시 KeSPA가 징수하던 것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라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MBC플러스미디어 조정현 센터장이 밝힌 주요 리그와 중계권료 지급 내역.
2. 2차 콘텐츠 소유권
2차 콘텐츠, 즉 <스타크래프트> 경기 영상의 소유권도 문제다. 만약 KeSPA가 2차 콘텐츠의 소유권을 갖는다면 블리자드와 그래텍은 <스타크래프트>의 영상이 원하지 않는 곳에서 사용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어진다. 이미 KeSPA에 의해 중계권 무단 판매를 경험한 블리자드로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반면 블리자드와 그래텍이 소유권을 갖고 있다면 KeSPA는 앞으로 모든 <스타크래프트> 경기 영상을 활용할 때 블리자드와 그래텍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절차가 복잡해지는 것은 물론 다른 게임 영상과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양대 방송사의 프로그램 중 <스타크래프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원활한 방송을 위해서라도 2차 콘텐츠 소유권을 양보하기는 어렵다.
실제 협상에서도 KeSPA는 중계료를 대폭 올리는 대신 2차 콘텐츠 소유권을 완전히 확보하기를 원했다. 반면, 블리자드와 그래텍은 2차 콘텐츠 수익을 보장해 주고 중계료도 낮춰 주는 대신 소유권은 자신들이 갖기를 제안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차 콘텐츠의 소유권에 따라 ‘칼자루’를 쥐는 쪽이 달라지기 때문에 양측 모두 금액은 양보하더라도 2차 콘텐츠의 소유권은 확실해 챙기기를 원하는 모양새다. 지금까지 타협점을 찾지 못한 이슈기도 하다.
3. 협상태도
서로의 협상태도에 대한 불만도 많다. KeSPA는 협상 도중 소송을 진행한 블리자드와 그래텍을 강하게 비판했다.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한 일종의 ‘압박 카드’로 소송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아직 ‘협상 중인 상대’를 불법으로 모는 것도 지나치다는 의견이 있다.
블리자드와 그래텍은 KeSPA의 말 바꾸기와 협상 타결 의지에 불만을 갖고 있다. 중계료를 양보해 줬더니 2차 콘텐츠 저작권을, 2차 콘텐츠 저작권을 양보했더니 이번에는 협상 종목을 문제로 삼는다는 것이다. 블리자드 폴 샘즈 COO(최고운영책임자)는 “결승점에 다가섰다고 생각할 때마다 결승점이 멀어지는 기분”이라며 불만을 표현했다.
최근에는 양측 관계자 모두 노골적인 불만을 표현하는 수준까지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협상이 계속되면서 양측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4. 실연권
<스타크래프트> 선수들의 실연권도 문제가 됐다. 실연권이란 연기나 노래 등을 행하는 사람(실연자)이 자신의 실연에 대해 권리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실연권이 인정될 경우 선수들은 자신들의 플레이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이 경우 이사사인 프로게임단을 통해 선수들을 보유한 KeSPA의 입장이 유리해지게 된다.
반면에 게임 플레이를 실연으로 봐야 하냐는 의견도 있다. 실연권의 경우 본격적으로 협상에서 논의된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대신 e스포츠 공청회나 국제 e스포츠 심포지엄 등 주로 법과 정책 위주의 토론 자리에서 언급되고 있다. 현재 분쟁이 법정으로 넘어간 만큼 실연권에 대한 판단도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5. e스포츠법
지난 5월 허원제 의원은 출처만 명시하면 누구든 공표된 게임으로 e스포츠 대회를 열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e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당시 법률안은 게임물 저작권자에게 간접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이유로 문방위에서 보류됐다.
하지만 허원제 의원은 10월 국회의사당 소회의장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법률안을 다시 제출할 뜻을 밝혔다. 전문의원의 검토를 받았다는 법률안은 공표된 게임 항목이 ‘e스포츠의 발전과 보급, 확산을 촉진하기 위해 지정된 기관이 인증한 게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새롭게 고친 법률안은 이번 국회에는 상정되지 않았지만, 만약에 내년 이후 통과된다면 지금의 분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도 있다. 국가에서 <스타크래프트>를 e스포츠 종목으로 인증하면 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블리자드와 그래텍에게 가장 불리한 조건이다.
■ 전망
사건이 이미 법정까지 간 이상 소송 외에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양측 모두 법무팀으로 사건을 인계한 상황이다. 소송과 함께 협상도 진행 중이지만, 양측의 의견 차이가 매우 심하다. 소송과 리그 강행 후 서로에 대한 불만도 쌓여서 협상을 타결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가장 최근의 협상에서는 블리자드와 그래텍이 중계료에서 한 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면서 금액 문제는 많이 완화됐지만, 2차 콘텐츠 소유권이 여전히 발목을 잡는 중이다.
소송도 빠른 시일 내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민사소송의 특성상 짧게는 반년에서 길게는 2년 이상 공판이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e스포츠 지적재산권 분쟁은 세계 어디에도 판례가 없는 사건인 만큼 일반적인 소송보다 더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지난 12월 10일 1차 공판에서 판사가 조정을 권했지만 MBC게임 변호인은 “e스포츠 지적재산권의 범위를 확실하게 정하고 싶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2011년 이내로 소송의 결과를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블리자드가 소송에서 청구한 금액도 3억5,000만 원으로 비교적 적은 만큼 소송을 통해 어느 한쪽이 피해를 입거나 이득을 볼 가능성도 낮다. 사실상 양측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진 모양새다.